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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축년은 이렇게 시작됐다    
글쓴이 : 김요영    12-05-14 17:32    조회 : 3,167
기축년은 이렇게 시작됐다.
김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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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가까이 소식이 두절된 친구들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우연히 마주쳤던 여고 동창 때문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정형외과에 치료받으러 다녔던 12월 어느 날, 처방전을 기다리고 있다가 다음 환자를 호명하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별다른 생각 없이 진찰실로 향하던 얼굴을 보니 낯설지가 않았다. 곧바로 나도 병원 문을 나섰기 때문에 잊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병원에서 마주친 얼굴과 이름이 정확히 일치하는 고리를 찾아냈다. 여고 2학년 때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틀림없었다. 확인도 안 해본 내 무심함을 탓할 수 밖에.
셋이나 되는 시동생과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시집살이로 생활에 지쳐갈 무렵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이 만나던 친구들과의 교류도 포기해 버렸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다들 비교적 안정된 처지였던 그들에게 묘한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렇게 하찮은 이유로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 후 강산이 두 번 변하고 나이 오십 줄에 들고 보니 새삼 옛 친구가 그리워졌다.
신기순. 중학교 3년을 마치고 고등학교 배정을 받던 날, 공동학군 내 같은 학교인 것을 알고 뛸 듯이 좋아했었다. ?6년 동안 같은 학교를 다녔던 죽마고우다. 결혼식 초대를 받고도 왜 가질 못했는지 너무나 속상해 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제주대학에 근무하던 남편을 따라 섬으로 떠난 얼마 후 서울에서 전시회를 한다기에 만났던 일이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러 까마득하다. 섬유예술을 전공했던 재주 많은 친구였다. 지나는 말로 일러주었던 남편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게 정말 신기할 정도여서 몇 번이고 남편을 통한 친구 찾기를 시도했었지만 번번이 생각에 그치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새해를 며칠 앞두고 문득 용기를 내서 초면에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짧은 글을 제주대학 A교수님 홈페이지에 올렸다. 아니면 어떡하지? 혹시 무슨 변고라도 있는 거라면 연락할 방법이 없을 텐데. 온갖 상상을 하며 이틀 동안 냉가슴을 앓았다. 그리운 친구는 그렇게 소식이 닿아 전화를 통한 재회를 할 수 있었다. 내 이름을 대며 그런 친구가 있냐고 남편이 묻더란다. 이제는 제주에 자주 발걸음을 할 일만 남았다. 친구가 살고 있는 섬으로 찾아갈 계획을 세우는 이 순간이 단발머리 여중생시절, 함께 규율부원 활동을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마냥 즐거워진다. 이게 지난해 마지막으로 내게 와준 작은 기적이었다.
 
기순이를 찾아서 고무되었던 그 여세를 몰아 또 다른 여고 동창을 찾으려고 궁리를 거듭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여고 졸업 후 다른 학교로 진학 했지만 끊임없이 만나 젊음의 고민을 공유했던 친구는 부산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남편을 만나 그 곳에 정착하였다. 자신은 전공을 살려 일찌감치 어린이집을 개원하여 혼자서 운영하는 어려움을 토로하곤 했다. 부산에 내려 간지 삼사년 후 쯤 되었을까 찌는 듯한 삼복더위에 교사 연수가 있다고 서울에 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잠깐 짬을 내서 점심식사를 하고 헤어졌었는데 그 이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 선명이는 언니가 N수녀원 수녀였다. 두어 번 뵌 적이 있어서 나를 기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수녀원 부설 교육기관을 찾아볼 심산이었다. 무작정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진을 보고 맞겠다 싶으면 동생을 찾는 메일을 띄울 셈으로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였다.
그런데 이 또한 무슨 행운인지 성당에서 매주 발행하는 주보에 수녀님이 교육하는 강좌의 공고가 실린 것을 발견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새해를 맞자마자 작은 기적이 내게로 오는 가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선명이 언니가 틀림없었다. 소식이 오기까지 피 말리는 사흘을 보내고 요영아, 나 선명인데그리운 목소리는 그 떨림이 나에게도 전달될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아들의 자취방 때문에 올라온다는 그녀를 이십 년 만에 해후했다. 그렇게 긴 시간 떨어져 있었는데도 어제 만났던 것 마냥 줄줄이 얘기가 이어졌다.
이제는 부산에도 방문할 어엿한 핑계가 생겼다. 기억의 저편에 있던 풋풋한 그녀의 얼굴엔 세월이라는 관록과 함께 무디어지는 건강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옛 친구들. 그들이 있으므로 해서 철모르는 내 십대와 열정만이 지배했던 이십대가 있었다.
늘 만나던 명동의 그 클래식 다방은 아직도 있을까. 답이 안 나오는 무수한 고뇌를 그 찻집 구석구석에 묻어 놓았었고 밤늦도록 고민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명동거리를 헤매고 다녔던 그 자유가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다.
연말연시에 찾아와 나에게 활력소가 되어준 두 번의 작은 사건을 감히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누군가에게 잊혀진 사람이 아니라 항상 그들의 가슴에 그 실루엣을 남겼던 친구라는 사실이 또한 무척 기쁘다.
이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도 불현 듯이 부르면 어디서고 응답해 줄 것 같은 내 친구 신기순, 오선명.
얘들아, 우리 처음 만났던 그 시절처럼 그렇게 살아보자꾸나. 모래알처럼 함께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있어서 고맙다. 그리고 오랜 세월 기억해 줘서 감사하구. 또 건강하게 살아줘서 너무 다행이구나. 헤어져 있던 시간이 무색해지도록 오래 수다 떨어보자.
(2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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