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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언어에 대한 민감한 자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글쓴이 : 한지황    15-02-23 19:20    조회 : 3,898

송가(送歌) / 이재무

 

모두들 그렇게 떠났다
눈결에 눈물꽃송이 몇 개
띄운 채
입으론 쓸쓸히 웃으면서
즐거웠노라고
차마 잊을 순 없겠다는
말 바늘 끝 되어
귓속 아프게 하고
인연의 매듭 풀면서
가늘게 떠는 어깨
두어 번 두드리고 떠난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아도 돌아오리란
믿음 지키며 저무는 강가
물살에 닳은 조약돌로 앉아
가는 해를 보내고
오는 밤을 맞았다
그런 날들의 먼 인가의 불빛은
물빛으로 반짝거렸고
살아온 생이
뿌리에서 떨어져 나온 나뭇잎처럼
쓸쓸했다 강물은 뭍으로 올라와
생의 출발을 서두르고 재촉했지만
사소한 바람에도
낮고 축축한 울음을 낳던
갈대의 몸에 묶인 마음을
끝내 움직이진 못했다
조약돌에 이끼가 살고
물때가 제법 무성해지자
어느 먼 마을에서 온
개망초 하나
눈물인 듯 울음인 듯
내 곁에서 꽃을 피웠다

 

오늘 동아일보 <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에 소개된 시입니다.

30세 이전 시인은 사랑하던 여자들을 다 떠나보내고

마지막 여자를 생각하며 시를 썼다고 합니다.

아내를 장미가 아닌 개망초에 비유함으로써 겸손함을 나타냈지요.

갈대는 객관적 상관물로

수필에서도 결론을 내릴 때 이것을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주제를 직접 토로하지 말고 갈대나 바람 등등

자연 사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암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운이 오래 남지요.

또한 반투명성 때문에 독자들은 다양한 결론을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설명적인 글쓰기는 작가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재미가 없습니다.

일찍이 시인이 되었더라면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세를 탔을

시인 문숙의 시를 공부하며 시론 강의는 시작되었습니다.

거울 /문숙 

 

수족관 물고기들은 상처가 많다

가까이 있는 물고기를 자신의 먹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아도는 먹이 앞에서도 서로 물고 뜯고 싸운다

눈을 파먹히고 지느러미가 잘려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제 것을 고집하느라  제 몸에 끝없이 상처를 낸다

수족관 한 귀퉁이에는 팅팅 불은 먹이가 오물처럼 썩어간다

 

한 아이가 수족관 밖에서 물고기를 관찰하며 웃는다

누가 내 바깥에서 나를 훔쳐보고 있다

 

수족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고

물고기는 사회 구성원입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잘 그려내고 있지요.

    

엉덩이의 힘 / 문숙

 

항아리만한 호박들이 싱싱한 줄기에 매달린 채 모두 썩었다

다 익을 때까지 엉덩이를 자주 돌려주어야 하는 걸 몰랐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며 내가 가꾼 호박농사를 망친 이유다

?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한곳만 질기게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보는 쪽이 무조건 앞이라고 우기는 습성도

한 번도 엉덩이를 돌려보지 않은 탓이다

?

어디서나 엉덩이를 자주 뗐다 붙였다

앞도 보고 뒤도 보는 자가 출세도 잘한다

새들도 구애를 할 때는 엉덩이를 치켜들고 빙빙 돈다

엉덩이를 요란하게 흔드는 벨리댄스도

천박함을 벗어나 세계적인 춤으로 박수를 받는다

?

인간의 엉덩이가 뒤쪽에 붙어서 크고 무겁게 진화해온 것은

죽어라 앞으로만 걷는 인간의 습성 때문이다

제자리에서 중심을 잘 잡고 중력을 잘 견디려면

엉덩이를 자주 돌려야 한다

?

골고루 잘 영그는 힘은 엉덩이를 움직일 때 생긴다

노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엉덩이가 홀쭉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해학적이자 유머가 있으면서도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시입니다.

고여 있는 물은 썩지요.

누구나 안전을 추구하지만 안전은 고여 있는 물과 같습니다.

창조를 해야 하는 예술가들은 안전과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약간 불안한 것이 긴장도 있고 좋습니다.

움직여야 삽니다.

