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처럼
이선아
중학교 때 일이다. 나는 낡은 학원 차를 타고 밤길을 달렸다. 가로등이 하나 둘 사라지고 정전이라도 된 것처럼 주위가 깜깜했다.
"저기 하늘에 밝은 별 보이냐? 저게 바로 헤일-밥 혜성이다."
원장 선생님이 창문 너머를 가리키며 말했다.
“혜성이요?”
“그래. 긴 꼬리 달린 별 말이다."
꼬리 달린 별 얘기는 그때 처음 들었다. 나는 잽싸게 창가 쪽에 몸을 붙이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없이 많은 별들 사이로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유난히 크고 밝은 그 별은 자기 몸을 태우며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 눈에는 밤하늘이 미처 감추지 못한 눈물방울처럼 보였다. 나는 우주의 숨겨진 비밀을 하나 알게 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정말 신기해요.”
원장 선생님이 뒷거울로 나를 힐끗 보며 말했다.
“잘 봐둬라. 이제 가면 언제 볼지 모르니까.”
“왜요?”
“저 녀석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몇 천 년이나 걸린단다.”
“몇 천 년이요?”
“그래, 그러니 아마 다시 보긴 힘들 거다.”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더니 너무 아쉬웠다. 마음속에 다 담을 새도 없이 혜성은 순간의 반짝임만 남기고 떠나고 있었다. 나는 왜 아름다운 것들은 오래 머물지 않는지, 왜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사라지는지 아쉬워했다.
그날 밤 나는 목이 아프도록 혜성을 올려다보았다. 떨어지는 혜성은 내 마음 속에 기다란 여운을 남겼다. 닿을 듯 닿지 못하는 슬픔이 천천히 내 마음을 비집고 흘러들었다.
그 뒤로 나는 멀리 있는 것을 동경하게 됐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밖 세상이 궁금했고, 우리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먼 곳으로 갔다. 어쩌면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나와 닮은 존재가 있을지도 몰랐다. 1997년의 어느 밤 만났던 혜성처럼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눈부신 밝음을 찾아 무작정 길을 떠나는 이와 만나고 싶었다.
집에서 먼 학교, 대학, 직장 등에서 나는 혜성을 꿈꿨다. 그러나 내가 머문 도시는 회색 안개와 모래 바람이 잦았다. 맨 눈으로는 별 하나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자칫 혜성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혼만 나기 일쑤였다. 겉모양이 같다고 해서 모두가 다 별은 아니었다. 그들은 너무 쉽게 떠오르고 너무 쉽게 졌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오랜 실패가 이어졌다. 어둠뿐인 밤이 이어지고 차츰 혜성의 존재도 내 기억에서 희미해져 갔다.
얼마 전, 새로운 혜성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는 헤일-밥 혜성이 궤도를 바꿔 돌아왔나 싶어 얼른 도심 속 천문대로 달려갔다. 이번 혜성은 아마추어 천문가가 소형 천체 망원경으로 발견한 혜성이었다. 비록 헤일-밥 혜성은 아니었지만 혜성을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은 설렜다. 하지만 첨단 장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혜성은 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뿌연 안개 뒤로 꼭꼭 숨어버렸다. 마치 우연한 만남은 발 벗고 찾아 나서면 도망간다는 듯이.
너무 아쉬워하는 내게 담당자가 말했다.
“만약 이번에 혜성을 볼 수 있었다고 해도 맨 눈으로 보았던 헤일-밥 혜성만큼은 아니었을 겁니다.”
나는 헛헛한 마음에 눈을 감고 헤일-밥 혜성을 떠올렸다. 어둠 속에서 혜성이 힘겹게 달리고 있었다. 어둠을 뚫고 나오려고 몇 천 년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고도 태양의 가장 뜨거운 온도에 맞서야만 했다. 오롯이 태양 앞에 설 때에만 온전히 빛날 수 있었다. 혜성이 아름다운 것은 빛나는 껍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을 만들기 위해 달려온 시간에 있었다. 밝게 빛나기 위해 애쓰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알맹이를 얻기 위해서 달리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천문대를 등지고 걸었다.
바로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밝고 선명한 별 하나가 혜성처럼 높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