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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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저 화분 어떻게 해요? 자꾸 죽어가는데 뭐 아는 방법 없어요?”
시골에서 왔어도 채소 한 번 안만져 봤다는 언니는 뜬금없는 내 질문에 착한 눈만 소처럼 꿈벅할 뿐이다. 매일매일 출근하면 살펴보던 아레카 야자, 심심하면 들여다보던 나의 아레카 야자.
오늘은 잘 지냈나 혹시 더 나빠진 건 없나, 새 잎은 자랐나 유심히 살펴볼 정도로 사랑하는 식물이다. 내가 애착을 느끼는 이유는 수만 명의 사람들의 담배냄새, 술기운에 숨막혀 하면서도 꿋꿋이 자라왔기 때문에, 아레카야자의 진짜 주인인 우리 엄마도 야자처럼 온갖 고통 다 이겨내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엄마가 나을 때까지 절대 내 집에서 죽어나가는 건 아무것도 없게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기 때문에 요즈음 시름시름 앓고 있는 아레카 야자가 신경 쓰였다.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그리고 세심하게 살폈는데도 잎 끝 부분이 노래지더니 차츰 말라가기 시작했다. 화초 재배하시는 분에게 키우는 방법도 배우고 가장 좋은 흙도 사서 바꿔주었는데 여전히 죽어가고 있었다.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빠앙~” 승용차의 날카로운 경적소리가 빠르게 사라진다. 아이쿠, 또 이렇게 무단횡단해 버렸네. 어학연수하는 동안 무단횡단을 쉽게 하는 캐나다 사람들의 습관에 익숙해져 나오 모르게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버리기 일쑤다. 한국은 그곳과 달리 차가 우선이라는 인식이 박여 있어서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습관은 쉽게 바뀌어지지 않았다. 특히 다른 생각에 몰두해 있을 때 신호 지키는 것은 까맣게 잊고 건너버린다. 무의식적으로 몸이 걷는 것이다. 얼마 전 아레카 야자를 맡긴 꽃집에 갈 때도 자소서 생각에 멘붕이 와서 무단횡단을 해버렸다. 지금까지는 지인들의 추천으로 일을 맡았는데 이번 일은 자소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글쓰기여서 많이 생각하고 써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니 자소서 쯤은 쉽고 즐겁게 쓸 줄 알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 날 어필하는 데 부끄러움이 많은 내가 나의 장점, 성장 배경을 상대방이 호의를 갖도록 유도하며 글을 쓴다는 게 영 어색했다. A4 용지로 여덟 장을 채우며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해도 깔끔한 자기소개서가 나오지 않았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스토리텔링, 사진과 영화 등을 공부한 나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거기에 더해 각종 자격증과 대화 능력 향상을 위한 레슨도 받았고 영어 말하기 실력도 갖춘 것이었다. ‘어? 난 뭐 한거지? 분명 시간 낭비하지 않으려고 하루 네다섯 시간 자가며 계획 세우고 일을 준비해왔는데 정작 중요한 것들을 준비하지 않은건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들을 왜 좀더 적극적으로 내 꿈과 연결시키지 않았던 것일까?’ 자책 비슷한 생각을 거듭 하다보니 불안하고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시간만 낭비한 채 바쁘게만 살았던 건 아닐까? 내 꿈을 펼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거의 결론으로 굳혀 가니 마음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 대체 내가 왜 바쁘게만 살아오고 삶의 경험들을 쌓아오지 못했을까에 대해서 말이다.
“왜 이렇게 사십니까..?” 꽃집 아저씨의 탄식이 섞인 낮은 목소리가 가슴을 콕 찌른다.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아저씨가 말씀하신 대로 3주에 한번씩 물 줬는데요. 정확하게 날짜도 체크하면서요.”
“으잉? 내가 언제 그랬어요? 얘는 물을 많이 좋아하는 애여서 일주일에 한번씩 1리터는 줘야 한다니까.. 이것 봐요. 말라서 뿌리가 다 오그라들었네!”
갑자기 눈앞에 어두움이 쫘악 깔리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아저씨의 이야기를 정반대로 듣고 아레카 야자를 키워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건가? 아니 어떻게 정반대로 들을 수 있지?
아저씨가 야자의 뿌리를 자르고 다시 흙을 덮는 모습을 보면서 몰려드는 생각들. 아.. 이상 징후를 발견했을 때부터 아저씨에게 곧바로 물었어야 했는데…화초에 대해 잘 모르는 언니에게는 물어보면서 왜 전문가에게는 물어보지 않았지? 야자가 시름시름 앓던 초기에 물었어야 했는데 왜 지금에서야 온거지? 순간 야자와 자소서가 겹치면서 어떤 깨달음이 왔다.
아… 내가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르구나. 절절하게 아파하니까 애정이 있으니까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100% 정확한 문제해결방법과 99% 문제해결방법은 결과가 전혀 다른거구나… 대충, 애매하게, 그럴듯하게 대처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거구나.. 내가 애정이 있다는 사실에만 감격해서 100% 해결방법, 그러니까 현실적인 대응에 민감하지 못해서 중요한 기회나 순간을 놓쳐버린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어떻게 그걸 놓칠 수 있지? 매일 바라보고 매일 생각하면서 그렇게 애정을 갖고 있다면서 어떻게 중요한 순간을 잊어버릴 수 있냐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빠앙~!”하는 소리가 들렸다. 으이쿠, 또 무단횡단을 해버렸구나..
순간!! 섬광처럼 깨달았다. 아.. 이거구나..습관…무의식적인 습관…습관적으로 무단횡단을 하다가 위험할 뻔한 지금처럼 습관적으로 하다가 중요한 순간들을 놓친거였구나.. 심장을 뛰게 하는 애정 혼자 걸어가고 나의 현실적 대처는 그에 맞게 행동하지 못했던거구나..
습관은 주방에서 쓰는 ‘투명 랩’ 같다. 뚜렷한 형태는 없는데 일이 되는데 방해를 놓는다.. 문제의 본질에 손을 댔어도 투명 랩처럼 습관이 문제 앞에 있으면 본질을 만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안심한다. 문제가 무엇인지는 보이니까.. 알고 있으니까.. 나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혹은 해결했다고 ‘믿는다.’ 습관은 비닐 랩에 싸인 소세지에 케챂을 뿌리는 것처럼 적절한 대응 방법이 문제에 도달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나는 분명 행동을 취했기에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하며 시간만 보낸다. 내가 야자를 보고 만지면서도 대처에 소홀했던 것도 애정이 습관이 되어서인 것 같다. ‘나는 야자를 사랑해.. 그리고 물도 주고 있어. 잎이 노랗게 변하고 있지만 꽃집 아저씨 말대로 분갈이 때문에 그런 걸 거야..그러니 문제 없어.조금 더 기다려보자..’라고.. 나의 꿈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고 꿈꾼다는 사실이 습관이 되어 현재 나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보다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내 꿈을 사랑해..그리고 밤잠 줄여가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이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