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청남대에서
류승하
지난달 충북 청주 청남대에 다녀왔다. 청남대는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으로 1983년 전두환 정권 때 조성된 곳이다. 원래 이름은 ‘봄을 맞이하는 집’이라는 뜻의 영춘재9였으나 1986년 청남대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2003년까지 대통령 휴가용 별장으로 쓰였고, 전두환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여러 국정 최고 책임자가 이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며 정국을 구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과거에는 일반인이 방문할 수 없었고, 군부대까지 주둔하고 있었다. 2003년 참여정부가 민간 개방을 결정하고 나서야 누구나 다녀갈 수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청남대가 과거 정치적 공간이었다는 것은 숲길에 남아 있는 콘크리트 벙커 등 군사 시설에서나 조금 느낄 수 있다. 나머지 군사 시설들은 대개 해체됐다. 사실 이는 현재 청남대가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오늘날 청남대가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전시 프로그램 구성에서도 확연히 보인다. 본관 및 별관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는 다소 뻔한 느낌의 전시만이 진행되고 있다. 역대 대통령 사진을 쭉 걸어놨다든가, 청와대 집무실 책상을 재현한 자리에서 기념사진을 찍도록 해뒀다든가 하는 것은 잠시 재미는 있을지 모르나 신선하다는 느낌은 받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청남대가 잔뜩 힘을 주고 있는 프로그램은 숲 해설이다. 아무래도 과거 대통령들의 산책로였을 숲길을 전문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함께 걷는 경험이 더 흥미로울 거라고 여기는 듯싶다.
청남대 숲 해설을 담당한, 목소리가 괄괄한 숲 해설사는 하루 이틀 구력이 아닌 듯 능숙했다. 그는 “이건 삶아 먹어도 되나?” 라는 아주머니들의 질문 세례에도 “그걸 명이나물로 알고 드시면 바로 사지마비가 와요” 라고 능청스럽게 받아치며 숲길 사이사이 온갖 나무와 풀들의 이름을 가르쳐주고 또 그에 얽힌 얘기들을 줄줄이 보태주었다. 신갈나무·떡갈나무·졸참나무·망초·개망초…. 쉬지 않고 쏟아지는 나무며 풀 이름에 얽힌 사연을 듣다 보니 맑은 공기 속에 절로 공부가 되는 기분이 든 것은 덤이었다. 평소 등산길에 아무렇게나 보아 넘기던 초목에 다 사연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아주머니들의 눈동자가 소녀처럼 동그래진 것도 좋았다.
한 시간 남짓을 걸어 대청호가 내다보이는 숲길 꼭대기에 도착하자 해설사는 일행을 남겨두고 내려갔고 그 뒤로는 쭉 자유 관람 시간이었다. 고은 시인의 「문의 마을에 가서」의 그 문의 마을이 수몰로 잠겨 있다는 대청호를 잠시 바라봤다가, 온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돌아가는 길에서 노무현 대통령 동상도 다시 봤는데, 숲 해설사가 청남대를 국민에게 돌려준 공로로 동상 앞길 이름을 「노무현 길」로 정했다가 정치색 논란에 「화합의 길」로 바뀌고 말았다고 해설해 준 걸 떠올렸다. 길 이름을 구태 바꿀 필요가 있는지 약간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소수 정치인만 독점하던 공간을 국민에게 돌려주었는데, 길 이름 하나 못 남길 일인가?’ 속으로 툴툴댔다.
숲을 한 바퀴 돌고 오니 시간은 점심때가 훌쩍 넘어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관람객은 더 늘어났고, 낮 더위는 절정을 향해 끓어올랐다. 벤치에 앉아 하드를 하나 베어 물었다. 그리고 더운 속을 달래면서 오늘의 청남대를 되새겼다. 한때 권력의 밀실密室에서 정치적 권위를 내려놓고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반환돼 자유로워진 지금의 청남대는 얼마나 여유롭고 아름다운가 말이다. 소수의 휴가 공간보다는, 누구나 숲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지금의 청남대가 훨씬 낫다. 20여 년 전 청남대를 국민에게 돌려주자 결심했던 정치인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여러 상념에 잠긴 가운데 한쪽에서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지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정치에서 풀려난 청남대에서 재즈 페스티벌이라, 음악마저 참 잘 어울리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청남대를 돌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