 

 

경계를 넘는 일 / 문숙 

 

수꽃만 만발한 호박넝쿨에 싱싱한 애호박 하나가 열렸다

줄기를 당겨보니 이웃 호박이 은근슬쩍 선을 넘어온 것이다

이미 내 것과 뒤엉켜 떼어내기 어렵다

인간이라면 간통죄로 다스려야 할 일이지만 민망한 건 나다

얽힌 관계를 풀고 서로 길을 갈라놓으려니

줄기가 부러지고 잎이 찢긴다

그냥 두고 보자니 찜찜하고 넘겨주자니 서로에게 상처다

예전 내 어머니는 자기 텃밭에 다른 여자가 낳은 열매를

자신의 호적에 올려놓고 일생 불편한 마음으로 사셨다

이웃 밭들을 쭉 둘러보며

경계를 넘으려는 호박순들을 모두 제 뿌리 쪽으로 돌려놓는다

나도 내 어머니를 닮아 진보는 못되고 오지랖만 넓은 탓이다

 

인간뿐이 아니라 식물도 남의 것을 넘봅니다.  

부부금슬이 좋다는 잉꼬도 짝이 500미터만 떨어지면

남의 짝에게 눈을 돌린다고 하지요.

 

뛰어난 주부의 상상력으로 쓴 문숙의 시는 이밖에도 좋은 시가 수두룩합니다.

이렇듯 거창한 것을 발견하거나 대단한 지혜를 깨달아서 시를 쓰는 게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글감은 존재합니다.

세탁기 안에서는 갈등이 많은 고부간도 같이 브루스를 추고

근친상간도 이루어집니다.

각방을 쓰는 부부도 스킨십을 하고요.

상상력을 동원해서 가족의 생활에서 오는 애환을 쓰면 됩니다.

 

현상과 실체는 다릅니다.

동일한 사물이지만 인식의 차이는 크지요.

유전 형질, 계급, 남녀, 세대, 지역, 가정환경

심지어 전공과목 ,교우관계의 차이에 따라서

사물의 인식차이는 생깁니다.

인식차이가 문체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작가의 문체는 그의 전부입니다.

결국 생각이 다르다는 것으로 바꿀 수 없지요. 

글을 보면 작가를 알 수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시의 제목은 첫 행이나 마지막 행으로 많이 정합니다.

시나 수필 제목은 주제로 정하는데 정지용의 <향수>가 그 예입니다.

소재 중에서 주제 구현에 이바지하는 소재 즉 핵심적인 소재로 정하기도 합니다.

거창하거나 추상적인 제목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향수>처럼 추상적인 제목을 쓸 경우 내용은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작가는 언어에 대한 민감한 자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주부가 싱싱한 생선을 고르는 행위는 그만큼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서이지요.

마찬가지로 작가는 언어에 관심이 많아야 하며 절대 양보해서는 안됩니다.

좋은 문장은 불필요한 수식어를 자제하고 대명사, 접속사, 감탄사를 절제하며

소유격 은유 중 역설적인 은유만 써야합니다.

또한 이어진 문장과 안은 문장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문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겨울학기 마지막 시간을 시론으로 보강해 주신 스승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학창시절 결석을 하지 않았던 성실함이 유명 시인의 밑거름이 되었나 봅니다.

연휴 끝 결석자가 많았으나 수업 시간은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지요.

달콤한 귤을 맛보게 해주신 래순샘께 감사를 드리며

춘삼월 새 학기를 기다립니다.


박래순   15-02-23 21:56
    
명절 지나고 처음 만난 님들,
오늘도 즐거웠어요. 매번 같은 날 같아도 수업 후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
많은 것을 또 배워왔구나~곧 잊힐지라도 행복하답니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열강해 주신 시인님께 감사합니다. 참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치과 치료 중이라 발음이 새어나가 중요한 단어를 놓쳤구나. 했는데,
반장님의 후기로 복습하게 해주어 고맙고요.  3월 화창한 날엔 지황님 미술전에 초대해 주셔요~~
     
정정미   15-02-23 22:28
    
순이샘!  저랑 비슷한 시간에 있었네요.^^
그래요... 3월  좋은 날에 한지황반장님 작품전시회 가요.
그날 야외수업겸 식사도하고  반장님초대전 감상하면서 봄을 맞이해요.
기대되네요^^
     
한지황   15-02-23 22:37
    
끊임없이 주요 일간지를 멋진 시로 장식하시는 스승님을 매주 만나서 열강을 들을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운아들인지요?
자칫 따분할까 양념으로 코믹 멘트 서비스까지 잊지 않으시니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제자들이 아니되길 바랄뿐입니다.
래순샘의 웃는 얼굴을 뵙는 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음이 실감났어요.
봄에는 더 활기찬 모습으로 공부할 수 있겠지요. 날 풀리면 그림구경 가기로 해요!
정정미   15-02-23 22:21
    
