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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윤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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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욱    
글쓴이 : 윤기정    25-01-03 04:34    조회 : 284

 

윤기정


며느리에게 주려고 신청한 책이 도착했다. TV 육아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육아 멘토로 알려진 오은영 박사의 책이다.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라는 제목이 강렬하여 내용이 궁금했다. 책이나 한 편의 글이나 제목의 비중이 작지 않음을 또 한 번 생각한다. 궁금한 마음에 주기 전에 읽어 보기로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었다. 밤까지 새웠다. 운전 중에 성깔 부리며 험한 말도 마다하지 않는 상황들은 꼭 나를 보고 쓴 것 같아서 얼굴이 후끈대면서도 재미있었다.

책은 자녀 교육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부모의 하는 상황과 원인을 설득력 있게 서술하였다. 욱하는 모습이나 말이 자녀들에게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들고 위험한 사회 형성의 원인(原因)이자 원인(遠因)임도 지적하였다.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마음을 누르는 방법도 제시하였다. '은 감정 조절이 미숙한 것이고, 심하면 반드시 치료받아야 하는 분노조절장애임에도, 그것이 보편적인 감정인 양 이상스러운 이해를 하고, 욱한 자신에게도 면죄부를 준다. 아이에게 했던 이야기를 들은 지인도 대개는 "그렇지. 그렇지. 그럴 만하지. 애들이 좀 말을 안 들어야 말이지" 하면서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 준다. 이런 일이 아이 키우는 엄마들뿐이랴? 욱하고 나면 바로 핑곗거리 찾아서 합리화하려 하고, 그걸 받아주는 사람들이며 똑같이 비겁한 사람들 아닌가?

단순한 육아 지침서가 아니었다. ‘을 미화하고 도발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부모와 어른들에게 경고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아기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어른의 기준으로 재단하면 안 된다. 배울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 내 자식이라도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중해야 한다. 기다림과 존중을 잊었을 때 욱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비단 육아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지켜야 할 덕목이라 생각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TV 뉴스에서 차선을 바꾸려는데 끼워주지 않았다고 주행 중인 차를 따라가 앞을 막아 세우고 삼단봉으로 차창을 내리치는 운전자 영상을 보도한 적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토한 음식을 다시 먹게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 밖에도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물론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들이 한동안 뉴스를 탔다. 모두 욱을 참지 못하여 벌어진 사건들이라고 했다.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참 가엾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저만한 일을 참지 못하는 격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욕하며 어휴! 저런 인간들은 그저당장’. 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욱하고 있었다.

대상은 주로 아내였다.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맹세는 욱하는 찰나 춘삼월 양지 뜸의 잔설보다 빨리 사라졌다. 아내를 향해 욱했던 일은 손가락, 발가락, 머리카락으로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운전 중 옆에서 잔소리한다고, 한 번에 못 알아듣고 되묻는다고, 전화 빨리 받지 않는다고, 귀가(歸家) 늦는다고 전화하면 어디냐고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외출할 때 서두르지 않는다고. 그리고 왜 욱했는지도 모를 수많은 소소한 일들. 그때마다 분을 삭이느라 아내의 주름이 늘었으리라.

종심(從心)의 나이를 지나서도 하는 짓은 불혹(不惑)의 고개도 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며느리 육아 잘하라고 준비한 책에서 내 부족 먼저 깨우쳤다. 책을 읽으면서 아비로서도 모자랐고, 교육자로서의 소양도 부족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걱정을 모르는 체하며 일삼았던 고교 시절의 일탈은 당신의 가슴에 대못으로 남았을 텐데 이제는 풀 수도 없지 않은가? 큰형이랍시고 휘두른 알량한 권력에 눌린 동생들의 아픈 기억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 안 계신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서 욱하는 심정으로 살았던 시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돌이켜보면 삶의 도처에서 욱하며 살았다.

잊고 싶은, 까맣게 잊었던 의 순간들이 불쑥불쑥 머리를 들었다. 떠오른 것이 다가 아닐 터이다. 더 늦기 전에 삶을 되짚는 기회를 만났다. 욱하며 살지 말자고 다짐했다. 며느리 육아에 참고하라고 준비한 책에서 내가 먼저 선물을 받았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내가 만든 책은 아니지만, 책을 통한 사람 좀 되어보자.

출발 예정 시간이 지났다. 아내는 아직 화장대 앞이다. 나이 들어서 주름진 얼굴에 메우고 가릴 데가 많겠거니 생각하니 뭐 해!’ 소리 지를 일도 아니다. 주름의 8할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은 갸륵한데 입은 여전히 오랜 습관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고 외치다가, 아차! 하며 소리는 살짝 누그러뜨렸다. 걸음마 한 걸음을 내디딘 기분이었다. ‘되겠구나생각하니 손자 보러 가는 길이 즐거웠다. ! . 며느리가 하는 데가 있어서 준비한 책은 아니다. 책에는 육아의 어려움과 해결 방향을 제시한 다른 사례도 많이 실려 있다.

『한국산문』202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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