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제인아
친구들을 만났다.
늘 만나는 친구들이다. 새로울 것도 없는데 설레는 마음 때문일까. 모자를 눌러 쓴다거나 아무 옷차림으로 나가지 않는다. 간혹 감지 않은 듯한 머리나 구겨진 스웨터 차림의 친구라 해도 그 애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온몸으로 반가워해야지, 먹었던 마음이 무색하게 시간은 즐겁게만 간다.
일상의 반경이 좁고 뭐든 단조로움을 추구하는 나는 하루를 분주함으로 채우고도 모자랐을 그들의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고 만다. 그날이 그날이고 같은 이야기의 연속인데도 처음인 듯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이 친구라는 사이가 가진 마법인지도. 적당한 음식들과 수다, 술 몇 잔의 기분 좋은 마무리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러나 그 길 끝에는 여지없이 허전한 마음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런 날들은 점점 더 많아진다.
N의 부음을 들은 건 상하이에 도착해 몇 달이 지나지 않은 2014년이었다.
반쯤 열린 창문 밖 공기가 봄에서 여름으로 옮겨가는 저녁쯤, 내 두 아이를 똑 닮은 듯 여리고 싱그런 배춧잎으로 겉절이를 만드느라 열중하고 있던 때였다. 그곳에서의 먹거리가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안도했다. 부음을 전한 E는 내가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N과 나는 누구나 다 아는 단짝이었으니 E가 뜻밖이라 말하는 건 당연했다. N의 남편이 동창들에게 거의 알리지 않았다는 후문과 함께였다.
N과 나는 ㅇㅇ여고 1학년 6반에서 만났다.
영화, 배우, 팝송 등에 반쯤 미쳐 있던 나는, 그땐 왜 그랬는지 공포 영화를 제외하고는 한국 영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울 상대가 마땅히 없어 늘상 마음 한구석이 심심하고 공허했다. 역시 그런 쪽엔 관심이 없고 과묵하며 매사에 신중했던 N과 친구가 된 건 통학버스를 이용하는 우리 둘이 같은 정류장에서 내린다는 단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했다.
까만 뿔테 안경을 쓴 선하고 깡마른 선생님은 매번 열성적으로 강의에 임했지만 내겐 외워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지리멸렬할 뿐인 지리가 재밌다며 관련학과에 진학하겠다던 친구는 N이 처음이었다. N은 외국 배우들 이름을 어찌 그리 잘 외우냐며 신나서 늘어놓는 나의 영화 이야기를 무척 진지하게 들어 주긴 했으나, 내가 지리를 좋아하던 그 애가 참 의아했던 것처럼 그 역시 은근히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영화광이었고 N은 지리에 꽂혀 있었다.
햇살 좋았던 봄날 하굣길, 갑자기 N이 경직되며 전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나와 주위의 아이들 모두 놀랐지만 나는 그런 때에는 무심히 반응해야 하는 거라 알고 있었던지 괜찮은지만 물었다. 몇 초 남짓, N은 곧 원래대로 돌아왔고 머리를 두어 번 흔들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돌이켜보면 내 안에 각인된 듯 생생한 그 웃음이 계속해 그때를 기억하게 하며 마음 쓰이게 했던 것 같다. 안심이 안 돼 버스에서 내려 N의 집까지 동행했다. N의 어머니는 연신 “너무 고맙다, 고맙다.” 하셨고 그 후로 얼마 동안은 그 아이가 대문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본 후에야 뒤돌아 나도 반달음으로 집으로 갔다. 다행히 그 일이 다시 일어나지는 않았다. 계속 복용하는 약과 맏이인 N에게 어머니가 해주신다던 갖가지 보약과 음식들로 N이 점차 나아가고 있다고 우리 둘 다 생각했다. 잠시 잠깐 극진한 보살핌을 받던 N이 부럽기도 했다.
N은 공주에 있는 대학에서 원하던 공부를 했고 우리는 가끔 서울에서 만났다. 잘 어울릴 것 같아 하숙집 오빠에게 N을 소개했지만 자기 타입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던 오만한 오빠의 말을 에둘러 전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내 친구가 얼마나 진국인데 두고 보라지 했다.
N은 졸업 후 그 좋다던 지리를 멀리하고 영어 교사로 전향해 통영 ㅇㅇ여중에서 교편을 잡았다. 학교에서 열 살이나 많은 강원도 출신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내가 통영으로 발령받아 잠시 있었던 일 년이 고등학교 졸업 후 N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때이다. 내 친구가 꽃같이 활짝 예쁘던 때이기도 했고 그때처럼 행복해 보인 적도 없었다. 열 살 연상인 남자가 친구의 남편으로 곁에 있으니 안심도 되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병으로 친구는 떠났다. 종종 몸은 어떤지 물으면 괜찮다며 정기검진을 받고 약도 계속 먹는다고 대답했던 친구. 나는 N의 잘생긴 외동아들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내 아이들이 내가 N을 처음 만났던 그 나이만큼 자랐다. 살면서 문득문득 몇 번이나 생각나는 N의 어머니의 진심으로 고맙다던 그 말, 친구가 보고 싶을 때마다 어머니의 그 몇 마디가 더 진하고 먹먹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날 N의 웃음.
