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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차는 알고 있다    
글쓴이 : 김요영    12-05-14 17:22    조회 : 3,443
전차는 알고 있다.
김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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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가림막 사이로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채로 단장될 날만을 기다리던 전차가 드디어 칙칙한 적색 옷을 벗고 산뜻하게 초록색으로 갈아입었다. 두어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려면 광화문 지하도를 나와 서울 역사박물관 앞을 지나쳐야 하는데 거기에다 오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낡은 전차 한 대를 온갖 풍파를 겪은 모습 그대로 선을 뵌 지 벌써 여러 달이 지나갔다.
처음 눈에 띄었던 게 아마도 이른 봄쯤이었을 것이다. 흉측하게 낡은 걸 왜 전시를 할까 궁금해서 안내문을 읽어 보니 전차를 리모델링 하는 중이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서서히 탈바꿈을 하더니 이제는 내 기억속의 초록색 날렵한 본래의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리고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더니 기어코 사십 년 전 과거로 떠나보자고 유혹했다.
학교에 갓 입학한 여덟 살적에 우리 집에서 국립 의료원 옆 옛 훈련원 터에 자리를 잡은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를 가려면 전차를 타야 했다. 출퇴근 시간에도 요즘처럼 차도가 꽉 막힐 정도로 차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한적한 도로 한가운데를 유유히 지나가는 전차는 어린 꼬마한테는 아주 근사한 교통수단이었다.
한 량으로 된 그 몸집은 아주 견고해서 어떤 충격에도 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정말 안전하고 빠른 등하교 길이었다. 아침마다 엄마는 정류장까지 내 손을 꼭 잡고 데려다 주셨다. 차도 쪽으로 접한 자그마한 매표소에서 항상 엄마는 전차표 두 장을 사서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하교 길 전차표도 미리 사서 주셨던 이유가 뭘까. 아마도 덤벙대는 성격인 내가 돈을 잃어버릴까 노파심에서 그러셨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먹을 것을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내가 혹여 군것질을 감행하고 먼 길을 걸어올지도 모른다는 기우 때문이었을까.
하여튼 한 장은 전차를 타면서 차장아저씨에게 주고 을지로 6가역에 내릴 때까지(아마도 두세 정거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얌전히 있으면 전차는 결코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또 너무 느리지도 않게 알맞은 시간에 나를 내려놓았다.
전차를 타고 등하교하는 그 시간은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요즘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그래도 아침시간에는 제법 사람들로 붐벼서 여덟 살짜리 눈에 보이는 그들은 차림새하며 말하는 것까지 모두 관심거리였다.
그런 전차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름이 지나고부터는 운행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 전차로 통학했던 짧은 추억을 기억하는 내게는 잊혀 지지 않는 작은 사건이 뇌리에 박혀 있다.
하복을 입고 가방을 멘 내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여름이 막 시작되는 계절이었던 것 같다. 그날은 혼자서 집에 가는 길이었다. 왜 혼자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넓은 전차 안에도 사람은 없었다. 급할 것 하나 없는 나는 나무로 만든 긴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차표를 꺼내려고 필통을 열었는데 분명히 있어야할 전차표가 보이지 않았다.
필통과 교과서, 공책 모두 쭉 늘어놓고 샅샅이 뒤졌으나 그 차표 한 장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차장아저씨한테 사정을 얘기하기에는 너무 겁이 났었고 소심한 성격까지 더해 그야말로 온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팍팍 전해왔다. 얼른 가방을 수습하고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전차 뒤쪽으로 숨어서 가능하면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신경을 집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릴 때까지 전차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도망치듯 전차에서 내린 내가 어떻게 집에 갔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비밀은 없는 법이라는 자명한 이치를 절실히 깨달은 건 다음날 차장 아저씨가 엄마에게 고자질을 한 때문이다. 두고두고 이 사건은 엄마의 특별담화가 되었다.
전차가 자취를 감춘 후에 한량을 특별히 선별하여 어린이 대공원에 전시되었던 것을 폐기 되기 직전 이렇게 말끔하게 손질하여 전시하게 된 것이다. 안은 들여다보지 못할 정도로 실제와 똑같아서 상당히 높은 게 아쉬웠는데 그나마 신문에 수리된 전차 내부의 사진이 실렸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 1968년까지 운행을 했으니 그 동안 숱한 사연을 간직하고 그 수명을 다한 것이리라.
길이13.7, 2.4로 지금은 매우 아담하게 보이지만 사십일 년 전에는 왜 그렇게 넓고 천장이 높았는지 까마득하다. 전시된 전차 381호는 안에서 발견된 표지판 조각으로 볼 때을지로를 중심으로 운행하던 것으로 추정된다니 혹시 반년동안 내 발길이 머물렀던 그 열차가 아닐까 하는 반가움이 앞선다.
전차에 얽힌 추억은 길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리워지는 게 아닌가 싶다. 만약 지금까지 운행되고 있다면 이렇게 애틋하지도, 그 시절이 그리워지지도 않을 게 틀림없다.
간혹 걷게 되는 광화문 길에서 몇 달간 마주칠 때마다 오래된 벗을 대하듯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던 전차가 그냥 전시물로 사람들의 시선만 받을 게 아니라 씽씽하게 기운차게 달리던 그 날들을 조근조근 속삭여 주었으면 좋겠다.
과거를 생각하는 듯 조그만 움직임도 없이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는 381호에게 작별을 고하고 돌아섰다. 여덟 살의 나를 만나고 싶으면 또 오리라 다짐하면서.
(20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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