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트촠맅 플리즈
이나경
2023년 늦가을, 영국 옥스퍼드 카팍스 타워에 있는 한 카페에 앉아 핫초코를 한 입 마셨다. 순간 한숨이 푹 새어 나온다. 핫초코, 핫초콜릿, 핫촤컬릿 등 현란한 혀드리블로 주문을 재차 시도했지만, 그럴 때마다 직원은 눈을 세모나게 뜨며 “Sorry?”라고 만 대답했기 때문이다. 저런 반응을 보면 내가 더 미안하다. 곧 중년이 될 연배인데 스스로 핫초코도 못 시켜 먹는 내가 참으로 부끄러웠다. 빳빳한 혓바닥을 가졌음을 인정하며, 아이폰으로 ‘Hot chocolate’를 쳐서 직원에게 보여줬다. 한국에서 먹고 사는 데 큰 문제 없는 삶을 살았었는데, 도대체 나는 왜 낯선 영국 땅에 와서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일까.
2023년 상반기, 직장에서 벌어졌던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난 중등도의 우울장애를 진단받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게 너무나도 싫어서 ‘동반휴직’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남편이 일하고 있는 영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너무 무작정 떠났던 것일까, 옆집 사람이 나에게 “Hi”라고 인사만 해도 사자를 본 톰슨가젤처럼 도망치곤 했다.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하루 종일 침대 속에 콕 박혀있다가 밤늦게 돌아온 남편과 겨우 몇 마디 주고받으니, 이럴 거면 그냥 한국에 있지 왜 영국까지 와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나 싶었다. 고민 끝에 어학원에 등록하여 영어를 배워보기로 했다. 영국에 있는 6개월 동안 뭔가 남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반, 남편이 아닌 타인과 말이라도 섞어보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어학원에 가서 처음 수업을 들은 그 순간, 참 대책 없이 이 땅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영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었고, 수업 시간 내내 생소한 영국식 발음과 더불어 여러 나라의 다양한 악센트가 넘실거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묵언수행뿐이었다. 이랬던 나도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수업이 들리기 시작했으나, 입만큼은 정말 트이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들께서는 이런 나의 특성을 많이 배려해 주셨다. 특히 제인이라는 선생님이 그러했다. 그녀는 영어를 못하는 내가 봐도 수업 기술이 탁월했다. 그리고 유쾌했다. 부족한 나를 잘 보듬어주는 그녀 덕분에 내 영어 말하기 실력은 손톱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에서 언급한 핫초코 주문 실패 사건이 벌어졌다. 수업 중, 제인에게 도대체 ‘Hot chocolate’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냐고 물었다. 질문을 들은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호트촠맅!”
‘Hot’은 미국식으로 발음하면 ‘핫’이지만 영국식으로 발음하면 ‘호트’다. 실제로 영국 식당에 가서 ‘핫워러 플리즈’라고 말하면 바로 “Sorry?”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이처럼 그들에게 ‘핫’이란 발음은 낯설다. ‘Chocolate’는 ‘촠맅’이라고 발음해야 한다. 제인은 ‘Chocolate’는 발음이 세 덩어리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론 두 덩어리라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수강생은 이 ‘촠맅’ 발음을 어려워했다. 그 모습을 본 제인은 수강생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해당 발음을 정확히 발음할 수 있도록 가르쳐줬다. 내가 쏘아 올린 핫초코 때문에 학생 모두가 수업 시간 내내 ‘호트촠맅’ 수행을 하는 것 같아 뭔가 웃음이 났다. 수업을 마친 후, 나에게 모욕감을 줬던 그 카페로 갔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직원에게 “호트촠맅 플리즈”라고 말했다. 잠시 후 점원은 나에게 “Take away or eat in?”라고 대답했다. 점원이 나의 주문을 이해한 것이다. 순간 귓가에서 폭죽이 터졌다. 제인! 내가 해냈어, 해냈다고! 다음 날, 제인은 나를 보자마자 어제 핫초코 주문해 보았냐고 질문했다. 주문에 성공했다고 대답하니 그녀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Lovely!”
영국에서의 6개월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직장으로 온 지도 벌써 2년 차가 되었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지도할 때 문득 제인을 떠올린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존중해주며 차근차근 그리고 다정하게 지도해주던 그 모습. 날 바라보며 방긋 웃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며 난 그녀와 얼마나 닮아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어떤 말도 이해할 수 없는 교실에서 몇 달간 묵언수행을 해보고 나서야 내 제자들의 고충을 이해하게 된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난 초등학교에서 장애학생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다. 우리 아이들의 생각 주머니가 작아서, 교사인 내가 어떻게 해야 삶에 필요한 지식을 잘게 다듬어 그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만 하며 살았다. 하지만 내가 그 생각 주머니와 말 주머니가 부족한 학생이 되어 보니 교실 안에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참 고통스러웠다. 특수학급이 아닌 일반학급에서 너희가 마주하는 지식의 바다가 이런 모습이었겠구나, 이 억겁의 시간을 너희는 도대체 어찌 견디는 걸까.
이번 여름방학 때 일주일 동안 옥스퍼드에 머물렀다. 다니던 학원 출입구, 즐겨 가던 카페 앞을 서성이며 아는 얼굴이 있는지 살펴봤지만, 애석하게도 그들과 마주치진 못했다. 아쉬움을 달래러 들어간 카페에 앉아 핫초코를 시켰다. 영국 핫초코는 미제 핫초코만큼 달지 않지만 부드러움이 매력이다. 영국에서의 6개월은 어쩌면 이 호트촠맅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게 날 달래주고 힘껏 안아주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때의 나를 잘 가르쳐주신 제인 선생님의 삶 역시 언제나 부드럽고 달콤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