처음으로 점집, 아니 고상하게 ㅇㅇ철학관을 찾은 건 H 때문이었다.
학보사 기자로 사회과학 서적을 꽤나 읽었을 H의 의외의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지만 그즈음 나는 좋다, 싫다 분명하게 말하는 편은 아니었다. 더욱이 H가 학점 때문이었는지 진로에 대해 막막해하던 중이었다. 내가 먼저 살고 있던 삼 층집 일 층에 H도 다른 친구와 세들어 살고 있었다. 근본적인 출처만 달랐지, 나는 사업하시는 아버지 돈으로, H는 포천에서 농사지으시는 아버지 돈으로 놀고먹는 건 우리 둘 다 마찬가지였다.
H는 그 나이에 보기 드물게 이성과 감성이 잘 조화된 균형 잡힌 아이였고 학교 신문을 만들면서도 소설 읽기가 더 재밌다 했다. 술을 제법 마셔서였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는지 늘 속이 쓰리느니 트림을 하며 위염이 왔느니 했는데 그건 내가 그 아이에게 공감해 줄 수 없었던 유일하게 이상한 점이었다. 고작 스물한두 살 먹은 사람의 속이 쓰리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과연 위염이 그 나이에도 올 수 있는 병인지 오리무중이었고, 더구나 나를 서른 중반에 출산하신 50대의 내 어머니가 호소하던 증상이기 때문이었다.
H를 따라 점집보다는 철학관이 더 어울리긴 했던 환한 방에서, 햇살을 등지고 있어 마치 자신의 뒤로 후광이 비치는 듯 보이던 아저씨는 내가 직장 운이 있으며 귀한 아들을 낳을 거라 했고, H는 나라의 녹을 먹을 운명이라고 점잖게 말했다. 별생각이 없던 나에 반해 H는 곧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금방 합격했다. 직장 생활을 몇 년 한 후 국비로 미국 연수를 다녀오더니 아예 그리로 떠나버렸다. 그 나이에 미국물을 먹었고 아무리 뜯어 보아도 그 아이의 지성이나 인간미의 반의반도 못 미쳤던 외모의 H가 미국에서는 엘프(요정) 소리도 들었으니 나였어도 가면 안 돌아왔을 터. “엘프, 엘프.” 하며 세상 모든 걸 얻은 것 같던 표정의 친구를 잊을 수 없다.
H는 키와 체구가 나보다 훨씬 작았지만 통찰력이 있고 가끔 기댈 수 있는 의젓함이 있긴 했으나 선의의 거짓말을 할 줄 몰랐고 면전에서 아무렇지 않게 냉정하게 말할 때도 있었다. (그게 그 아이의 매력이었고 나는 지금도 그런 사람에게 끌릴 때가 있다.) 가령 내가 혼신을 다해 만들어 주었던 볶음밥에 대해, 나는 그 볶음밥에 적채(보라색 양배추)까지 넣는 정성을 기울였는데, 끝내 맛있다 한마디 하지 않는다든가, 사서 고생이라 했던가, 당시에는 그 말의 뼈아픈 의미를 몰랐다. 그 비슷한 이유로 내 결혼에 처음부터 호의적이지 않아 결혼 후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예전만큼 예쁘지 않다고 기어이 한마디 한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얼굴을 본 게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상하이를 떠난 내내 그곳을 그리워했다.
사시사철 도시에 드리워진 뿌연 미세먼지나 한여름이면 숨이 막힐 정도의 강렬한 햇살, 축축한 공기는 작은 불편함일 뿐 그것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매력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전환점을 가져다주어 잊고 지내던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선물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적지 않은 타지의 시간은 한국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던 관계에 소홀해지기 충분했다. 친구의 영면도 지켜보지 못한 상처가 있는 시간이 되었고 더 아프게는 아버지도 내가 그곳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소원해진 관계들이 회복되고 치유의 시간이 흘렀다 한들 그들을 대신할 수 있을까.
N과 H는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소중한 친구들이다.
N은 영원히 떠났고 H와의 재회는 기약이 없다. 아이들이 다 자라 홀가분한 나이가 되었는데도 많은 걸 함께 하고 나눌 최고의 친구들은 곁에 없다. 웃으며 즐거웠던 시간 뒤로 예의 파고드는 외로움의 정체는 언제나 나를 연인처럼 바라봐 주던 떠나간 친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