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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먹어도 되지 뭐    
글쓴이 : 신은영    26-07-05 09:25    조회 : 49

뭘 먹어도 되지 뭐

신은영

 

냉장고 문을 연다. 반찬통을 쌓아두던 칸이 며칠째 텅, 비어 있다. 모처럼 식구들이 집에 있으니, 무얼 차릴까. 김치냉장고 야채/과일 칸에서 참나물, 애호박, 오이, 새송이버섯, 섬초를 꺼낸다. 오늘의 요리는 된장찌개와 시금치 된장국, 애호박구이, 오이겉절이, 나물무침이다. 뚝배기와 냄비에 다시마, 멸치, 표고버섯을 넣고 국물을 우린다. 서둘러 채소를 다듬어 씻고, 오이를 썰어 소금에 절이고, 애호박도 얇게 썰다 보면,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마음이 바빠져 안방 쪽에 귀를 기울인다. 이제쯤 일어나 나올 때가 되었는데도 남편은 여전히 기척이 없다.

나에게 요리하는 과정은 늘 전투를 치르는 듯하다. 요리를 좋아하고,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눠 먹던 엄마의 식탁은 언제나 여유롭고 풍성했다. 큰오빠부터 막내인 나까지, 일곱 식구가 일요일 아침이면 큰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바글바글 끓는 된장찌개, 텃밭에서 금방 따온 푸성귀와 싱싱한 생선으로 조린 반찬. 각자 한 공기씩 밥을 퍼주었지만 다들 자기의 밥을 큰 양푼에 부어 모아, 엄마가 맛있게 버무려줄 동안 꼴깍꼴깍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비빔밥을 먹던 장면은 내 기억 속 그림이 되어 아름답게 저장되어 있다. 그렇게 추억이 된 음식을 먹어왔지만, 나는 마지못해 의무감에 쫓겨 식탁을 차린다. 과연 딸이 나처럼 엄마가 차려내던 식탁에서 따뜻함을 추억할 수 있을까. 가족의 건강을 위한다는 책임감이 강박으로 변해, 즐거움은 사라지고 기계적인 손길만 남았다.

내가 요리에 대해 굳어진 태도가 된 데에는 가족들에게도 지분이 있다. 딸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부터 남편의 극성은 대단했다. 오로지 딸아이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 내놓으라는 암묵적 요구가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입맛은 까다로워졌다. 남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찌개 없이는 밥을 못 먹고, 새로운 음식에는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한 번 먹은 반찬은 다음 끼니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여기에 내 입맛도 한몫한다. 나물류를 좋아하고 갓 무친 푸성귀나 생채소를 즐겨 먹으니, 우리 세 식구의 식탁에는 늘 여러 반찬과 찌개, 국으로 가득하다. 요리할 때 남편이 옆에서 도와주기도 하고, 딸아이가 파스타나 감바사 같은 요리를 해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가 요리해야 식탁을 차릴 수 있다. 티브이에 나와서 아내를 위한 요리, 아이들을 위한 요리를 뚝딱 잘하는 남편을 둔 주부가 부러워진다.

 

참나물과 섬초를 데쳐내자 드디어 안방 문이 열리고 남편이 나온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내려가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기까지 넉넉히 10분은 기다려야 한다. 삐리릭. 현관문을 열고 남편이 들어온다. 손을 씻고 나오자마자 썰어 놓은 애호박을 건넨다. 남편이 애호박을 굽는 동안 나는 뚝배기엔 채소와 두부를, 냄비엔 섬초를 넣고 된장찌개와 된장국을 끓인다. 나물들을 무치고, 오이를 상큼하게 버무린다. 어제 재워둔 불고기도 볶아 낸다. 완성된 요리를 접시에 담아 좋아하는 반찬을 앞에 배치하고 가운데에 불고기를 놓고 한상차림을 마친다. 요리가 다 될 즈음에 딸내미 방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빨리 나와. 음식 식는다.”

딸아이가 자리에 앉으면,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고된 방송일에 시달리는 딸아이가 달콤한 잠을 포기하고 식탁에 앉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 할 처지다. 뭉그적대며 한 알씩 밥을 떠먹는 딸을 보며 걱정스러운 한 마디를 건넨다.

먹음직스럽게 푹푹 먹어. 그래야 기운 차리지.”

입맛 없어, 엄마 음식은 너무 건강한 맛이 나. 저녁엔 마라탕이나 먹으러 갈까 봐. 스트레스 쌓여서 욕구가 해소되지 않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하는데, 눈치 없는 남편이 한 마디 보탠다.

된장찌개가 좀 짜.”

, 그 입 좀 다물었으면 . 그런데 난 왜 그들의 반응에 괜스레 위축되냐고. 주부로서 자존심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다 슬며시 오기도 생긴다. 고개를 들고 당당히 선언할까. ‘이제부터 매일 배달 음식과 반찬 가게서 산 반찬, 밀키트로만 식탁을 차릴 거야. 알아서들 드셔.’ 떠오르는 대로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일보 직전이다.

음식에 대한 맛 평가보다는 나에게 칭찬 한 스푼씩 부탁해.”

느릿느릿 음식을 떠먹던 딸아이가 먹던 음식을 한참 바라보다 말을 잇는다.

엄마가 싸주는 커피는, 가끔은 없던 힘을 끌어모으게 해줘. 입안이 바싹 마르게 긴장하는 생방송을 끝내고, 온몸을 연결한 체인들이 늘어져 철거덕거릴 때 흘려보내 주는 한 방울의 윤활유랄까.”

마뜩잖아하던 얼굴을 펴며 남편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젠 내 안의 케케묵은 의무감과 책임감일랑은 내려놔야겠다. 매일 넘쳐나는 뚝딱 요리인플루언서들의 마법을 부러워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즐거움을 찾아야지. 뭘 먹어도 가족과 함께라면 되지 않나. 매번 맛있고 대단한 요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도 조금씩 내려놓아야지. 식탁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하루를 나누며 배려를 주고받는 시간이니.

오늘도 마트에서 눈에 띄는 재료들을 골라 바구니에 담는다. 여러 가지 맛 코인 육수까지 야무지게 챙긴다. 이렇게 마음먹어도 강박에 절은 의무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장은 요리가 더 싫어지지 않기를, 결과로 과정의 즐거움이 잠식되지 않기를 스스로 되새긴다. 이전보다 가붓해진 식재료들을 김치냉장고에 넣으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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