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수필바운스(2. 5, 목)
- 세상을 바꾼 3개의 사과와 수필의 서두
1. 수업에 들어가며
지난 시간에 다루었던 낯설게 하기의 예제(例題) ‘청과상에서 본 사과’ 에 대한 복습. 여러 문우님들이 발표했던 사과의 이미지도 함께 떠올리며, 세상을 바꾼 세 개의 사과와 사과를 소재로 글을 형상화하는 기법을 소개하였다.
- 사과의 모습이나 특징을 소재로 한 대상수필, 감각수필, 개념정의수필
- 세상을 바꾼 세 개의 사과(선악과, 뉴튼의 사과, 애플로고)에 대한 에세이
- 사과 관련 체험담(사과에 얽힌 이야기, 어렸을 적 사과즙을 내주시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나 사과에 대한 트라우마 등)
2. 오늘의 수업(1)
# 낯설게 하기2
-2월에 대하여(2월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여러 문우님들의 생각):
설날, 하루의 중요성, 2프로 부족, 바람같이 사라지는 2월, 희생, 정화, 장사가 안 되는 달, 2월 잔치는 끝났다. 존재감 없는 달, 겨울의 끝, 봄의 시작….
-교수님의 2월은? : 꼬리 잘린 도마뱀의 몸통 같은 달, 장애의 달, 노루궁뎅이 같은 달, 불량고무줄 같은 달, 왕따의 달, X-맨 돌연변이의 달, 박제와 화석의 달, 나사가 빠져 허술한 달. 그냥 끼인 달, 이도저도 아닌 달, 어쩔 수 없는 달….
-2월과 비슷한 달은 11월이다. 마찬가지로 존재감이 없다. 2월은 앞에서 두 번째이고 11월은 뒤에서 두 번째 달이다. 2월과 11월은 날씨도 비슷하다. 뼈가 시리도록 춥지는 않지만 오슬오슬 피부에 찬기가 스민다. 2월과 11월은 풍광도 비슷하다. 하지만 2월과 11월의 차이도 있다. 2월은 봄을 향해 가는 달이고 11월은 겨울을 향해서 가는 달이다. 2월과 11월은 둘 다 겨울을 연결고리로 모호하고 불안하지만 2월은 끓어오르는 느낌이고 11월은 가라앉는 느낌이다.
-2월은 불안한 실존의 달이다. 길도 없는 곳에서 망설이는 인간 본연의 실존의 모습을 본다. 장애인, 사회적 약자, 노숙인들을 본다. 보행기에 의지해 가는 노파, 시든 채소를 파는 아낙네, 붕어빵을 파는 노점상, 땡처리 옷가게,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린 휴지 조각, 폐타이어 조각, 고장 난 신호등, 드나드는 새 없는 둥지, 새끼 밴 고양이가 발을 절뚝이는 모습 등을 연상할 수 있는 2월은 홀로 걷는 달이다.
-글을 쓰려면? 소재의 본질을 어떻게 포착하느냐가 중요하다. 본질은 대개 감추어져 있거나 현상의 너머에 있다. 사과를 보고 사과의 형태만을 모는 것이 아니고, 초록색 코트를 보고 초록색만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A는 A가 아니라 B, C, D…XYZ다. 왜 A가 Z가 되는지를 써야한다. 연두색 안에는 나머지 23가지 색이 잠자고 있고 다만 연두색만이 눈에 띌 뿐이다. 나무의 가지만을 모는 것이 아니라 나이테, 나뭇결무늬(木理紋)의 의미를 되새기며 글을 써야한다.
(위에 소개한 여러 2월의 이미지가 어떻게 한편의 글로 완성되는가를 김창식 교수님의 ‘2월의 끝’ 이라는 수필 소개로 마무리)
2. 오늘의 수업(2)
# 수필의 서두는 어떻게?
가. 나무 - 이양하 : 나무의 겸허한 모습과 인간 삶을 비유해서 글을 전개한다. 나무는 치열한 경쟁에 의해 살아가지만(과학적 근거), 진실이라는 것은 한 면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진실은 없으며 객관적 사실과 문학적 진실은 다르다.
나. 산 - 민혜 : 수필의 전범적(典範的)서두이다. 산에서 위안을 받는다는 결론을 이미 서두에서 유추할 수 있다. 서두의 마지막 부분 ‘그때 나는 고작 다섯 살이었다’를 통해 신산한 유년의 삶과 비참한 가족사가 이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다. 벽과 병(甁, 病) - 김창식 : 청춘이 부딪는 벽과 청춘이 앓는 병을 세 종류의 인용(괴테의 파우스트, 플라톤의 이데아, 찬송가)을 통해 제시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말은 청춘에 대한 송가(頌歌)이다.
