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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냄새    
글쓴이 : 김지연    15-02-07 00:48    조회 : 6,667

                                                                          냄 새

                                                                                                                                       김지연

평소 일 주일에 한두 번 보던 조카들을 바쁜 일 때문에 두 주나 보지 못했다. 지우, 다연아! 이모 왔다. 내 새끼들 어디 있나! 기다렸다는 듯 조카들이 팔 벌리고 뛰어와 동시에 목을 감싸 안으며 매달린다. 아이들의 등살에 못 이겨 넘어졌다. 그 경황 중에도 큰 애 지우는 팔을 풀지 않고 악착같이 목에 매달려있다. 그리고는 제 몸 쪽으로 내 목을 꼭 끌어당기며 머리를 부벼대기 시작했다. 이모 냄새 나. 이모 냄새가 어떤 냄샌데? 이모 냄새는 그냥 이모 냄새지. 이모 냄새는 그냥 좋아. 순간 지우엄마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사 남매 중 셋째와 막내는 같은 해 태어났다. 나와 막내와의 연차는 여섯 살. 한 살 내지 두 살 터울의 아이들이 자그만치 넷이었다. 그때 엄마 나이 고작 서른이었다. 젊은 엄마에게 네 아이의 육아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고민 끝에 엄마는 두 돌 지난 셋째를 윗동네 할머니께 한 나절만 맡기기로 했다. 어린 막내는 물론이고 그때까지 엄마 치맛자락을 떠나지 못한 둘째를 맡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혼자서도 잘 먹고 잘 노는, 붙임성 좋은 셋째를 맡기기로 한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던 봄날이었다.

언니 학교 갔다 올게. 할머니랑 놀고 있으면 금방 데리러 올 거야. 아직 말을 떼기 전인 동생에게라기보다는 나에게 스스로 위안을 주듯 급하게 돌아섰다. 나 없는 사이 혹시라도 할머니가 구박할까봐 할머니께 허리 굽혀 공손히 인사하고는 ‘탕탕탕’ 발소리도 요란하게 이층집 철계단을 내려왔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40분. 쉬지 않고 뛰면 20분. 처음 며칠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점차 할머니 집에서 출발 시간이 늦어졌다. 우는 동생을 두고 나오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힘든 건 나뿐이 아니었다. 엄마는 몇 달 후 동생을 보내지 않았다. 그 사이 동생에게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엄마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엄마가 입고 자던 파자마를 늘 안고 다니는 것이었다. 분리불안증이 생긴 것이다. 만화영화 ‘스누피’에서 찰리가 아기 때 덮고 자던 담요를 질질 끌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놀이를 하느라 양손이 바쁘면 목에 두르고, 그마저도 안 되면 바지 속에 쑤셔 넣고 논다. 잠이 들 때까지 목에 칭칭 감고는 파자마에 얼굴을 부벼댄다. 외출할 때도 마찬가지다. 경악한 엄마가 파자마를 뺏어보기도 하고 숨겨 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파자마를 줄 때까지 악을 쓰며 우는 통에 곧 내줘야만 했다. 더 특이한 것은 파자마를 빠는 것조차 싫어했다.

동생은 일곱 살이 되던 해 초등학생이 되었다. 5학년이었던 나는 엄마를 대신해 동생의 준비물을 챙겨주곤 하였다. 받아쓰기 연습할 때면 큰 소리가 담장 밖으로 나가기 일쑤였다. 동생들에게 나는 엄마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동생 받아쓰기 연습을 위해 동생 가방을 열었다가 나는 예기치 못한 물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엄마 파자마가 가방 속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보풀이 많이 나고 고무줄도 늘어진 색 바랜 낡은 파자마. 말문이 막혔다. 가방에서 파자마를 꺼냈다. 갑자기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파자마의 꽃무늬들이 흔들리며 넓게 퍼져갔다. 말없이 가방 안에서 책들을 꺼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눈에서 시나브로 안개가 거치면서 글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동생을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친구들한테 들키지 않았어? 응! 가방에서 꺼내지는 않았어. 창피한 건 알았나 보다. 긴장된 모습으로 바라보던 동생은 그제야 내게 다가와 내 손에 쥐어진 파자마를 가져가 제 팔뚝에 둘둘 말았다. 근데, 엄마 작은 손수건도 있고 이쁜 잠옷도 있는데 왜 하필 이 낡은 파자마야?

여기선 엄마 냄새가 나잖아.......

동생은 제 팔에 감긴 파자마에 코를 묻으며 배시시 웃는다.

지우를 꼭 끌어안았다. 흐으음. 지우 냄새나. 지우 냄새 맡으면 이모는 너무 행복해져. 마음이 따뜻해져. 나는 코가 뭉개질 정도로 조카 몸에 대고 숨을 크게 들이셨다. 지우 냄새가 난다. 따뜻한 봄바람에 실려 오는 은은한 꽃향기 같은, 마음이 한없이 포근해지는 내 아이 냄새다. 나는 아이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까닭모를 평화로움이 찾아와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된다. 간지럽다며 까르르 웃는 지우 얼굴에 나는 한 번 더 코를 부빈다.


문영일   15-02-12 20:32
    
수미일관,  처움과 끝의 아귀가 잘 맞는 글이군요.
그래요, 저도 익숙한 냄새를 맡을 때는 불현듯 축억을 더듬게, 아니 저절로 추억이 떠 오릅니다.
일테면 결혼식장에서 마지막 잔치국수를 먹으려고 젓가락을 휘저으며
뜨뜻한 국물냄새를 맡으면  국수에 멸치국물을 부어주던 어머니를 어김없이 떠 올리지요.
'분리불안증'이 심리학 용어인지 저는 처음 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정정미   15-02-23 22:55
    
김지연샘 작품 늦게 보았네요.  수업시간에도 스승님의 칭찬이 있었던 작품이었지요
지연샘의 첫 작품을 보고  잘 쓰실거란 예감을 받았어요.ㅎ 
(냄새)에 대한 기억이 가장 오랫동안 끝까지 남는다고 하더군요.
 불쑥 갑자기 닥친 냄새에 시공을 초월하는 경험들을 하곤하지요.
 엄마의 낡은 파자마를 가방에 넣어 다니는 동생과 그걸 발견하고 눈시울을 적신 지연샘,
가슴이 찡했어요.    지연샘만의 감성으로 좋은 글 많이 쓰세요.
한지황   15-03-03 16:00
    
오랫만에 창작합평에 들어와 보느라 지연샘의 글을 너무 늦게야 발견했네요.
누구나 고유의 냄새가 있지요.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냄새에 끌린다고 하고요.
어릴 적 어렴풋이 느껴보던 엄마의 체취!
가장 그리운 냄새이지요.
엄마와의  추억 속으로 빠지게 해준 글 잘 읽었어요.
앞으로도 문학의 세계에서 희열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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