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태양이 맞은 편 관악산의 이마를 비추고 있다. 장엄한 태양의 세례가 폭포처럼 관악산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종교의식이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소리 없는 환희의 합창! 언제나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머릿속으로 들으며 관악산을 바라보게 되는 이 시간이 축복이다.
청계산을 넘어온 태양은 관악산의 훤한 이마뿐만 아니라, 내 등 뒤를 따뜻하게 덥힌다. 관악산을 마주한 채 점점 올라가는 내 등뼈의 온도를 느끼며, 관악산의 가슴께를 향해 내려가고 있는 중인 햇빛의 행적을 눈으로 좇는다. 축복이다.
봄이면 바위투성이인 것과 같은 관악산도 분홍빛으로 덮인다. 그 분홍빛이 무엇인가 궁금해 관악산을 오른 날이 있었다. 그건 잎도 나기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진달래 무리였다. 군데군데 핀 진달래가 바위 색과 어울려 관악산이라는 도화지 위에 최고의 담채화를 그려가고 있었다.
바위가 더 많은 것 같은 관악산이지만, 여름이 되면 초록색으로 덮인다. 그 초록색 위를 봄보다 더 한층 강렬해진 햇빛이 다시 이마부터 적셔 내려오는 여름 아침. 관악산을 올라보니 초록색만 있는 것 같았던 그 산 속에 물들이 콸 콸 콸 흘러간다. 바위를 씻어 내리며 쏟아지는 계곡물의 양이 풍성했다. 뜨거워지는 태양빛의 세례, 점점 많아지는 여름 계곡물의 세례. 이중의 세례를 받으며 가장 풍요로운 여름이 관악산 속에 있었다.
어떤 날 우리 집에 놀러왔던 사람들이 동시에 "와!" 하고 함성을 터트린 적이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붉은 관악산의 모습 때문이었다. 단풍! 가을을 맞는 나무들의 변신. 그 화려함이 관악산을 덮었기 때문이다. 꽃보다 훨씬 화려한 그 단풍을 보기 위해 관악산에 올랐다. 숨이 멈출만큼 아름다운 단풍의 색깔들. 그러나 수명이 너무나 짧다. 하루라도 내 볼 일에 밀려 산에 오르는 날을 늦추면 이미 색을 잃거나 잎을 떨궜다.
그러나 그 가을의 관악산보다 더 극적인 관악산은 겨울에 있었다. 밤새 눈이 오고 소리없이 눈이 그친 겨울 새벽. 다시 청계산을 넘어온 햇살이 관악산을 비췄을 때, 관악산의 이마와 머리는 눈으로 하얗게 얼어붙어 햇살을 되받아 쏘고 있었다. 그 영명한 기운이 심한 감기 몸살로 일주일을 거실 바닥에 누워 있던 나를 벌떡 일으켰다. 온 몸을 미이라처럼 옷으로 칭칭 감고 휴대폰 하나를 달랑 든 채 옥상에 올랐다. 거기서 관악산을 향해 수 많은 셔터를 눌렀지만, 그리고 그 사진 몇 장이 내 휴대폰에 아직 남아 있을 터이지만, 결코 들춰 보지는 않는다. 실제로 내가 본 그 겨울 아침 관악산의 화려함과 신비함을 담아내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머릿속인지 가슴속인지, 어딘지 모를 곳에 저장되어 있는 그날의 사진은 꺼내볼 때마다 선명해지고 놀라워진다. 그래서 눈 내리는 겨울밤이면, 모든 사람들이 잠든 뒤에도 홀로 깨어 눈 맞고 있을 관악산을 그리며 아침을 기다린다.
이것이 나의 축복받은 1년이다.
매해 반복되지만 늘 새롭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축복받은 아침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