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글쟁이의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필요하다.
영어 속담에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라는 말이 있다. 부지런한 삶을 찬양하는 말이지만 난 글쟁이에게는 이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쟁이의 부지런한 일상은 실존을 무디게 한다. 글쟁이도 인간이라 글로 밥술 뜨는 대부분의 글쟁이도 걸레로 방청소하고 빨래도 하고 돈도 번다. 난 글쟁이다. 글밥으로 먹고 살지는 못하지만 난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글쓰기를 가르치고 스스로 공부도 하는 교육자이자 자칭 글쟁이다.
요즘 난 살아있지만 마치 지름 30cm 투명한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처럼 숨만 쉬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일에 밀리고 뭔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면 어김없이 일탈에 대한 충동이 머리 속에 꿈을 낳는다. 머릿 속이 앞도 뒤도 볼 수 없는 뿌연 물안개 같고 뭔가를 해야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상태. 마음 속 해묽은 푸른 짚더미에 숨겨진 나의 잃어버린 무언가를 끄집어 내려다가 문득 내 자아에게 묻는다. ‘난 왜 이걸 하고 있지?’
마치 무언가 중요한 일이라기 보다는 아주 사소한 일, 가령 지난 잡지를 손에 들고 있거나 자료라는 종이 나부랭이를 들고 방안을 서성거리다가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머리 속을 스치는 묘한 기분 상태가 된다. 그리고 ‘아, 시간을 낭비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모를 죄악감에 다시 일을 붙잡는다.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에 새벽 3시 불면증에 인터넷에서 야한 영화를 찾아 보거나, 새벽 4시 부모님 몰래 거리를 달려본다. 그 모든 일탈 행동은 머릿속에 나의 신경을 가느다란 실타래처럼 조이기만 할 뿐이다.
결국 새벽 5시 난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들긴다. 자판에 머릿 속에 떠오르는 몇 단어를 두들겨 본다. 논리적이지도 않다. 주제도 없다. 마치 케플러의 타원설을 처음 배울 때처럼 알듯도 하고 모를 듯한 짜임에 주제까지의 연결은 중간에 초점을 벗어나다가 글의 끝에서 길을 찾는 느낌이다.
한 달에 1번이라는 나와의 약속과 그리고 알림. 그것은 글밥 먹이는 게으른 글쟁이의 손에 시간을 넘긴 채 노트북 화면에 엉킨 실타래의 일면만 보여주고 있었다.
불가능하다. 시간은 이미 늦었고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에서 나오는 말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인지 확신이 없다. 자꾸 댓글과 사람들의 글자들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감(感)은 있으나 생각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약하다. 주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등등 그간 들었던 내 글에 대한 평가에 자판을 두들기는 손이 무겁다.
글을 머릿 속에 집어넣어 믹서기에 갈아버리 듯 한 번에 짜임을 갖춰 쓰는 사람과 달리 배가 순풍을 맞아 흘러가듯 글을 쓰는 방식에 젖어버린 나의 글쓰기 방식은 처음부터 뭔가 불안했다.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는다......쉼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나에게 쉼은 무엇이었나? 하늘. 난 아파트 창 옆 방바닥에 누워 하루 3시간 이상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냥 구름 모양도 하늘의 태양 빛도 그냥 아름다웠다. 멍하니 바라보던 하늘. 시간의 무료함이 느껴지던 나날들.
10대의 시간은 그렇게도 무료했지만 난 그 하늘을 바라보던 시간이 무료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구르는 돌도 때로는 이끼가 필요하지 않을까? 글에도 쉼표가 있듯 내 인생에도 쉼이 필요함을 느낀다. 작가의 삶에서 쉼은 글의 양분이 되기도 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구르는 글쟁이에게는 이끼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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