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김요영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yoykim60@naver.com
* 홈페이지 :
  꼬라지 하고는    
글쓴이 : 김요영    12-05-14 17:28    조회 : 3,301
꼬라지 하고는
김요영
  :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오랜만에 눈다운 눈이 내렸다. 밤새 기척 없이 내려 온 세상을 품에 안아 버렸다. 어스름 새벽에 반사되는 눈빛에 좋아라 했지만 그도 잠시, 뚝 떨어진 기온에 얼어버릴 도로를 걱정하는 나이든 티를 내고 말았다. 혹시나 올해는 성탄 선물이 주어질까 설레며 기다리던 유년의 기억은 어디 갔는지 이제는 연말이 다가오면 자책과 반성을 반복하는 게 매년 치르는 의식이 되어 버렸다. 올해도 그렇게 애를 썼건만 남는 건 후회뿐, 무심코 시야에 들어온 나무들은 쥐꼬리 만큼 비친 햇살에 군데군데 말라빠진 가지들을 드러낸 흉물스런 몰골이었다. 마치 내 속내 처럼.
정말 마음 고생이 심해서 무척 힘들었기에 문득 숨고 싶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한번 씩 가슴앓이를 하고나면 마음을 추스르고 궤도를 찾긴 했지만 그저 이탈을 막고 뒤쫒아 가기에 급급했던 날들. 번번히 안되는 줄 알면서도 오기만 갖고 도전 했다가 물러나게 된 이력이 줄줄이 늘었다. 두 마리 토끼도 잡았었는데 이제는 한 마리도 놓쳐버리게 되다니, 그 꼬라지 하고는 ……
며칠 전 우연히 낡은 노트를 발견 했다. 형광펜으로 그어진 사이사이 첨삭되어진 눈에 익은 글씨를 보는 순간 가슴이 떨려왔다. 삼년 전 갓 입학한 신입생마냥 열정 하나만으로 겁 없이 덤볐던 그 때, 며칠을 고민하며 썼던 흔적들이 조금은 어색했던 첫 습작글이었다. 얼마나 쓰면서 가슴이 뛰었던가! 그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몸은 그대로인데 머릿속은 새벽에 맞은 눈처럼 백지가 되어 버렸다. 잘 쓸 수 있다는 신념은 확실했었는데 많지 않은 세월에도 불구하고 과연 내게 글쓰기의 능력이 있는가가 요즘의 화두가 됐다.
비단 나뿐이랴. 유명한 작가들도 이런저런 고비는 크든 작든 거치기 마련이지만 이게 아주 주기적으로 괴롭힐 때는 속수무책이고 그러다 지레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가기까지 하니 주체인 나도 매우 혼란스럽다. 그러면 마음을 비우고 포기를 해야 되는데 그게 잘 안된다. 글쓰기에 무슨 마력이 붙었나보다. 그 끝자락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럴 땐 백약이 무효다. 그저 저절로 낫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삼년 째 겪고 있는 병이다. 내년에는 완치는 고사하고 증상이나 좀 가벼워 졌으면 좋겠다. 이러니 그야말로 꼬라지가 말이 아니다. 잔득 겉멋만 든 명품족 같다고나 할까. 남이 치켜세워주는 달콤한 말에 우쭐대는 철모르는 아이 같다. 그래서 더더욱 글쓰기가 두려운지 모르겠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자신의 체험담을 이렇게 공개 했다. 달마다 노트 한권씩을 채웠노라고. 그녀가 말하고자 한 것은 잘 쓴 글이 아니라 그저 생각나는 대로 여백을 메워감을 뜻한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 글쓰기가 수월해진다고 했다. 방법은 알고 있으되 실천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릇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실천할 수 있다면 실패란 존재하지 않으리. 명문을 남길 희망은 품음직 하지만 지금은 그저 능력이 없더라도 편한 마음으로 즐겁게 몰두할 수 있었으면 만족이다. 제일 행복한 일로 꼽는 그 일을 여지껏 못하고 있으니 천성이 끈질기지 못함이 아니던가.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으련다. 그간의 세월을 잊고 다시 신인으로 돌아가 봄이 어떨까? 많이 깨지고 넘어지고 질책을 받아도 삼년 전처럼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통 큰 사람이 되자. 바쁨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로 쓰는 일이 즐겁다면 스티븐 킹처럼 공장일을 하면서도 짬짬이 쓸 수가 있는 것을 잊었던가. 그렇게라도 된다면 천하를 지배한 그 누구보다도 행복할 텐데.
눈은 거의 녹아 버렸다.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고 금새 사라진다는 것을 밤새 내린 눈이 넌즈시 전해 주고 자취를 감춰 버렸다. 군데 군데 남은 눈이 얼어버려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듯하다. 이 또한 세모를 맞는 내게 작은 일깨움으로 결코 초심을 잊지 말라는 뜻이라고 받아들여야 겠다. 그래서 내년 세모에는 그 꼬라지 하고는혀차는 소리보다 수고 했어라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겠다.
(200612) 20074월호 에세이플러스
 

 
   

김요영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14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89189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91129
14 엄마의 마지막 선물 김요영 01-05 4894
13 한 뼘의 햇빛도 아까운데 김요영 05-14 3452
12 기축년은 이렇게 시작됐다 김요영 05-14 3167
11 나의 살던 그곳은 김요영 05-14 3204
10 yes 와 no 김요영 05-14 3141
9 꼬라지 하고는 김요영 05-14 3302
8 산돌이 주니어 김요영 05-14 3282
7 난 삼치입니다 김요영 05-14 3141
6 잣 한개에 한해의 무사를 담아 김요영 05-14 3371
5 완전한 사랑 김요영 05-14 3423
4 전차는 알고 있다 김요영 05-14 3444
3 누가 토끼에게 파란 조끼를 입혔나 김요영 05-14 3655
2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김요영 05-14 4220
1 색에 빠지고 자태에 반하고 향에 취하다 김요영 05-14 3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