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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귀도 쓸모가 있다    
글쓴이 : 이기식    22-08-04 21:34    조회 : 4,841

방귀도 쓸모가 있다

이 기 식(don320@naver.com)


 방귀가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까.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그리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동화의 어린애처럼 꼭 말해주고 싶지만 점잖지 못하다 할까 봐 참고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바로 전, 그러니까 6.25가 난 해였다. 저녁 식사로 찐 고구마를 먹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느닷없이 '가만히 있어 봐!'라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궁둥이 쪽으로 가져갔다. 순간, 우렁찬 방귀 소리가 들리고, 아버지는 손에 한 움큼 쥔 것을 어머니 코앞에 가져간다. '아잇! ' 하면서 어머니는 코를 손바닥으로 잽싸게 막는다. 아버지가 고개를 숙이고 히죽거리는 게 보였다.

 생활이 힘든 시절이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주 다투었고, 그때마다 집안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그러나 그날처럼 어머니에게 방귀를 선물하는 날만은 우리 형제의 마음은 편안해졌다. 아버지가 매일 고구마를 먹고 방귀를 뀌었으면 하고 바랐을지도 모른다.

 중학교 시절의 일도 기억이 난다. 방과 후에 청소를 안 하고 도망간, 나를 포함한 몇 명이 교단 앞에 서 있었다. 아침에 뭘 먹었는지 뱃속이 부글거리고 가스가 찼다. 방귀가 나오려는 것을 궁둥이를 미세하게 조정해가면서 억지로 참는 중이었다. 그러는 나 스스로가 우스워 혼자 웃었던 것 같다. 선생은 "이놈 봐라! 웃어?"라고 하면서 두꺼운 출석부로 내 머리를 때렸다. 그 순간, 조이고 있던 가스를 발사했다. 아무도 내가 방귀 뀐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회사에서 과장으로 진급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새로 부임하는 부장의 성질이 고약하고, 까다롭다는 소문이었다. 과장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첫 회의에 참석했다. 부장이 탐색하는 눈으로 과장들을 둘러보기 시작했을 때였다. 평소 말 없고, 게다가 체격도 왜소한 탁 과장이 피리를 부는 듯한 소리로 방귀를 길게 뀌었고, “부릌하는 소리로 끝을 맺었다. 모두의 시선이 흔들렸다. "-" 하는 묘한 웃음소리가 부장의 입에서 나왔다. 전염이라도 된 듯, 불안하지만, 과장들도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그런 멋진 상견례는 처음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의 '방귀 선물'이 생각났다.

 우리는 몸에서 여러 가지 분비물을 내보낸다.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 몸에서 자동으로 생성하는 유익한 기능이지만 대개는 보기 싫다. 그러나 방귀는 좀 다르다. 다양한 소리로 우리들의 긴장을 누그러트리는 도구 역할을 한다. 점잖은 체면에 여기서 냄새 이야기는 빼기로 하겠다. 이것을 만들기 위한 투자비도 별도로 들지 않는다. 음식을 먹고 뱃속만 조금 불편하게 해주면 거저 생기는 부산물이다. 투자대비 효과가 무한대인 경제적인 도구다.

 좋은 도구는 활용해야 한다. 어릴 적에 외할머니께서 방귀를 억지로 참으면 얼굴이 노래진다는 말씀도 생각이 나서, 집사람에게 방귀가 나오면 참지 말라고 아량 있는 조언도 해줬다. 까다로운 내 눈치 보느라 오랫동안 고생한 것이며, 둘째 아들 병치레를 오랫동안 감당한 것을 생각하면 건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 뒤로, 집사람은 가끔 내 눈치 안 보고 방귀를 놓는다. 조금 걱정이 된다. 백화점이나, 전차 속에서 놓칠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노련하게 수습하는 요령이 있다.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에서처럼 차창 밖의 구름을 허탈하게 쳐다보면 된다존재론적인 사유를 하는 모습처럼 보이면, 사람들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집사람에게도 한시바삐 이 방법을 알려줘야겠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서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녀석이 방귀를 뀌었다. 우렁찬 소리에 나도 놀랐지만, 본인도 놀란 모양이다. 까만 눈을 번쩍 뜨고는 뭔가를 찾는 듯이 두리번거리다가는 빙긋이 웃으며 다시 잠이 든다. 20여 년간 조울증에 시달리다가 10년 전, 우리 둘을 남겨두고 먼저 떠났다. 

 왜 갑자기 아들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혹시 내 기억이 아닐까. 태어나기 전에 마신 '레테의 샘물'일지도 모른다. 그 물을 마시면 전생의 기억을 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는 사는 동안 그 기억을 회복하면서 산다고 그리스 신화에서 말한다. 그런 것 같다. 

 방귀 몇 번 뀌다 보니 이 나이가 되었다는 소릴 자주 듣는다. 사실은 수만 번 뀌었을 텐데놓친 시간이 너무 많아 억울하기 때문이리라. 수시로 방귀를 놓친다. 아무리 움켜잡으려 해도 새어나가는 인생처럼. 

수필과 비평vol.250/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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