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희와 열정에 대하여
열정은 악이라 했다. 이것이 덕이다.
환희는 열정의 심장부에 최고 목표를 심는다. 이것 또한 덕이다.
덕은 한 인간이 개성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덕의 고유성이다.
즉 고유성인 덕, 이것이 나의 (善) 이다.
나는 이것을 사랑한다. 그것은 내 마음에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선을 바란다.
각자가 열정과 환희로 체득하여 가치를 얻어 내는 존재다.
니체의 덕은 에리히 프롬의 “존재성”과 비교된다.
있다가 없어지는 소유양식과 하나밖에 없는 고유성의 존재 양식.
나로서 존재하고 싶다는 단독자로 결정하고 합리적인 권위로 서로 존경하고 능동적으로 사랑한다.
2. 참혹한 범죄자에 대하여
범죄자를 ‘적’이라고 부를지언정 ‘악한’이라고 부르지 마라. ‘병자’라고 부를지언정 ‘무 뢰한’이라고 부르 지 마 라. ‘바보’라고 부를지언정 죄인이라고 부르지 마라.
범죄자의 행동은 가련한 이성을 속박했다. 행위 뒤의 ‘광기’라고 부른다.
3. 독서와 저작에 대하여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의 피가 곧 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글쓰기는 온몸의 활동이다. 두뇌와 심장으로서가 아니고 세포 사이마다 간직해두어 몸 의로 밀고 나가는 것 이다.
게으름으로 남의 피로 쓴 책을 읽는 자들을 미워한다. 인용할 거리만 찾고 있기 때 문이다. 자기가 고뇌해서 만든 문장을 써라.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에 친숙한 것이 아니고 사랑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사랑 속에는 광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 속엔 이성도 있기 마련이고.
가벼워지기를 바라고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먼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숙면은 훌륭한 신체를 만들고 열정과 환희로 정신적인 힘의 의지를 발휘해 우리 모두 가 고유한 위버맨쉬가 되 라고 짜라투스트라는 어렵게 단어들을 나열하며 말하고 있다.
시기는 끔찍한 것이다. 어렵사리 일구어 놓은 덕까지도 시기 속에서 파멸될 수 있기 때문이다.
2교시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