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 예찬 <자기 소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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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옥선
향기가 가득한 봄 햇살은 부드럽게 부서지며, 여린 풀냄새와 흙냄새를 닮은 봄바람은 따스한 온기로 대지를 감싸고 있다. 어느새 싱그러운 바람이 놀고 간 그 곳에는 생명으로 탄생한 풀과 꽃으로 가득히 피어나더니 환희의 기쁨으로 대지는 연푸른 융단을 깐다.
해마다 봄이 되면 마치 어젯밤의 꿈인 듯 환상인 듯 아련한 기억의 저쪽 끝에, 나의 어린 시절 봄에 있었던 기억을 펼친다.
한 편의 드라마나 영화 속의 장면처럼 봄나물을 뜯으러 들로 나가는 아이들, 눈부신 햇살은 따사롭긴 하지만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봄 소풍을 시샘할 때여서 아이들의 코에서는 누런코가 들락날락하고 하얀 물코를 연신 훌쩍인다.
겨울을 난 아이들은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며 흙먼지 뽀얀 행길을 걷거니 뛰거니 장난을 하며 걷는다. 나와 친구들은 하나같이 귀가 반쪽이 나오도록 짧다란 단발머리에, 세수를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얼굴을 하고 마냥 즐거워한다.
창칼이라고 들어 보셨는지? 봄나물을 뜯을 때 꼭 필요한 도구인 생활용 칼이다. 가을에 아버지가 논에서 잘 익은 벼를 벨 때 쓰던 부러진 헌 낫을 버리지 않고 두었다가 낫의 칼날이 넓적한 다시마 잎 모양처럼 생긴 것을 칼잡이 부분을 망치로 톡톡 두들겨서 뾰족하게 만든다. 잘 다듬어진 손잡이에 나무자루를 꽂아서 만든 자그마한 칼을 말한다. 무어 하나 그냥 버리는 것이 없던 시절에 그 칼은 우리 집안에서 요긴하게 쓰는 물건이었고,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맡기기엔 위험한 것이다. 나와 아이들은 집안에서 두루 쓰이는 창칼을 부모님께 떼를 써서 쓰기를 허락 받고, 또 쓰임에 있어서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들은 후에나 창칼을 받아들고, 할머니께서 댕댕이 풀줄기로 만들어주신 나의 보구니(바구니)를 들고 봄나물을 뜯으러 가는 것이다.
백석의 시 <여우난 골족(族)> 에 나오는 시 구절 중 어린 시절의 시인이 명절날 아베 어메를 따라 큰댁에 가면서 개를 데려가는 재미있는 구절의 부분과 장면을 떠오르게 했던 착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집에 혼자 있을 개가 불쌍하다며 데려왔다. 봄 소풍에 따라나선 개는 이밭 저밭을 뭉개고 뛰어다니며 땅을 파고 괜히 땅을 보고 짖기도 하던 개 때문에 몹시 기분이 상해 결국 친구는 울고 말았던 기억이 이제는 잔잔한 영상으로 남아있다.
봄이 되면 자주 갔던 단골 밭 아랑방골에는 지금 생각해봐도 씀바구(씀바귀)와 나생이(냉이)가 지천으로 정말 많았다. 친구들과 떠들며 놀면서도 작은 손으로 나물을 캤지만 금방 바구니에 소복하게 가득 담겼다. 나물을 뜯어다 어머니께 갖다 드리면 거듭거듭 칭찬을 하시며 저녁 때 맛있게 나물요리를 하여 가족이 다 함께 봄의 만찬을 했었다.
아랑방골 밭에는 가끔 동네 어르신들께서도 나오셔서 나물을 한주먹씩 뜯어 가시곤 했었다. 그때만 해도 어른들의 일상복은 대부분 흰 옷이 많았다. 우리가 밭이나 들에서 나물을 뜯고 있을 때 멀리서부터 흰 옷을 입은 어른의 모습이 가까워지면 반가웠으며 아이들만 들에 있어서인지 괜히 무서웠던 마음이 편해지고는 하였다.
분당골에는 몸에 좋다는 깨끗한 미나리가 많아서 좀 멀긴 하였지만 어머니와 함께 호미를 들고 가서 아예 미나리를 뿌리 채 뽑아다 미나리꽝을 만들어 놓고 미나리를 길러 먹었다. 맑은 물속에서 다른 거름이 없이도 물만으로도 잘 자랐던 미나리는 베어 먹고 얼마쯤 지나면 또 쑥 올라오는 성장이 빠른 효자 반찬이었다. 잘 자란 미나리를 잘라 깨끗이 다듬어서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서로 정을 나누기도 했었다.
요즈음 식생활 공해로 문제가 되고 있고 사람들은 먹는 것에 혼란을 겪는 것 같다. 가끔 탄천 변에 나가 운동을 하다보면 천변에서 쑥이나 나물을 뜯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 곳은 해마다 유월 장마철이나 시월 태풍이 올 때면 강수량이 많아지면서 악덕 기업들의 횡포나 도덕적 해이로 온갖 오수와 폐수가 흘러들게 하여 강에 오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엄청난 강수량으로 인해 천변 전체가 범람하기 직전까지 물이 가득 차는 것으로 볼 때 천변은 온통 중금속에 노출 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그런 것을 본다면 아쉽지만 천변의 나물은 먹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고, 대신 시장에서 나물을 사다가 먹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봄에 나는 나물은 독이 없어 모든 새싹이 약용식물이라 한다. 사람들은 제철에 나는 음식을 많이 먹어두라고 한다. 봄나물은 필수영양소가 고루 듬뿍 들어 있어 면역력을 높여주고 칼슘과 인, 비타민은 나른함을 이기게 한다고 말한다.
내가 어려서 먹었던 음식은 공해가 없고 천혜의 자연조건이 자연스레 갖추어졌던 친 자연적인 보약밥상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맛을 보기는커녕 그런 것이 있었다는 것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청정한 것을 추구하고 로컬 푸드(건강한 밥상)에 관심이 많은 현대인으로서, 이제는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무공해와는 멀어져서 친 자연적인 보약밥상과 같은 음식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며 시장바구니를 챙긴다. 아들과 남편에게 청정한 고향의 봄나물을 뜯어다 먹일 수는 없지만 시장에 가서 두릅나물과 취나물이라도 사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