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조간신문을 법전 외우듯이 새벽부터 외우면서 기사를 작성했었던 훈련은 정말 곤욕이었다. 조간 브리핑을 마치려면 가장 빠른 시간에 일어나서 기사를 외워야 했다. 최소 새벽 4시 정도에 일어나서 새벽 5시까지 출근 준비를 마치고 하루 3시간 만에 거의 모든 신문사의 기사를 다 외웠다. 그렇지 않으면 회의 시간에 의견을 편집국장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 얼마나 기계적으로 외웠던지 나중에는 자동으로 몸이 새벽에 알아서 움직여 줬는데 석달을 매일 같이 훈련했더니 나중에는 이 습관이 몸에 익어 조간 신문을 외우지 않으면 허전함을 느낄 정도 였다.
이런 고된 훈련을 통해 나중에는 자동으로 기사가 써내려가는 내 모습에 놀라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네이버 메인에 걸리면 독자들의 클릭수가 자연스럽게 많이 올라가므로 언론사의 노출도 함께 상승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런 생각에 나는 마치 10년차 기자라도 된 듯한 자부심으로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는 복잡하고 답답한 가슴을 끓어 안은채 자판을 두들기며 기사를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하기를 계속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작년 이맘때 선배기사를 뒤적였다. 나랑 똑같은 취재원을 쓴 기사를 드디어 찾았다. 기사가 잘 완성되지 않으니 오늘은 이걸로 재탕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국장님은 기억 못할거야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일주일전 기사도 기억 못할건데 뭘 어디서 봤나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이 기사로 하겠어”하고 결심했다.
동기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복사를 시작하며 내가 취재한 내용을 덮어쓰기하며 열심히 티나지 않게 옮겼다. 한시간동안 열심히 성공적으로 작업했다.
한시간뒤 편집국장 뿐만 아니라 각부서 팀장급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수습기자들의 기사를 날카롭게 읽어대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비판적 시선을 가진 기자들은 1등은 밝히지 않고 기사를 제일 못쓴 사람만 골라 비판하기 시작했다. “윤지원, 윤지원, 윤지원, 글을 제일 못쓰네” 라며 한명도 빠지지 않고 내이름을 부르는 선배기자들이었다.
나는 내 이름이 불릴때마다 아찔하게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다. 심장은 콩닥콩닥거리고 숨은 막혀오고 미소 짓고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동기들 앞에서 자존심은 일그러졌다. 그순간 쿨하게 이 상황을 빨리 모면하는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인정합니다. 저는 유일하게 공과대학을 나왔고 글과 가장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아온 경험으로 산업부와 정치부에서 수습기자 생활을 하고 있기에 인정합니다. 선배님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동기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서류통과와 기사작성시험과 영어시험, 면접과 최종면접까지 동일한 코스를 엄청난 경쟁을 뚫고 통과한 나 아닌가. 주눅들 필요가 없었다. 확실했다. 단지 글과 친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언론고시라고 불리며 최종합격한 언론사 기자로서 자부심을 갖는 순간 선배들의 평가는 내 마음에 비수를 꽂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성장통이라 여기며 나름의 행복겨운 고통이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기사를 배우고 쓰면서 묘한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다. 괴롭고 지치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숙달이 되었을때는 선배 기사를 비판하기도 했고 때로는 선배 기사들의 장점이 눈에 들어 오기도 했다.
제일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글이 가진 매력과 언어에 굉장히 민감해진 이런 나 스스로에게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나에게 이런 적성이 있었단 말인가. 하며 놀라울 때가 많았다. 기사 작성과 교정을 받고 나면 다음부터 알아서 같은 내용의 기사를 자연스럽게 작성하게 되었고 숨도 쉬지 않는 듯한 고요함 속에서 나오는 타자소리는 내 귀를 황홀하게 했다.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출발점이 그때 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