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선택과 결정    
글쓴이 : 박희래    25-08-18 22:09    조회 : 1,764
   선택과 결정-한국 산문 세 번째 출품작.hwpx (68.1K) [0] DATE : 2025-08-18 22:09:27

선택과 결정

박희래

   구내식당 앞에 못 보던 게 생겼다. S청 운영팀에서는 점심 식사 시간 선호도 조사를 하고 있다. 식당은 경희궁홀과 인왕홀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다. 많은 직원으로 인해 자리가 부족한 식당 좌석은 늘 줄을 길게 서야 하고 북적인다. 단순한 운영 개선을 넘어 직원들의 소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는 이번 조사는 각자 원하는 안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으로 의사표시를 하게 되어 있다. 현황판은 더욱 많은 직원을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기 위해 일 층 현관과 삼 층 후문 입구에도 별도로 설치되었다. 식욕을 뒤로하고 주의 깊게 살펴본다.

  첫 번째 안은 식당 도착 순서에 따라 지금처럼 열한 시 사십 분 시작해서 오후 한 시에 식사를 마치는 것이다. 두 번째 안은 이부제로 삼십 분 간격으로 먹고, 세 번째 안은 삼부제로 이십 분 간격으로 먹는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동그란 스티커를 현황판의 자기가 원하는 안에 붙이며 참여하는 방법이다. 이미 여러 장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조사 기간은 칠월 십육일부터 이십이 일까지 일주일이다. 스티커를 잡으려다 미룬다. 마감일에 붙이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출근해서 기다려지는 것 중 하나는 즐거운 점심시간이다. 오늘 반찬은 뭐가 나올까. 지금이야 매주 식단표가 월요일 아침에 식당 게시판에 붙지만, 오래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어떤 반찬이 나올지 매일 궁금했다. 식당으로 가면서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식당 입구에서 좋아하는 반찬 냄새가 나면 군침이 돌았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 말은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점심시간은 동료들과 소통하는 시간이다.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마주 앉아 서로의 눈을 보고 대화하면서 먹는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최신 정보들과 주제들이 오간다. 점심시간은 배고픔을 채우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첫 번째 안은 출근해서 두 시간 사십 분 일하면 휴식과 음식 섭취가 필요할 때쯤이다. 식사 후 다섯 시간을 일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세 번째 안 이십 분은 너무 짧아 즐거워야 할 점심 식사 시간을 마치 전쟁 치르듯 해야 한다. 업무가 제대로 될까 싶다. 아홉 시 출근 여섯 시 퇴근 사이 점심시간이 오전에 치우쳐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 두 번째 안은 괜찮아 보인다. 요즘은 아침을 굶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삼십 분 일찍 밥을 먹는 것을 마친다면 효율적이지 않을까도 싶다. 공복의 시간이 길면 허기도 지고 위에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오후 네 시를 전후해 간단한 간식타임이 있어 허기를 면할 수도 있다. 어떤 안으로 결정될지 궁금하다. 입이 빠른 직원은 자기 생각을 이루고 싶어 이 사람 저 사람을 유혹한다. 식사 시간 정하는 방식이 생기를 돋군다.

  투표 나흘째다. 세 번째 안은 스티커가 다른 안에 비해서 확연하게 적다. 붙여진 스티커를 보니 사람들의 다양성이 엿보인다. 점심 식사 시간 결정에도 일상의 흐름에 녹아든 습관이 나타난다. 현황판을 바라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익숙한 관습의 벽이 느껴진다. 몸과 마음이 만들어낸 규칙과 법칙들이 삶을 현재의 틀 안에 묶어두고 있다. 점심 식사는 단순한 식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관습, 규칙, 법칙의 조화로운 균형을 통해 행복한 삶을 만든다. 관습은 삶의 토대를 이룬 기반이 되었지만, 성장을 위한 통로이기도 하다. 행복한 점심 식사 시간은 직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고 인식의 전환과 함께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는 벽을 넘어야 한다. 옛날부터 정해진 식사 시간은 관습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 모두의 편의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가 온 것이다. 이 순간 우리는 멈춰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규칙과 습관을 만들어가면서 더욱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습관이 편리할 때도 있지만 타성에 젖어 드는 경우도 있다. 나는 두 번째 안에 의사표시를 한다. 식사 후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위해 경희궁 산책을 하는 여유를 누리고 싶어서다.

  투표 결과가 공개되는 마지막 날이다. 결과는 이부제와 삼부제 보다 현행 유지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팔십 퍼센트 이상 압도적으로 많았다. 왜 그럴까?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그러나 다수의 표를 받은 쪽으로 결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투표하지 않고 하고 세 번째 안으로 결정되었다면 너무 짧은 식사 시간으로 불편한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이번 선호도 조사 참여 방식으로 대부분 관습을 바꾼다는 게 어렵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투표는 고유한 권리이다. 식사 시간이 확정되어 불만을 잠재우는 것은 투표의 위력이다. 우리는 선택했고 결정한 것에는 책임이 따른다.


 
 

박희래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3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등단 전 합평에 통과한 작품 올리는 방법 웹지기 08-11 1911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91456
3 선택과 결정 박희래 08-18 1765
2 적당한 안전거리 박희래 07-20 1933
1 추억의 TV 속으로 박희래 07-02 2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