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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새벽의 죽비 소리    
글쓴이 : 박소현    22-06-12 23:03    조회 : 4,350

그 새벽의 죽비 소리

  

  휴대폰을 끈다. 무수한 말과 활자들이 사라졌다. 산짐승들 울음소리도 뭇 사연을 간직한 울창한 수목들도 적멸삼매에 빠진 이 밤. 시간마저 정지된 것 같은 이 고즈넉한 절간 방에 나는 누워있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너는 무엇을 구하려고 이 깊은 산중으로 스며들었느냐? 그 무엇이 부족해서 그렇게 허우적거리며 사는 것이냐?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저 높은 곳에서 고승의 쩌렁쩌렁한 호통 소리가 죽비 치듯 내 등줄기를 때린다.

생활의 족쇄에 묶여 마음이 어지러울 때, 나는 가끔 한적한 절간을 찾아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한다. 혼잡한 도시를 떠나 고요한 절간 방에 누워 새소리, 물소리, 청아한 풍경소리를 듣는 것, 삼라만상이 잠든 깊은 밤 고해성사 하듯 쌓였던 스트레스를 덜어내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내 작은 즐거움이자 삶의 전환점이다. 오롯이 나와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10여 년 전이었다. 두 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였다. 그 무렵, 사찰에서의 하룻밤을 권하던 지인의 말에 남편과 함께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찾아 간 곳이 강원도 평창 월정사였다. 남편은 대학 시절 지리산 한 암자에서 몇 달 기거한 적이 있어 절간 생활에 익숙했으나 나는 첫 템플스테이 경험이었다.

  새벽 예불을 드리는 시간, 법당 한쪽에서 단기 출가를 한 이들이 스님의 죽비 소리에 맞춰 108배를 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파르라니 머리를 깎았고 여자들은 일반 머리 그대로였다. 그 모습이 신기했다. 저들은 무엇을 구하고자 저렇게 열심히 절을 하는 것일까 궁금해 하면서 어설프게 나도 그들을 따라 절을 했다. 스님이 치는 죽비 소리가 마치 고명한 선각자의 가르침처럼 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나태해진 나를 깨우던 그 새벽의 죽비 소리, 내가 가끔 템플스테이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불을 마치고 절 입구에 있는 전나무숲길을 천천히 걸었다. 새벽 산사의 공기는 더 없이 청량하고, 해탈한 나무들은 한 치 사심 없이 고고한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들은 나같이 어리석은 중생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을까?

  산책을 마치고 절간 마루에 앉아 고요히 풍경소리를 듣고 있는데 젊은 남자 한 분이 차 한 잔을 건넸다. 사업을 한다는 그는 머리가 복잡할 때면 자주 산사를 찾는다며 익숙한 솜씨로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미리 준비해 온 녹차를 우려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했다. 차를 마시며 세상사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 얼굴이 반가사유상 미소처럼 온화했다. 정년퇴직을 하고 전국의 사찰을 주유하며 유유자적 노년을 즐긴다는 부부, 가족 품을 떠나 잠시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왔다는 50대 전업주부, 소설을 쓴다는 30대 작가지망생. 모습도 직업도 다른 그들의 편안한 얼굴을 닮고 싶었다.

  이 밤이 지나면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를 들으며 108배를 하고, 집착에서 벗어나려 쉼 없이 허리를 숙였던 이틀. 이번 템플스테이로 내 안의 혼탁한 마음들이 조금은 맑아졌을까?

   “꽃들이 피면서 어디 즐겁다고 아우성이더냐, 떨어지는 낙엽들이 이별이 서럽다고 소리치더냐?” 어느 책에선가에서 읽었던 문장 한 줄이 불현듯 떠오른다.

  모든 것이 공(空)인 것을. 적게 비우면 적게 얻고, 많이 비우면 크게 얻는다는 마가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깊은 밤 어리석은 중생 하나가 밤을 지새우고 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삶에 미열이 생길 때, 문득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일 때면 한번 쯤 산사에서의 하룻밤을 생각해 볼 일이다. 고즈넉이 자연의 품에 안겨 마음 속 번뇌들을 내려놓고 삶의 전환점을 마련해 볼 일이다. 그 새벽, 산사의 정적을 깨우던 죽비소리 유난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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