오늘 수업 내용이 한 눈에 쏙 들어오네요.
요렇게 빨리 알찬 후기를 올리시다니 역시나 반장님 다워요 감사합니다.
명절을 보내고 다들 뽀송뽀송한 얼굴 반갑고 즐거웠어요.
수업시간 내내 웃으며 강의를 들으면서도
결석하신 분들 빈자리가 자꾸만 시선을 빼앗아 가서 애먹었습니다 ㅎㅎ
담주는 한 분도 빠짐없이 나오셔셔 봄학기 개강을 함께 열었으면 좋겠어요.

(차이의 힘).......우리는 한 곳에 앉아 한 가지에 대해 서로 다르게 생각하며
무덤 같은 평화를 견디고 있는 중이다..... 문숙의 시 중에서
   
우리들은 한 곳에 앉아 한 가지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며 축제처럼 즐기며 살아가요.ㅎㅎ
     
한지황   15-02-23 22:51
    
누구보다도 따스한 감성의 소유자 총무님! 역시 집나간  자식들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수업을 들었군요..방금전 우린 같은 생각으로 댓글을 올리고 있었어요! 역시...
거리는 떨어져있지만 강의실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수업시간을 회상하며 서료를 생각하고...
이래서 사랑방과 같은 강의실이 존재하나봐요.
만나고  또 만나도 좋기만 한 우리 벗들!
진미경   15-02-23 22:39
    
래순샘! 곧 잊혀질지라도 저도 행복했어요. 이론은 겉돌지만 여러 편의 시는 여전히 흥미로왔어요.
이재무 시인의 송가, 문숙시인의 엉덩이의 힘, 경계를 넘는 일은 수필반에 와서 만나는 선물입니다.

2월에 때 아닌 황사가 찾아왔어요. 잔뜩 겁을 먹고 황사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어 , 거리의 남녀들은
황사를 두려워하지않는 듯 마스크 없는 인파입니다.
황사는 미세먼지와 중금속까지 몰고오는 아주 나쁜 녀석이랍니다.
왜 갑자기 황사타령이냐고요 !
일산반 문우님들 황사 조심하시고 봄학기에 모두 뵙길 바래요.
많이 결석하셔서 허전하고 옆구리 시렸답니다.
그리고 래순샘 귤 맛있게 먹었어요. 항상 감사드려요.
반장님의 후기는 나중에 모으면 한권의 책이 될 것입니다.
제목도 내용도 굿굿 !
한지황   15-02-23 22:57
    
ㅎㅎ 아까 장미희 광고찍는 현장 재현 연기 일품이었어요!
미경샘의  표정연기는 늘 잼나요. ㅎ
그래서 미경샘이 없는 강의실은 생각할 수 없고요.
핑크빛 스카프가 그레이 코트랑 잘 어울렸던 미경샘 코디센스!
덕분에  눈이 즐거웠어요.?
다음 주부터는 돌아온 미경샘과 함께 독토도 들썩들썩하겠지요?ㅎ
유정주   15-02-24 13:19
    
와우~~~!!!
반장님의 부지런함에 절로 감탄사가 나옵니다~
매번 수업 후기를 정확하고도 빠르게 올려주시는 반장님과 정이 팍팍 넘쳐나는 댓글들을 보면서 저도
'우리' 에 속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요~
선생님의 맛깔스럽고 시간을 잊게하는 강의도 너무 좋았습니다.
수업을 듣고 나면, 제 안의 깊숙히 가려진 감성을 멋있게 포장해 내놓고 싶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오늘도 후기를 읽으면서 또 한번 저에게 도전을 해봅니다.
나도 멋지게 해볼거라고~!!!
좋은 하루 되세요~~~~~^^
     
한지황   15-02-24 18:28
    
정주씨의 기쁨이 얼마나 생생하게 전달되는지
댓글만 읽어도 느낌이 팍팍 오네요.
일산반에 합류한 것이 얼마나 잘 한 일인지를 앞으로도 계속 깨닫게 될거에요.
적극적인 성품에 도전 정신까지 투철하다니
일산반이 더욱 굳건해질 것 같아요.
지금보다도 더 멋진 정주씨의 삶이 펼쳐지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