라. 난 알아요 - 김창식 : 불안하고 맥 빠진 실직자의 복잡한 심리를 서두에서 주위 사물에 투사하여(냉장고가 신음하고 베란다의 화초가 숨을 몰아쉬며 가로등이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표현했다. 나중 서태지의 노래 ‘난 알아요’가 어떤 형태로든 인용되어 주제를 뒷받침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마. 안개 - 김창식 : 안개에 대한 부정적 심상을 보여주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서두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이상하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헤르만 헤세의 시 ‘안개 속’ 중 유명한 첫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결국 인간은 혼자이고 인생의 항로를 안개 속을 헤매는 것으로 비유함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니까 수필의 서두는?
- 호감이 가고 매력적이어야 한다(신선, 간결, 흥미, 긴장)
- 주제와 상관이 있는 구체적인 사물 (그러나 함축적으로 암시만)
- 적당한 동기의 포착 (글을 쓰게 된 이유, 계기, 정서적 시발점)
- 설명이나 훈시는 불필요. 고사, 명구 인용도 바람직하지 않음
- 30초 전쟁 (교훈이나 지지부진한 설명, 보편타당한 일반론은 사양)
- 액자구성 (현재-과거-대과거-현재), 수미쌍관도 좋음
- 서두를 대화체로 시작하는 것은 수필의 본령에서 어긋남(소설을 쓰던가?)
- 서론(과정)을 줄이고 바로 본론(주제)으로 들어가는 것이 현대수필의 흐름
3. 오늘의 수업(3)
# 작품 합평
가. 하이힐(백정희)
산만하고 장황한 느낌이 들지만 하이힐을 통해 삶의 깨달음으로 의미화 한 점은 훌륭하다. 다만 의미화에 있어서 지나치게 교훈을 강조하면 바람직하지 않다. 여성적이고 시적인 표현으로 문장의 멋을 부리는 것을 자제해야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수사법 중 일종인 환유 기법을 적소에 사용하여 글을 빛나게 한다. “나는 지금 신호 대기 중” 같은 표현은 신호 대기 중인 차와 나를 동일화하여 정체되고 망설이는 느낌을 은유한다.
나. 달아미골(박도원)
- 미완성의 글 같은 느낌이 든다. 형식상으로 봐서 나중에 후일담이 나오는데, ‘다람쥐’와 ‘깜상(나)’에 대한 후일담만 나오는 때문이다. 나머지 두 사람 ‘삐길이’와 ‘키다리’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여주어야 세월의 무상함을 전해줄 수 있다. 이 글은 잘 쓴 꽁트 수필이다. 재미나게 읽히기는 하지만 주제의식이 약한 면이 있다. 주제를 가벼운 문명 비판과 순수의 시대에 대한 그리움과 따뜻함으로 풀어주면 더욱 좋은 글이 될 법하다.
# 워털루(제기영)
- 이 글은 빼어난 기행수필이며 역사수필, 영화에세이기도 하다. ‘애수’ 와 ‘워털루’ 등 영화 두 편이 맞물려 돌아가며 전혀 다른 두 영화가 유기적으로 연결 돼 글에 입체성을 더 했다. 전투 장면 묘사가 박진감이 있어 읽는 이를 워털루의 전투 현장으로 데려간다. “프랑스군의 나이 어린 북치는 소년의 푸른 눈은 왜 그렇게 슬퍼 보이던지?” 같은 표현은 매우 상징적이다. 유려하고 서정적인 표현이면서도 전쟁의 참상을 진한 여운으로 남겨준다.
4. 수업이 끝난 후 : 등단 파티
이용훈 선생님의 등단 파티 시간
- 수업 후 이용훈 선생님의 등단 파티가 이대 후문 앞 ‘마리’ 한정식 집에서 열렸다. 한국산문 정진희 회장님의 사회 시범으로 김창식 교수님의 인사말과 주인공 이용훈 선생님의 소감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문우님들의 축하메세지가 이어지고 깔끔하고 맛있는 한정식이 차례차례 한상 가득! 기쁨 가득!
- 한국산문의 최화경 홍보부장님께서 등단 파티의 이모저모를 동영상과 사진으로 부지런히 찍어주셔서 한층 더 빛났던 시간이었다! 정진희 회장님과 최화경 홍보부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 이용훈 선생님 다시 한 번 등단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