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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돌이 주니어    
글쓴이 : 김요영    12-05-14 17:26    조회 : 3,282
산돌이 주니어
김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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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끝낸 한겨울의 메마른 논밭마냥 텅 빈 화분 속에서 청록색 줄기가 고개를 내민 건 정말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기지개를 피더니 지난 달 내 좁쌀만한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손가락 한마디쯤 키가 커졌다.
산돌이가 우리 집 식구가 된 게 어언 육년이 넘었나보다. 아파트로 처음 이사 온 후 집들이 선물로 들어온 그 녀석은 푸르름을 자랑하는 잎사귀로 풍성한 자태를 한동안 보여주더니 관심 없는 안주인을 책망이라도 하듯이 시름시름 시들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물 주는 것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건만 그래도 거실 한구석에서 끈질기게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작은 아들이 기운을 잃어가는 녀석을 자기가 돌보겠다며 방으로 가져 간 뒤로는 내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 아예 잊어 버렸다.
자상한 주인을 만나 제 때에 물 받아 마시고, 때때로 넓은 잎사귀가 마른 걸레로 깨끗이 닦여져 때깔이 날 때쯤 기숙사로 들어가게 된 아들이 이름을 산돌이로 지었다며 자신이 없는 동안 잘 보살피라고 반 협박 비슷한 부탁을 했다. 못내 엄마가 미덥지 못한지 관리하는 법을 몇 번이고 잔소리마냥 지껄여 댔다.
이렇게 우리 집 산세베리아는 산돌이라는 이름을 얻어 다시 내게로 왔다. 신신당부한 아들의 부탁도 있고 해서 정성을 기울였지만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았나보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고 나서 시원찮은 산돌이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작년 더위가 오기 전에 잎을 모두 잘라 버렸다. 지저분하게 시들고 색까지 누렇게 떠서 보기가 싫었던지라 아무 생각 없이 빈 화분을 만들어 버리니 구석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었다. 뿌리까지 뽑진 않았으니 살려면 살고 아니면 죽던지 그렇게 한여름이 가고 서늘함이 깊어져도 이따금 보는 화분은 아무런 기척도 없어 찬바람 불기 전에 화분을 버려야겠다고 결심하고도 천성이 게으른 탓에 몇 주가 훌쩍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휑뎅그레한 마른 흙속에서 기적이 일어나 물도 제대로 안 준 그 뿌리에서 연한 초록색 줄기가 힘이 부친 듯 얼굴을 내밀고 날 부르고 있었다. 버릴려고 작정했던 내 맘을 어찌 먼저 알고 선수를 쳤을까.
그 수분기 하나 없는 메마름 속에서 무슨 생각으로 죽지 않고 살아 있었나. 이렇게 세상은 하찮은 식물조차도 법칙을 어기지 않고 순응하니 그야말로 생명의 신비구나 싶었다. 성장속도는 느렸지만 그래도 겨우내 관심 갖고 말을 건네며 예뻐해 주니 제법 줄기가 올라오는 게 눈에 보였다. 내친 김에 영양제를 사다가 뿌리고 물을 흠뻑 주었더니 손바닥 길이만한 줄기 두 개 속에서 여린 줄기가 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요즘이다.
매일 아침마다 블라인드를 걷으며 인사를 건넨다. 볼수록 신통한 마음이 드는 건 이 녀석이 나보다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해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살아가리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그 가녀린 잎에서 위안을 얻을 때가 많다. 때때로 지리멸렬한 생활에 지치고 안주하고 싶을 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녀석은 어김없이 신호를 보내고 그럴 때면 초록빛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제 이름을 다시 지어줘야 할까보다. 원래의 산돌이는 이미 사라졌으나 그 흔적으로 질긴 생명줄을 이어가니 산돌이 주니어는 어떨까. 아마도 이 녀석이 커다란 잎사귀를 흔들며 무성함을 자랑할 때까지 나도 기운을 차려 돌봐야 하니 우리의 공생관계는 당분간 계속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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