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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쟁이의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필요하다    
글쓴이 : 김혜연    14-05-12 01:30    조회 : 6,537
   글쟁이의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필요하다.hwp (15.5K) [0] DATE : 2014-05-12 01:30:36
제목: 글쟁이의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필요하다.
 
 
 영어 속담에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라는 말이 있다. 부지런한 삶을 찬양하는 말이지만 난 글쟁이에게는 이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쟁이의 부지런한 일상은 실존을 무디게 한다. 글쟁이도 인간이라 글로 밥술 뜨는 대부분의 글쟁이도 걸레로 방청소하고 빨래도 하고 돈도 번다. 난 글쟁이다. 글밥으로 먹고 살지는 못하지만 난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글쓰기를 가르치고 스스로 공부도 하는 교육자이자 자칭 글쟁이다.
 
 요즘 난 살아있지만 마치 지름 30cm 투명한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처럼 숨만 쉬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일에 밀리고 뭔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면 어김없이 일탈에 대한 충동이 머리 속에 꿈을 낳는다. 머릿 속이 앞도 뒤도 볼 수 없는 뿌연 물안개 같고 뭔가를 해야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상태. 마음 속 해묽은 푸른 짚더미에 숨겨진 나의 잃어버린 무언가를 끄집어 내려다가 문득 내 자아에게 묻는다. ‘난 왜 이걸 하고 있지?’
 
 마치 무언가 중요한 일이라기 보다는 아주 사소한 일, 가령 지난 잡지를 손에 들고 있거나 자료라는 종이 나부랭이를 들고 방안을 서성거리다가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머리 속을 스치는 묘한 기분 상태가 된다. 그리고 , 시간을 낭비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모를 죄악감에 다시 일을 붙잡는다.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에 새벽 3시 불면증에 인터넷에서 야한 영화를 찾아 보거나, 새벽 4시 부모님 몰래 거리를 달려본다. 그 모든 일탈 행동은 머릿속에 나의 신경을 가느다란 실타래처럼 조이기만 할 뿐이다.
  결국 새벽 5시 난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들긴다. 자판에 머릿 속에 떠오르는 몇 단어를 두들겨 본다. 논리적이지도 않다. 주제도 없다. 마치 케플러의 타원설을 처음 배울 때처럼 알듯도 하고 모를 듯한 짜임에 주제까지의 연결은 중간에 초점을 벗어나다가 글의 끝에서 길을 찾는 느낌이다.
  한 달에 1번이라는 나와의 약속과 그리고 알림. 그것은 글밥 먹이는 게으른 글쟁이의 손에 시간을 넘긴 채 노트북 화면에 엉킨 실타래의 일면만 보여주고 있었다.
 
  불가능하다. 시간은 이미 늦었고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에서 나오는 말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인지 확신이 없다. 자꾸 댓글과 사람들의 글자들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은 있으나 생각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약하다. 주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등등 그간 들었던 내 글에 대한 평가에 자판을 두들기는 손이 무겁다.
 
  글을 머릿 속에 집어넣어 믹서기에 갈아버리 듯 한 번에 짜임을 갖춰 쓰는 사람과 달리 배가 순풍을 맞아 흘러가듯 글을 쓰는 방식에 젖어버린 나의 글쓰기 방식은 처음부터 뭔가 불안했다.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는다......쉼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나에게 쉼은 무엇이었나? 하늘. 난 아파트 창 옆 방바닥에 누워 하루 3시간 이상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냥 구름 모양도 하늘의 태양 빛도 그냥 아름다웠다. 멍하니 바라보던 하늘. 시간의 무료함이 느껴지던 나날들.
 
 
 10대의 시간은 그렇게도 무료했지만 난 그 하늘을 바라보던 시간이 무료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구르는 돌도 때로는 이끼가 필요하지 않을까? 글에도 쉼표가 있듯 내 인생에도 쉼이 필요함을 느낀다. 작가의 삶에서 쉼은 글의 양분이 되기도 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구르는 글쟁이에게는 이끼가 필요하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4-05-12 07:01:04 수필공모에서 이동 됨]

홍정현   14-05-12 15:40
    
공감이 가는 글이라 댓글을 달게 되네요.
저 역시 '짜임을 갖춰' 쓰기 보다는 '순풍을 맞아 흘러가듯' 쓰는 사람이예요.
저의 순풍은 열달동안 멈춰있습니다.
이끼가 너무 껴서 실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요.
자판 위의 손이 무겁지만 글쓰기가 습관이 되도록 노력을 해보려고요.
김혜연님의 문장은 흡인력이 강합니다.
분명한 장점이 있으니
단점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대할게요.
김혜연   14-05-15 00:03
    
감사합니다. 저도  잠시 휴학하고 거의 글에 손을 대지 못하던 기간이 길어지니까
 마음에 조바심만 생겨서 괴로웠었는데, 다시 글을 쓰고 이렇게 한국산문에 글을
올리게 된 것이 신기합니다.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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