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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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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적    
글쓴이 : 박소현    22-06-12 22:57    조회 : 4,472

연적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연적 한 개를 샀다. 낡은 다기들과 도자기로 만든 소품들 틈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그 연적은 단숨에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엉덩이가 펑퍼짐한 거북이가 갈구하듯 길게 목을 빼고 있는 특이한 형상의 청자연적이다. 등에는 연꽃 이파리가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듯 색깔이 바래고 물이 나오는 주둥이에는 미세한 균열도 보였다. 가만히 만져보니 예전부터 나와 교감이라도 한 것처럼 따스함이 전해져 왔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연적 속에서 소록소록 걸어 나왔다.

 

“서예는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게 목적이 아니야. 글에 향기가 있어야 해.”

 

어디선가 옛 스승의 말씀이 바람결에 들려오는 듯했다.

꿈 많았던 20대에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 한동안 고생을 한 적이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더 공부를 하고 싶어 여러 학원을 전전하다 과로가 겹쳤기 때문이다. 면역이 떨어지니 웅크리고 있던 병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사달이 났다. 어리석게도 나는 노력의 깊이만큼 결과도 항상 비례하리라 믿었다. 세상에는 피할 수없는 장애물이 불시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걸 몰라도 한참을 몰랐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한 후에도 나는 기력이 없어 걸음을 잘 걷지도 못했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엄습했다. 수첩에 빼곡하게 적어두었던 내 초록의 꿈들도 허망하게 다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몇 달 후 겨우 몸을 추스르고 소일거리 삼아 동네 서예학원에 갔다.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질 것 같이 앙상한 몸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처음부터 붓글씨에 빠져들었다. 어쩌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좌절감이 붓글씨를 도피처로 삼았는지도 몰랐다.

서예학원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수행하듯 도연맹의 시나 ‘반야심경’ 등을 써 내려가던 시절,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그 깊은 뜻도 모르면서 수도 없이 쓰고, 또 쓰기를 반복했다. 붓글씨를 쓸 때만큼은 그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많은 습작을 거쳐 8폭 병풍을 만들었다. 270여 개의 반야심경 글자들. 그 글자들을 쓰면서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가슴 속에 옹이처럼 박혀있던 설움들을 꾹꾹 눌러 삭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침잠의 시간들은 내 생에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되었다.

첫 작품을 할 때였다. 원장님은 ‘유천(流泉)’이란 호를 지어 주시며 낙관의 두인(頭印)에는 ‘사무사(思無邪)’를 새기라고 하셨다. 사무사는 『논어』의 위정 편에 나오는 말로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다’는 뜻이다. 공자가 『시경』에 나온 주옥같은 시 300편을 읽은 소감을 한마디로 종합해 ‘사무사’로 정의했다고 한다. 어린 내가 사무사의 그 깊은 뜻을 어찌 알기나 했을까? 원장님은 좋을 글을 쓰려면 마음이 맑아야 한다며 몸과 정신이 건강한 서예가가 되라고 하셨다.

얼마 뒤 나는 다시 건강을 되찾게 되었고 새로운 직장도 얻게 되었다. 예전처럼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퇴근 후에는 매일 학원에 가서 한 두 시간은 꼭 붓글씨를 썼다. 약속이 있는 날은 이른 아침에 한 시간이라도 붓글씨를 쓰고 출근을 했다(원장님은 바쁜 직장인들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학원 문을 열어 놓았다). 덕분에 여러 공모전에서 입선과 특선을 제법 해 보기도 했다.

하얀 화선지를 앞에 두고 연적에 물을 채워 천천히 먹을 갈 때면 코끝으로 전해지던 그 청아한 먹의 향기가 나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화선지 전지 한 장에 반 장을 더 이어붙인 큰 작품 하나를 쓰려면 많은 양의 먹물이 필요한데, 벼루에 물을 붓고 천천히 갈다가 어느 정도 갈렸다 싶으면 다시 물을 조금 더 붓고 먹을 가는 과정을 2, 3십 분 정도는 반복해야 한다. 그래야 먹과 물이 조금씩 본래의 제 모습을 버리고 한 몸으로 어우러지면서 가장 선명한 색깔의 먹빛이 나오기 때문이다. 빨리 갈고 싶은 마음에 한꺼번에 많은 양의 물을 붓고 갈다가는 먹과 물이 겉돌아서 결국 작품을 망치게 된다. 원장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먹을 가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라고. 아주 서서히 갈면서 농담(濃淡)을 조절하라고 하셨다.

어느 날 붓을 사러 필방에 갔는데 뚜껑에 용무늬가 조각된 고급의 벼루 하나가 섬광처럼 눈에 들어왔다. 12만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월급의 반이나 되는 그 비싼 벼루를 나는 선뜻 살 수가 없었다. 필방 사장님은 벼루를 먼저 가져가고 돈은 천천히 나누어 내라고 했지만 빚지는 게 싫어서 호의를 거절했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벼루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특별히 볼 일이 없는데도 나는 자주 필방을 기웃거렸다. 내가 돈을 다 모으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 벼루를 사 가 버릴까봐 조바심을 내면서 벼루 대신 한 개에 오백 원, 천 원 하는 연적들을 하나씩 사 모았다. 우리집 거실 한 편에 있는 장식장 안에는 그 시절에 샀던 용무늬 벼루와 여러 종류의 연적들이 고즈넉이 이마를 맞대고 있다. 연꽃, 부채, 복숭아, 토끼, 주전자 모양을 한 연적들이다.

추사 김정희는 70 평생 벼루 열 개를 갈아 없애고 붓 천 자루를 닳게 했다고 한다. 그는 가슴 속에 청고 고아(淸古 高雅)한 뜻이 없으면 좋은 글씨가 나오지 않는다며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券氣)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책을 읽고 교양을 쌓아 인품을 갖춘 후 글을 쓰라는 의미일 것이다. 연적은 결코 많은 양의 물을 허용하지 않는다. 연적에서 물이 나오는 입구가 아주 작은 것도 추사의 주장처럼 성급함을 경계하고 품격을 갖추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공모전 출품을 위해 에어컨도 없는 서예학원에서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대작을 붓글씨로 썼던 일,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서예대전 발표 날 부산일보에 난 수상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남자친구까지 대동하고 의기양양 수상작을 전시하는 시민회관에 갔다가 나와 동명이인의 한글 작품이 걸려 있는 걸 보고 당황한 나머지 한참을 울었던 일, 낙선의 이유가 작품에 낙자(落字) 하나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야 알고는 내 지식의 얕음을 자책했던 일도 있다. 글의 깊은 뜻도 모른 채 그저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것에만 집중하다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그 시절이 이렇게도 그리워지는 것일까?

앞이 안 보이게 절망뿐일 것만 같았던 시간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금헌(錦軒) 조기안 선생님은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나에게 갈 길을 비춰 주던 등대였다. 그 큰 인연은 내가 다시 공부를 하게 했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거실에 걸린 서예 작품 두 점과 연적들을 볼 때마다 내 20대 침잠의 시간들을 생각한다. 옛 스승의 가르침은 은은한 묵향처럼 가슴속을 잔잔히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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