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우스트> 명 구절 리뷰
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 한다”는 파우스트 박사의 고뇌어린 독백은 얼마나 위안을 주는 잠언이란 말인가? 우리가 미로처럼 얽힌 일상의 거리에서 망 설이고 헤맨다는 것은 적어도 노력하고 있다는 방증이지 않는가?
나.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또 어떤가? 파우스트가 그레트헨을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을 묘사하는 마지막 대목이다. ‘영원이 여성적 인 것(Das Ewigweibliche)’이 무엇이며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2. 합평의 요령
가. 무엇에 대해 쓰였는가?(소재)
소재와 제재, 주제의 차이에 대해서도 공부하자(다음 시간에)
나.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주제)
주제가 없는 글은 혼이 없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좀비 인간처럼.
다. 제목은 적합한가?(제목)
제목과 내용은 따로 국밥이 아니다. 제목이 뒤틀리면 바로 쓰레기통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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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문학성이 있는가?(형상화, 회화적 묘사 및 비유와 상징, 심상)
형상화, 회화적 묘사, 상징과 은유는 각각 독립적인 기법이기도 하지만 연결 되어 사용되면 더욱 효과적이고 미감(美感)을 배가(倍加)한다.
* 멋진 형상화의 예:
‘겨울은 강철로 만든 무지개’(이육사), ‘산하에 휘몰아치는 눈보라는 백색의 계엄령’(최승호),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김광균)
단, 그럴 듯하지만 상투적이고 허구적인 서정은 곤란하다!
예1: ‘웅장한 겨울나무’ (가지밖에 없는 겨울나무가 웅장? 난센스다)
예2: ‘어머니의 임종 시 창 너머 보이는 장엄한 황혼이 어머니의 숙연한 삶을 닮았다’(그처럼 긴박하고 안타까운 순간에 고개를 들어 노을을 보다니?)
마. 의미화가 잘 되어 있는가?(깊이, 철학성, 사유의 확장, 인문학적 소양)
삶에 대한 재해석이 따르지 않는 신변잡사와 막연한 자연예찬은 곤란함. 난삽한 이론을 전개하거나 철학적 지식을 개진하는 현학적인 글도 사양. 삶 의 근거리에서 소재를 취하되 보편적 성찰과 근원적 깨달음으로 나아가 되 이해하기 쉽게 쓴 글이 좋은 글이다. 또한 깨달음은 한 두 문단, 두어 줄이어도 족하다. 피천득의 <인연>을 보라!
*2월은 끼인 달, 이도 저도 아닌 달, 어쩔 수 없는 달, 꼬리 잘린 도마뱀의 몸통 같은 달, 돌연변이 X-맨의 달. 망설이고 뒤채며 불완전한 실존의 달!
바. 논리적 흐름과 일관성은 어떠한가?(연결, 일관성, 자연스런 흐름)
시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시적논리’가 있어야 하거늘 하물며 산문임에랴? 암묵적 함축이나 사고의 비약, 형용모순, 아이러니와 역설은 또 다른 문제다. 제목 서두, 본문, 내용, 결미에 이르기까지 논리는 텍스트의 전 과정에 해당된다. 문장 내에서의 품사의 사용, 전후 맥락, 정황의 일치, 문단과 문단의 이음새는 물론, 심지어 여운에도 논리가 뒤따라야 한다.
설날의 추억에 대해 쓰다가 태연하게 추석으로 건너뛰면 독자는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고래에 대해 쓰려면 돌고래, 향유고 래 흰수염고래 등에 대해 써야지 아무런 정황 설명 없이 상어, 악어에 대해 쓰면 대략 난감하다. 그것도 부족해 하마에 대해 쓰려 한다고?
사. 문장의 정확성은 기본 중의 기본(맞춤법, 띄어쓰기 등)
문법에 맞는 정확한 문장과 간결성, 적확한 표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악보를 읽을 줄도 모르고 음표에 대한 이해도 없이 작곡을 하고 편곡을 하며 노래를 부른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아니, 개가 아니라 소인가?
소위 ‘실험수필’도 마찬가지다. 우선 제대로 된 수필 한 편이라도 쓰라. 정통과 전통을 습득한 후 각고정진하지 않으면 반짝하고 그것으로 끝이다. 해동명필(海東名筆) 추사를 보라! 각 필법에 통달한 후 말년에 이르러 비로소 추사체를 창안했다. 법고창신(法古創新)!
3. 실제 합평 사례
가. 도토리 아저씨(강진후)
대체적으로 잘 쓴 글이어서 일부 수정을 전제로 합격 판정. 불량 도토리를 판 아저씨와의 사이에 심리적인 간극(間隙)을 다룬 글로 주제의식이 좋다. 도토리 아저씨와 만나기 전까지의 과정이 길다. 워밍업에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이야기를 쓰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아니라 ‘이야기가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부터 서두를 시작하는 것이 현대수필의 추세다.
나. 향불로 만난 어머니(박도원)
잔잔하게 흐르는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은 이 글의 강점이나 속 깊이 전해오는 느낌은 없어 보완 필요.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아니라 ‘고유하고 특별한 나의 어머니’에 대해 쓰되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한 다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개구리 괴롭히는 놀이’는 본문 내용을 벗어나 겉돌 뿐더러 시선을 분산시킬 우려가 있어 주의를 요한다.
다. 홍시(홍순설)
등단작 ‘그늘진 느티나무 못지않은 품위 있는 글이다. 현대에 맥이 끊 긴 효와 예의범절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주되 교훈조가 아니어서 거부감이 없다. 이사 간 집에 몇 년이 지나 ‘홍시’가 열려 어머니의 가르 침을 기리는 마지막 대목도 여운이 짙다. 다만, 특정 종교에 치우치지 않는 글 쓰기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산문>>에 제출 요망.
라. 북한산 의상능선 가던 날(조규방)
동아리에서 주로 산행기를 썼던 새내기 조규방님이 난생 처음 ‘공식적’ 으로 씩씩하게 써낸 글. 교수님은 ‘재야 은거 고수의 등장’이라고 반기며 격려. 의상능선의 디테일한 묘사 등 감각은 있으나, 회원들 사이에 여 러 보완할 점도 활발하게 논의하였음. 즉, 과장은 줄이고 예스런 단어는 현대어로 바꿔 쓰며 장황스런 만연체의 글은 간결하게.
# ‘서강수필바운스’의 명예회원인 에세이스트 이문봉님이 참관, 합평에 적극 참여하시어 가르침 주신데 대해 감사 드립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강의실은 지성과 열정으로 가득 참. 서강 반원 여러분 명절 잘 보내시고 만나요. 우리 자신에게 보내는 박수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