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으로 가는 다리
김용무
서울에서 30년을 살다보니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 속에서도 어쩌다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술 한 잔 기울이며 나누는 고향 사투리가 무척이나 정겹게 느껴졌다. 경상도 사투리는 제대로 쓰다보면 옆 사람들 눈총을 받기 십상인데 대체적으로 톤이 높아 그런 것 같다.
“야들아, 오랜만이 데이 잘 지냈더나?”
친구들과 큰 소리로 떠들며 왁자지껄 웃으며 고향 어른들, 이웃 간의 인심, 변화된 마을 풍경이 주된 이야깃거리 였다. 한 친구가 시작하면 그 친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로 비슷한 경험을 얘기하느라 분위기가 엉뚱하게 흘러가 버리기도 하지만, 객지 생활을 하는 우리들은 그마저도 좋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죽령 고개를 넘어 고향 안동엘 갔다. 말이 고속도로이지 그때는 2차선 도로여서 서울과 안동을 오가는데 몇 시간 걸린다고 말하기가 애매했다. 죽령재에서 큰 화물 트럭이 앞에 가면 속도내기를 포기하고 오로지 앞 차 꽁무니만 보고 가다 보면 서울로 접어 들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온 가족이 함께 안동을 간다는 생각에 운전이 아무리 힘들고 지루해도 며칠 전부터 설레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지어진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구름 재, 말 고개를 넘어 집 앞 아름드리 소나무 앞으로 달려가 있다.
지금은 중앙고속도로에다 제1, 2 영동고속도로를 경유하여 3시간이 안 걸리지만 80년대에는 아주 먼 거리였다. 요즘은 충주 내륙고속도로도 있고 평택, 제천 간 도로 등 서울 안동 간 도로는 여러 곳에서 시원시원하게 달릴 수 있다.
제천을 지나 단양으로 접어들면 80년대에 조그만 시골 호텔이 있었다. 좌측으로 돌아가면 단양이고 직진하면 조그만 다리가 있었다. 나는 그 다리 이름을 ‘소년으로 가는 다리’라고 불렀다. 소년 시절, 그 다리를 건너면 단양군 대강면 소재지가 나오는데 그곳은 대강 막걸리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대강막걸리를 맛보려고 전국에서 몰려올 정도였는데, 그때 교통 상황을 생각하면 요즘 맛 집 찾아가는 기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고행이었지만 별난 막걸리 맛이 떠오른다. 막걸리 병은 노르스름하고 말랑거리는 뚜껑으로 닫혀졌고 누런 노끈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오고 가는 길에 그것을 몇 병 사가지고 안동 가면 부모님과 형제들이 둘러 앉아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년으로 가는 다리에 도착하면 바로 죽령이다. 그곳에 오면 고향에 반쯤 다다른 것인데도 나는 눈앞에 고향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그 먼 길을 다녔던 것이다. 그곳에 도착한 어느 초 겨울이었다. 그 다리를 건너면서 유난히 많던 밤하늘의 별을 보게 되었고 어릴 때 집 앞 마당에서 불렀던 ‘반달’ 노래도 흥얼거렸다. 가끔 할아버지 산소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내 꿈을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하기도 했던 유년이 떠오르곤 했다. 밤하늘 별을 보며 비행기 조종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고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별을 헤아리던 아련함에 젖어들기도 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친척들과 사촌 동생들은 객지로 떠나고 없었다. 늘 고향을 그리워했는데 돌아온 고향이 낯설게 느껴졌다.
낯선 고향에서 멜론농사를 시작 했다. 멜론의 고향은 이집트다. 고대 이집트에서 발달한 향기로운 열매 하나가 유럽으로 흘러가 멜론이 되고 인도를 거쳐 동양으로 들어와 참외가 되었다. 안동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던 멜론 농사가 벌써 6년째로 접어든다. 어쩌면 멜론도 나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멜론은 다른 과일하고 모양이 다르다. 크기도 크려니와 그물이 표피를 감싸고 있다. 속을 단단히 여미고 있는 열매가 궁금했다. 안은 어떨까? 향은 또? 내가 재배하면서 멜론에게서 고향의 향수를 찾아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수입된 종자를 구해서 여러 가지 작업을 거쳐 비닐하우스 안에 적당한 간격으로 한 포기 한 포기 정성을 다해 심었다. 다른 작물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온도, 습도, 일조량, 물 공급 등이 조금만 차이나도 제대로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 지구의 반을 돌아 먼 길을 온 멜론에게 나는 최선을 다했다. 신기하게도 하루가 다르게 잘 자라 주었다. 주위에서는 초보 농사꾼이 일 낸다고 잘 해보라고 격려도 해 주었다. 100일 정도 성장하는 멜론에게 나는 날마다 이야기를 건넨다.
‘어쩌면 멜론의 푸른 잎은 지중해 바다요, 열매는 세상을 넘어 우주를 담고 있는 건 아닌지’
멜론에게 이름표를 붙여주고 속삭여준다
“멜론아 사랑해”
참 멀리도 왔다. 소년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왔지만 나는 아직도 익숙한 냄새를 찾고 있다. 서울의 친구들이 그리울 때도 많다. 낯선 냄새로 가득한 이곳에 도달한 때문일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멜론만이 아닐 터.
오늘도 멜론 향기 가득한 하우스 안에서 소년으로 가는 다리를 추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