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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전반기에 가장 훌륭한 작가, 카잔차키스-(명작과 수필반)    
글쓴이 : 오정주    26-07-16 23:57    조회 : 46

<1> 카잔차키스 (1883~1957)

임교수님은 예전에 20세기 전반에 가장 훌륭한 작가로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꼽았습니다. 20세기 후반은 중국 작가 모옌을 언급하셨지요.

오늘 고선생님의 강의로 다시 한 번 공부를 해봅니다. 

*미완으로 끝난 일대기*

니코스카찬차키스가1955(72)부터 집필을 구상하여 1956년 가을부터 생애 마지막 1년 동안 집필. 1957년중국 방문 직전, 생전에 발표하려고 1권과 2권 중 오디세이아 부분만 출판사로 보냄. 그 후 마무리 못한 채마지막순간까지 수정과 탈고를 간절히 원했으나 급작한 사망으로 미완의 자서전.

 

영혼의 자서전: 아버지에게 올리는 마지막 보고서

카잔차키스가 인생의 말년에 집필한 영혼의 자서전의 원제는 그레코에게 올리는 보고(Report to Greco). 여기서 '그레코'는 크레타 출신의 위대한 화가 엘 그레코를 의미하지만, 책의 서두와 행간을 읽어보면 이 '보고서'의 진짜 수신인은 다름 아닌 그의 엄격한 아버지이며 본인의 자서전이다. 이 책은 꼭 읽어보기 바람.

 

영혼의 자서전 서두

세 가지의 영혼, 세 가지의 기도

첫째, 나는 당신이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이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이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힘껏 당겨주소서, 주님이여.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겠나이까?

그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평생 방랑하며 얻은 영적 투쟁의 결과물들을 아버지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습니다. "아버지, 저는 육체로 싸우지는 못했지만, 영혼의 전선에서 피를 흘리며 끝까지 싸워 이 보고서를 올립니다"라는 고백과도 같습니다. 

*크레타(Crete) 섬과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영혼의 동반자. 카잔차키스는 평생 세계 곳곳을 방랑했지만, 그의 영적 뿌리와 문학적 에너지는 언제나 고향인 크레타의 거친 흙과 푸른 바다에서 나왔다.

크레타는 지리적으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길목에 위치해 역사적으로 미노아 문명의 발상지이면서도,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지배(아랍, 베네치아, 오스만 제국 등)를 견뎌내야 했던 격동의 땅이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가 고향 크레타 섬에서 실제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춤을 추었던 배경은 그리스 크레타 섬의 북서부, 하니아(Chania) 인근 아크로티리 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Stavros Beach (스타브로스 해변)

 *카잔카키스 아버지는 곧 '크레타 섬' 그 자체였다.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은 싫어했다. 어머니 마리아는 전형적인 크레타의 순종적이고 온화한 여인. 남편의 서슬 퍼런 권위 앞에서는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남편이 보지 않는 곳에서 아들의 모든 상처를 보듬어 안았다.

투쟁의 화신: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맞서 싸우는 크레타의 전사였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강인함을 요구했습니다. 나약함이나 눈물은 용납되지 않았다.

카잔차키스의 아버지는 이라클리오의 농산물 및 사료 상인. 그는 전형적인 크레타의 거친 사내였다.

침묵과 엄격함: 아버지는 말이 없고 무뚝뚝하며, 타협을 모르는 고집스러운 성격. 카잔차키스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설 때면 온 집안에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고 회고한다.

*카잔차키스의 아버지는 장인을 몹시 싫어하고 피했다. 반면 외할아버지는 딸 손주들을 무척 사랑했지만, 사위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늘 사위의 눈치를 살피며 집을 찾아왔다. 이들의 기묘하고도 팽팽했던 관계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들로 전해진다.

1. 사위를 피해 몰래 찾아왔던 외할아버지카잔차키스의 외할아버지는 온화하고 푸른 눈을 가진, 활기차고 다정한 시골 농부. 그는 딸과 손주들을 보기 위해 일 년에 두 번(부활절과 크리스마스) 이라클리오를 찾아왔는데, 늘 사위의 부재를 치밀하게 계산해서 집을 방문.

2. 장인을 극도로 꺼렸던 아버지는 온화하고 활기찬 성격의 장인을 온 마음으로 거부. 피 섞임을 경계함: 아버지는 장인이 집에 들어와 아들(니코스 카잔차키스)과 다정하게 대화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장인의 부드럽고 온화한 성정()이 자신의 아들에게 섞여 아들을 나약하게 만들까 봐 몹시 두려워하고 불쾌해 했다. 식사 자리마저 피함: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에 장인이 가져온 아기 돼지 구이가 식탁에 올라오면, 아버지는 그 냄새조차 메스꺼워하며 장인과 마주 앉지 않고 서둘러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떴다.

카잔차키스의 유년 시절 가장 평화롭고 행복했던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아버지가 집을 비우고, 온화한 외할아버지가 몰래 찾아왔을 때였다.

카잔차키스는 1957년 타계한 후 고향 크레타로 돌아왔다. 하지만 정교회와의 갈등 때문에 교회 묘지에는 묻히지 못하고, 고향 이라클리오를 둘러싼 베네치아 성벽의 마르티네고 요새에 외로이 묻혔다.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2>합평 김봄빛/국화리/설영신/신선숙/오길순/민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