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뮤지엄 산’의 어느 날
심희옥
뮤지엄산을 관람할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트샵 근처에 있는 푸른색 대형 사과였다. 이 작품은 안도 타다오가 사무엘 울만의 시에 감동해서 만든 것으로 ‘청춘’이라는 제목의 조형물이었다. 아오리는 무르익지 않는 열매, 도전정신을 뜻하기도 한다. 사무엘 울만은 시「청춘」에서 ‘청춘은 인생의 시기가 아닌 어떠한 마음가짐’이라고 표현했다. 청춘은 늘 지금 다시 태어나고 시도하는 것이다.
명상과 치유의 공간인 뮤지엄 산은 박물관 겸 미술관으로 일본의 현대 건축의 선구자 안도 타다오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뮤지엄이다. 그는 미술이나 건축에 대해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고졸 출신으로 권투선수였던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건축은 대개 입방체로 짓는다. 그런데, 안도 타다오는 자연적인 요소로 살리는 방식으로 지었다. 그는 빛과 물이 공존하는 방식즉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건축 철학으로 유명하다.
본격적인 전시회에 들어가기 전에 조각 정원 옆에 있는 빛의 공간을 볼 수 있다. 그의 잘 알려진 작품인 일본에 있는 오사카의 건축물 「빛의 교회」와 비교되기도 한다. 공간 속의 의자에 앉아 잠깐 멈춤의 시간을 가졌다. 십자 모양 사이로 새어 나오는 하늘빛은 마치 너와 내가 그곳으로만 통하는 랑데부처럼 느껴졌다. 어떤 아티스트의 지면 소개로 오게 된 뮤지엄 산에서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 뮤지엄에서 특별히 준비한 새 작가의 개인전었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청조갤러리로 들어가니, 스위스 출신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기획전을 하고 있었다. 우고 론디노네. 1964년생으로 나보다 20년이 앞선 사람이었다. ‘burn to shine’이라는 타이틀로 전시되는 작가의 작품은 존 지오르노의 시 「빛나기 위해 타오르라」에서 영감을 받아 삶과 죽음에 대해 불교의 윤회설처럼 순환하는 이미지와 그것을 통해 재생되는 것, 다시 말해,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작품 「사랑은 우리를 만든다」에서도 총천연색으로 사랑이 무지개 빛깔처럼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삶이 태어남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문득, 어떠한 모성의 힘이 세계를 창조하려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그는 매일 일기를 쓰듯,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시계 연작 시리즈와 일출과 일몰 시리즈가 그랬다. 작가만의 매일매일의 성찰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모두 어떤 주기, 회로의 이미지를 준다. 특히, 원주시에 거주하는 1,000여 명의 어린이와 그린 드로잉프로젝트는 의미가 남달라 보였다. 낮과 밤으로 나누어 총 2,000여 장을 그린 아이들의 그림 속에서 나름대로 흰 캠퍼스와 검정 화폭으로 나뉘어 그리면서 삶이 영속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전시의 타이틀과 동명인 ‘burn to shine’은 전문적인 안무가와 협업한 퍼포먼스 영상으로, 아프리카 전통부족의 춤과 현대무용을 결합하여 소리를 만들고 신체의 역동적인 동작이 자극적인 경험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사면의 대형스크린으로 사운드를 듣고 화면을 보니, 압도되었다. 점차 황홀경에 이르는 이들의 의식은 해가 뜨며 막을 내린다. 그러나 다시 해가 지는 어둠과 함께 춤의 의식은 부활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이 영상을 보며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축제로 작가는 빛이 태어남을 역설하는 것 같았다. 흡사,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빛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더욱이, 백남준 관에 전시되어 있는 론디노네의 시그니처, 「노랑과 빨강의 수도승 」앞에서 돌덩이를 매개로 자연을 통해 그날을 성찰하는 작가정신이 느껴졌다.
경사가 지고 사선으로 뻗은 전시관들을 얼추 둘러보고 나니 바로 스톤 정원이 보였다.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조지 시걸의 「두 벤치 위의 연인」이 무척 극적인 구조로 시선을 붙잡는다. 두 벤치 위에 상대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문득 그의 얼굴이 눈앞에 클로즈업되었다. 2013년에 개관했다고 하니까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늘 응원하는 가수인 김동률이 이 작품을, 지금은 폐쇄된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한 적이 있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간격이 있지만 저 연인들을 만나 보고 싶었다. 옥실옥실 행복을 꿈꿨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이제야 돌아와 나는 저 연인의 여자가 되어 남자에게 말을 걸고 싶다. 잘 있었냐고. 많이 보고 싶었다고. 스톤 정원을 한번 돌아보니, 안도 타다오의 돌산이 사방에 있고, 기화요초가 만발한 가운데, 「부정형의 선」과 「누워있는 인체」 기타 여러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관람하고 나오니 땡볕 한가운데 서 있었다. 푹푹 찌는 휴가철이라 주차장엔 자동차로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차 있었다. 성수기라 평일에도 끊임없이 자동차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비행기도 이륙하려면 연료가 필요하듯이, 음식점에 가 제철 밥상의 한정식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 관람을 마무리하며, 변천하는 사계의 자연 속에서 건축과 예술이 말해주는 조화미는 그동안 문화생활을 동경해 왔던 나에게 생의 통풍구이자 쉼을 선사해 줬다.
밤이 이슥해지고, 사진을 되짚어 보며 일별 한다. 내가 본 멋진 예술품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으로 잘 알려진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을 생각나게 한다. 바쁜 와중에도 밤하늘에 뜨는 별을 보듯, 내 삶의 빛나는 선순환이 되었다. 또한 예술은 영원하고 아름다우며,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관람으로 내가 전보다 나은 사람으로 조금 가꾸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작가의 변
저의 뮤즈인 한 아티스트가 감동적으로 본 예술품을 보았는데, 다가오는 감정이 있었습니다. 합평이 있었고 재합평하라는 말씀이 있어서 수정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