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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새끼 길들이기    
글쓴이 : 송경미    12-05-14 23:13    조회 : 4,296
                                                사자새끼 길들이기
                                                                                                                       송 경 미
 
 사자새끼는 나의 외동아들이고 나는 그 사자새끼를 쫓는 야생동물 몰이꾼이다. 신영복 선생의 글에, “다른 사람들은 다들 양이나 소, 염소, 사슴 같은 순한 짐승들을 끌고 가는데 나만 유독 사자나 호랑이 같은 사나운 동물을 끌고 가야 하는......” 운운하며 고달픈 마음을 표현한 대목이 생각나 사춘기에 접어들어 나랑 아귀가 너무나도 안 맞는 아들에게 내지른 말이다. "야, 이 사자새끼야, 정말 힘들어 못해먹겠다. 니 엄마노릇!"
 내가 허니문 베이비로 우리에게 온 아들을 낳고 백일 동안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할 때 우리는 그 녀석을 ‘행복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키 55센티미터에 몸무게 3.9킬로그램으로 태어난 이 녀석은 얼마나 건강한지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났다. 실크감촉의 몇 올 안 되는 머리카락도, 고기비늘처럼 얇고 투명한 손톱도, 내 새끼손가락이 들어갈까 말까하게 조그만 입까지 온통 신기하기만 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꽉 깨물어주고 싶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다섯이나 되는 동생들은 갓 태어난 이 꼬물거리는 생명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공부방으로 쫓겨가곤 했다. 나는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가족들에게 밖에서 돌아오면 옷을 갈아 입고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어야 내 방 출입을 할 수 있고 아침에는 들어올 수 있지만 대신 애기 발에만 뽀뽀를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식구들 때문에 내 방은 언제나 분주했다. 녀석의 발은 성 베드로 성당의 베드로 발처럼 반짝반짝 닳아빠질 지경이었지만 식구들은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석 달 동안 기저귀 한 장 안 빨고 아기만 안고 있는 내게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 너 애기가 그렇게 이쁘냐?" " 네. 너~무 이뻐서 꽉 깨물어 주고 싶어요." " 나도 너 그렇게 키웠다." " 에이, 거짓말! 아빠는 날 이렇게까지 이뻐하진 않았을 거예요. 믿을 수 없어!" " 그래. 너 애기 낳아서 얼마나 행복하냐? 이 세상을 다 얻어도 이만큼 행복하겠니? 네 아들이 만 3년 동안 너한테 그런 행복과 기쁨을 줄 것이고 그것이 너한테 하는 모든 효도란다. 그러니 그 이후에는 애한테 어떤 기대도 하지 말고 그 애가 너한테 주었던 행복만 생각하면서 키워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보드랍고 순하고 착하기만 하던 사자새끼가 점점 자라더니 언제부턴가 제법 야생동물 티를 내면서 뾰족한 이빨과 감춰두었던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기도 한다. 부모의 권위를 내세워 제압하려하나 곧 그 세대 나름의 논리에 밀려 손을 들고 나면 분하기도 하고 화가 나서 눈물을 찔끔거리기 일쑤다.
토끼해에 태어났으니 토끼처럼 이쁘고 순하고 선량한 눈을 한 귀엽기만한 녀석을 기대했었던가 보다. 건강하고 밝은 성격이라 같이 있으면 행복하기만 하던 아이는 자라면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기쁨과 실망을 함께 안겨 주었다. 애초부터 길들이기 어려운 동물이란 걸 알고 사자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었더라면 좋았을 걸... 길들이려다가 본성마저 잃게 만들었나 후회가 되기도 한다.
 녀석이 고2가 되었을 때 난 뒤에서 한숨 쉬고 노파심에 잔소리하며 남편까지 끌어들여 기대에 못 미치는 아들을 흉보고 있는 날 발견했다. 문득 아버지 말씀이 생각나고 내가 너무 아들에게 스트레스만 주고 있다는 걸 반성했다.
 수첩을 펴놓고 내가 아들에게 가지는 긍정적인 느낌들과 부정적인 느낌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내가 적은 긍정적인 느낌들은 "대견하다. 흐뭇하다. 뿌듯하다. 자랑스럽다. 든든하다. 행복하다. 사랑스럽다. 기대된다. 믿음직스럽다. 경이롭다. 편안하다. 안심된다...“등. 우선 긍정적인 느낌들을 적고 나니 부정적인 느낌들은 적을 마음이 안 들어 긍정적인 느낌들을 모아 얼기설기 엮어서 두 장을 인쇄하였다. 남편에게도 한 장 주고 사무실 벽에 붙여 두고 아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듯이 매일 열 번씩, 아니 부족하면 백 번씩이라도 읽으라고 했다. 나도 화장대 앞에 붙여 두고 눈길이 갈 때마다 읽어 마음을 추스리고 틈이 날 때마다 내게 최면을 걸듯 마음으로 되뇌며 미운 마음을 달랬다.
 
