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편을 선보인 후 처음으로 수필을 내신 인해영샘의
<진정한 행복>을 합평했습니다.
제목이 좀 상투적이어서 수녀님이 작가를 위로하고자 보낸
선물 꾸러미 중 하나를 선택해서 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수녀님이 애지중지하던 물품이 와야 더 감동적입니다.
만일 그런 물건이 없다면 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스승님 말씀에
모두들 까르르 웃었지요.
성실하고 솔직한 심성만 가지고서는 글쓰기에 불리합니다.
과장과 엄살이 필요하지요.
금방 세상을 하직할 것처럼 시를 쓰는 시인들은 엄살쟁이입니다.
수녀를 상징할 수 있는 매개체를 찾아 제목으로 정하세요.
때 묻은 묵주도 좋고 어려웠던 내 형편을 위로하는 종교수기가 담긴 책도 좋습니다.
책 이름도 소개하고 내용도 적는 등 구체적인 사실이 들어감으로써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사항들이 없으면 독자는 울지 않고
작가만 슬퍼하는 형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굴절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너무 투명한 글은 감동을 주기 힘이 듭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문장 표현을 아름답고 감칠나게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생동감도 주어야 하고요.
우리는 왜 글을 읽을까요?
장편 소설 <태백산맥>도 내용은 단 몇 장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다이제스트만 읽으면 되지요.
그러나 문체의 맛 즉 언어쾌감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글을 읽습니다.
내용파악이 주가 된다면 독서행위를 할 필요가 없지요.
지난 주말 손홍민이 세 골을 넣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대부분 “예술이야!”라고 외쳤습니다.
기가 막히고 멋있고 감동적이기에 예술이 된 것입니다.
그가 공을 통해 멋있는 장면을 연출했듯이
문학은 언어를 통해서 멋진 장면을 연출하는 언어 예술입니다.
그러므로 감동과 울림을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감동과 울림은 문체에서 옵니다.
집을 지을 때
마지막으로 실내장식을 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대부분 여자들이 더 미학적이듯이
문학은 여성적인 미적 형상화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독자에게 주는 서비스입니다.
한지황의 <미끼>는 사건 수필로서 사실전달에만 주력하다보니
독자의 이해는 쉬우나 맛깔스러움이 부족합니다.
즉 비유가 필요합니다.
사실적 문체보다 실감나는 서술적 문체로 바꾸기 위해서
세 번 정도 퇴고를 권합니다.
한국산문 2월호 중 박남철 시인의 <겨울 강>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작년 작고한 박남철 시인의 <독자놈들 길들이기>는
독자들에게 아부하는 대부분의 시인들과는 다르게
불만을 가진 독자는 길들이겠다는 배포로 쓴 시입니다.
평범한 정서에 부합하지 않겠다는 시인의 정서는 벌레먹은 정서와도 같지요.
일반적인 통념을 가진 자들에게는 파격적입니다.
난폭한 언어를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욕설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시가 발표되었을 때는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낯설게 하기에 성공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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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공무도하가>나 박목월의 <이별가>가 그 예입니다.
역사, 문명을 상징할 수도 있는데 이육사의 <광야>,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강>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안도현은 <겨울 강가에서>
의인화된 관점으로 강에 대해 썼습니다.
자연현상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지요.
물리적 현상은 모른 척하고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시입니다.
과학이 사실을 통해 진실을 구현한다면
문학은 거짓 즉 상상을 통해 진실을 구현합니다.
상상은 좋아하면서 거짓이라면 거부감을 갖는데
거짓이나 상상은 다르지 않습니다.
한강 /이재무
강물은 이제 범람을 모른다
좌절한 좌파처럼 추억의 한때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는 크게 울지 않는다
내면 다스리는 자제력 갖게 된 이후
그의 표정은 늘 한결같다
그의 성난 울음 여러 번 세성을 크게 들었다
놓은 적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약발 떨어진 신화
그의 분노 이제 더이상 저 두껍고 높은
시멘트 둑 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오늘 권태의 얼굴을 하고 높낮이 없이
저렇듯 고요한 평상심, 일정한 보폭 옮기고 있다
누구도 그에게서 지혜를 읽지 않는다
손, 발톱 빠지고 부숭부숭 부은 얼굴
신음만 깊어가는, 우리에 갇힌 짐승 마주 대하며
늦은 밤 강변에 나온 불면의 사내
연민, 회한도 없이 가래 뱉고 침을 뱉는다
생활은 거듭 정직한 자를 울린다
어제의 광영 몇 줄 장식적 수사로 남아 있을 뿐
누구의 가슴 뛰게 하지 못한다 그 어떤 징후,
예감도 없이 강물은 흐르고 꿈도 없이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찬란한 야경 품에 안은 강물은
저를 감추지 못하고
다만, 제도의 모범생 되어 순응의 시간을 흐르고 있다
분노는 파편화되고 가난은 개별적 존재로 흩어지고 있는 요즈음
너무 쉽게 제도의 모범생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을 해봅니다.
문정혜샘이 생강맛 그득한 유과를 가져오셨습니다.
설날 가분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공사다망한 인영샘, 영자샘, 한나샘, 지연샘, 인옥샘 그리고
이제는 거의 다 완쾌하신 초엽샘이 더욱 그리운 날이었습니다.
설날 연휴가 이틀 뒤로 다가왔네요.
즐겁고 복된 새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