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의 전성시대
송명실
소녀의 얼굴에 별이 쏟아져 내렸다.
2층 양옥집, 우리가족은 여름이면 저녁을 먹고 더위를 피해 옥상으로 올라가, 2~3평 크기의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쏟아지는 별빛 아래 제철과일을 먹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양은 사각쟁반은 이곳저곳 눌려 평평하지 않았지만, 줄무늬 수박한통 올리기엔 부족함이 없었고, 보름달같이 둥근 초록 줄무늬를 부엌칼로 가르면 쩍! 벌어지는 소리와 함께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향이 코끝에 올라왔다. 뜨거운 한낮햇볕을 못 이겨 여기저기 녹아 볼록거리던 아스팔트도 밤엔 열을 내리며 휴식했다. 하늘엔 크고 작은 별이 어둠에 초롱초롱 빛났다. 우리는 편안하고 신비한 야경에 취한건지, 유난히 엄격했던 아버지 성격에 눌린 건지 침묵만 흘렀다. 식구들은 잠이 오기 시작하면 하나, 둘 밤이슬을 피해 방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삼베이불까지 가지고 올라와 온몸을 칭칭 감고 평상에 누워, 눈만 빼꼼하게 내 놓고 북극성과 북두칠성, 별자리를 찾았다. 이때부터 별은 어둠에서 나를 지켜주는 친구가 되었고, 내 마음까지 뿌듯하게 밝혀주었다.
‘그 촘촘한 별들이 이젠 다 어디로 갔을까. 빌딩숲 생활이 싫어져 야생의 아프리카로 간 것일까? 친구 따라 강남 간다했으니 별 따라 아프리카 못갈 것 없잖아.’
가끔 경축일이나 축하행사가 있으면 시청에서 불꽃놀이를 하는데, 한 블록 떨어진 우리 집 옥상에서 보면 불꽃은 내 머리위에서 학교 운동장보다 더 크게 화려한 분수를 그렸다. 여기저기 날고 튀면서 피어나는 환상적 무늬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때로는 불꽃과 불씨가 얼마나 크고 또렷한지 ‘내 머리카락을 홀라당 태우면 어쩌지?’ 생각하며 울 엄마 꽃무늬 깔깔이 스카프로 머리를 둘둘 감기도 했고, 아껴 입느라 몇 번 입지도 않은 분홍 티셔츠에 불씨가 떨어져 작은 구멍이 난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바람에 고개가 하늘로 꺾여 계속 아파와도 온 마음을 다해 즐겁게 놀았다. 아직도 밤을 좋아하는 이유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던 수줍던 소녀의 ‘별 헤는 밤’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별은 소녀와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환상과 꿈은 커져만 갔다.
내 그림 속 주제는 <하늘과 사람>이다. 어린 시절 수놓았던 꿈을 모아 하얀 캔버스에 명상하듯 느낌을 풀어놓는다. 손끝의 붓은 어느새 마음을 싣고 몸을 담아, 깃털처럼 가벼운 세상을 꿈꾸며 하늘을 날고 마음의 이미지를 옮겨놓는다. 때론 속삭이고, 재잘거리고 흘기고 돌진하고, 떨어지고 새초롬하게 눈을 치켜세우며, 건강하고 울룩불룩한 근육을 과시하며, 호기심 있는 눈으로 앞으로, 앞으로 달린다.
하늘은 우주이며 내가 숨 쉬고 바라보는 세상의 소통공간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 곳, 할머니 그 전 세대 모두의 추억과 삶, 그리고 그리움이 있는 곳이다. 하늘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시간을 담고 있을까? 생각은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춤추고, 별의 수만큼 내 그림 속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순자의 전성시대> ‘순자는 바로 나다. 싱싱한 자유다.’
그림 속 주인공 이름은 ‘순자’다. 과거의 순자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도 없이 남편과 자식, 가족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했다면, 난 현대판 순자를 그린다. 명품을 좋아하고 근육과 외모를 가꾸며, 컴퓨터와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진 목소리가 큰 거침없는 여성이다. 현대인은 물질문명에 노출되어 외모 지상주의와 개인주의, 소비, 향락 문화 등 작위적 모습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현대판 순자를 통해 ‘자유로운 정신과 행복’을 꿈꾼다.
문학과 예술을 통해 인성의 균형을 이뤄가는 우리의 밝고 건강한 이야기를 희망하며 ‘현대판 순자’는 오늘도 캔버스 위를 달리고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