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 5.8(신력 21). 모스크바 출생. 본명은 카체브.
*어머니-(Nina Owczy?ska, 1879?1942), 큰 키에 미모와 재능을 갖춘 연극배우출신. 유창한 프랑스어로 프랑스 극장 무대에도 출연했던 유망주. *생부-이반 모주힌(1889-1939. 무성영화 시대의 대스타, 감독)
*1917년(3세), 니나는 가축용 화물칸을 얻어 타고 모스크바를 탈출, 리투아니아의 빌노에 도착 - 폴란드- 프랑스로 이주. *미혼모였던 어머니는 아들을 프랑스 대사와 같이 확실한 상류사회인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직업을 전전, 연극배우답게 화려한 언변과 상술을 동원해 사업을 해서 아들 뒷바라지를 함.
* 1946년 소설 <<새벽의 약속>>발표. -미국주부들에게 큰 영향과 감동을 줌.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에 나오는 어머니 니나는 세계작가들 중 금메달 감. 당시 유럽상류층의 언어였던 프랑스어를 가르치기 위하여 프랑스 국가를 4절까지 완벽히 외우게 함. 바이올린, 예능, 체육 가르쳤지만 아들이 딱지를 맞자 가장 편안히 쓸 수 있는 글쓰기 공부시킴. 단 한 번도 아들을 야단치거나 부족한 부분을 질타하지 않고 긍정적인 말로 의욕고취시킴. 미리 필명짓기(로맹가리와 에밀아자르도 이때 만들어짐), 무용 배울 땐 당시 최고의 무용수였던 니진스키가 될 거라고, 글쓰기를 할 땐 프랑스 대사나 가브리엘 다눈 치오(이탈리아작가)가 될 거라고 두둔. 작은 성과를 열렬히 자랑하고 기뻐함( 단 한번 탁 구시합에서 은메달 타왔을 때).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식탁 맞은편에 앉아 가끔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들 때면, 어머니 에 대한 내 사랑을 담기에 세상이 너무 작은 것처럼 느껴졌다....”
<<새벽의 약속(La Promesse de I'Aube>>에서
2. 폴랜드에서 프랑스로
*빚쟁이 피해 1922-1923년, 바르샤바로. 니스(Nice)로 이주한 것은 카체브가 13세 때인 1927년. 어머니는 리투아니아인의 도움으로 호텔의 관리를 맡아주고 대신 호텔 안에 거주하며 매점을 운영. 명문 중학에 입학한 카체브는 프랑스어와 보들레르 시 암송에서 1등, 고3 때는 작문 1등상을 받는 우등생.
*카체브는 프랑스어 1등상으로 받은 발자크의 책을 팔아 친구들과 창녀촌 찾아감. 성병에 대한 공포증 때문에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온다. 어릴 때부터 니나는 아들에게 매독과 집시여자, 두 재앙만은 반드시 피할 것을 맹세.
*교수님말씀-자식들이 부모의 잔소리를 싫어하지만 그래도 해야 된다. 듣는 순간엔 싫어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부모를 기억하기 때문.
이 시절부터 카체브를 일생 동안 위안하는 것은 오직 창작. 항상 소설의 마지막 장부터 써 놓았다. 그의 그 강박관념적인 글쓰기는 죽는 순간까지 계속. 이런 방식은 신문연제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3. 법과 대학생
*1933년(19세), 니스에서 대입자격시험에 합격. 라틴어 때문에 고등사범학교를 포기.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의 법과대학에 진학. 1934년(20세), 가을 파리로 가서 법과대학생이 된다. 접시닦이, 배달, 호텔 종업원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
어머니에게 다른 신인의 소설을 오려 보내면서 자기의 필명이 바뀌었다고 거짓말.
*1935년(21세), 2월 15일, 48만 부의 주간지 <<그랭구아르(Gringoire)>>에 단편 <소나기(L’Orage)> 게재. 단편 한 편으로 1000프랑.
*프랑스 귀화 수속, 1938년(24세), 공군 장교가 되기 위한 고등군사교육. 임관 불가. 3년 미만의 귀화인이라는 점과 보증해 줄 변변한 인맥이 없었던 것이 결격 사유. 동기생 290명 중 4등으로 유일한 탈락자. 전투비행을 배운 그는 중사로 입대. 사고로 코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 군복무 부적합 판정을 피하기 위해 부상을 숨기고 계속 근무, 1944년에야 수술. 프랑스군은 패퇴에 직면하여 흩어진다. 그는 동료와 포테즈 전투기를 몰고 간신히 모로코에 기착.
4. 항독 자유프랑스 군
북아프리카 주둔군을 영국으로 실어 나르는 전함에 승선하여 영국으로 간다. 동맹군의 환영을 받는 12명의 비행사들은 드골 장군이 이끄는 자유프랑스 군(FAFL)에 편입. 약 500명의 런던 주둔 자유 프랑스군은 그 때까지 그들을 갈라놓았던 사회적 신분, 가문, 학력, 종교를 초월하여 ‘자유 프랑스 승리’라는 드골의 외침 하나로 뭉친다. 이때부터 그는 카체브가 아닌 ‘가리’로 이름을 바꾼다.
세 차례나 대형 비행 사고를 당하면서도 살아남은 그는 전선을 잃고 합류지점을 찾아 헤매다가 하이파(Haifa, 이스라엘 3대 도시)를 거쳐 다마스커스(Damascus, 시리아 수도)에 도착한 후 쓰러진다. 장티브스에 걸려 전염병동에서 9일간 사투. 6개월의 입원 끝에 전투 비행을 다시 시작한 가리는 틈틈이 <<유럽의 교육>> 집필. 어머니가 암으로 니스에서 사망했다는 전보. 아들에게 부칠 편지 250통이나 써서 맡기고 죽었다.
- 이런 어머니의 전폭적인 사랑과 희생, 지지를 생각하고 부상 때마다 살아남.
1944년 이혼녀 레슬리 블랜치(Lesley Blanch, 1904-2007, 영국 작가, 기자, 여행작가)와 결혼. 프랑스인 조상이 영국에 망명하여 세운 순수 프랑스 혈통의 가문 출생으로 가리보다 7세 연상. 드골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L’ordre national de la L?gion d’honneur)을 받는다.
2교시 수필반
송경호님( 뜸부기)-뜸부기라는 희귀철새의 제목아래 가족의 운명과 대서사가 재미있고, 잘 연결되어 있다는평. 과수원 이야기 기다립니다.
신선숙님(매니큐어)- 일상을 잘 포착. 작가특유의 유머감각을 살려 좀 더 재미있게 꾸려도 좋을 듯.
김유정님(봄날은간다)-유행가가 어떤 땐 감동적이다. 이대로도 좋지만 노래를 중점으로 다시 써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듯하다.
3교시
오늘은 반장님을 비롯하여 감기 환자가 많아 티타임을 생략했습니다. 대신 수업시간에 박옥희 선생님께서 맛있는 츄러스를 준비해주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