 사랑하는 도미니코!널 보면 /내가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잘 컸나 싶어 대견하고 /마음이 흐뭇하고 뿌듯하단다. //누구에게나 내 아들이라고 자랑하고 싶고 /네가 있어 마음 든든하단다. //너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들이 행복하고 /너의 말과 행동 모두가 사랑스럽단다. //너의 미래가 기대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잘 하리라 싶어 믿음직스럽단다. //네가 나에게서 태어난 사실 자체가 경이롭고 /널 보면 나는 마음이 편안하고 안심된단다.//
 
 얼마 후 우연히 내 방에 왔다가 화장대에 붙은 이 글을 본 아들 녀석은 말은 없었지만 놀라는 눈치였다. 새벽에 홀로 깨어 기도하는 엄마를 발견하고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며 다시 제 방으로 들어가던 때처럼.
대학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매일 초조해 하는 내게 녀석은 “엄마, 걱정되세요?”하고 묻는다. “그래. 솔직히 걱정돼 죽겠어.”하자, “걱정 마세요. 저도 제 인생 걱정해요. 엄마가 아무리 걱정하신다 한들 당사자만 하겠어요?” 한다. ‘그래, 제 인생 걱정은 제가 하라고 두자.’고 맘먹으니 참 못 믿기만 할 것도 아닌데 싶어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대학 합격소식을 전화로 전해 듣던 날 우리 둘은 환호하며 손을 맞잡고 펄쩍펄쩍 뛰면서 그 기쁨을 만끽하였다. 녀석이 나를 꼭 껴안고 “엄마, 그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하는데, ‘이놈의 사자새끼 다 컸네.’ 싶어지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것을 왜 그토록 조바심하고 안달하며 볶아댔나. 지난 봄 아들이 다니는 대학 축제 때 락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는 녀석의 공연이 있다고 해서 남편과 함께 구경을 갔다. 녀석이 속한 밴드의 공연 차례가 되자 넓은 잔디밭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다같이 음악에 맞춰 우렁우렁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이크를 잡은 녀석은 멤버들과 자신들이 연주할 노래를 소개하고 노래할 때 청중들과 주고받는 부분을 먼저 연습한 뒤, 열띤 호응을 부탁한 다음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다섯 곡의 알지 못할 노래를 열창한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는 땀범벅이 된 얼굴에 멋대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아랑곳하지 않고 괴성을 질러대는 녀석의 모습이 내 눈에는 전문 락커처럼 멋있기만 하다. 기분이 한없이 좋아져서 몸을 음악에 맡기고 “우리 둘 사이에서 어떻게 저런 애가 나왔지?”하면서 7080세대로 부채를 갚듯 학생운동에 매달리던 우리의 암울했던 학창시절을 떠올리고는 “학점 펑크나면 한 학기 등록금 더 내주면 되지. 인생에서 대학시절만큼 부담 없고 행복한 때가 있나? 우리는 못 그랬는데 이 놈은 잘 노네?”하며 대리만족을 한다.
 미숙한 엄마의 시행착오를 용서하라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오히려 날 위로한다. “엄마는 항상 저를 사랑하셨고 최선을 다하셨어요.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해주는 아들이 고맙기만 하다.
 
 이제 며칠 후면 녀석은 군대에 간다. 대학 보내고 좋아하는 날 보며 주위의 형님들은 “그래, 많이 좋아해라. 지금은 대학이 제일 큰 일 같지? 앞으로 더 큰 일들이 많아.”했었다. 그런 큰 일들을 다 해치우고 나면 그때는 정말 후련하고 홀가분할까?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마음도 사그러들까?
 이젠 정말로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지. 언제 어디에 있든 자신의 뜻을 맘껏 펼치며 살라고 축복하고 기도하면서 그 뒷모습을 대견해하기만 해야지. 태어나서 처음 만난 어른으로서 세상이 충분히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라고 믿게 하려고 나름 애쓰던 그 때처럼. 내가 사랑이라고 믿고 행한 많은 일들 중 녀석에게 상처로 남아있는 것들이 햇빛에 안개가 걷히듯 다 사라지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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