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소재를 마음속에 끌어안고 지내다 보면 멋진 귀절(영감)이 떠오른다고 그때마다 메모해 두어야 한다고 교수님은 수업에서 강조하셨다.
차이코프스키가 폰 메크부인에게 쓴 편지에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인간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끼칠 작품들을 만드는 능력을 제게 부여했습니다. 저는 창작 능력과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한탄할 정도는 아닙니다. ....."(중략)
창작과 영감으로 두뇌 회전을 만드는 게 모든 예술가들에게는 중요한 작업이다.
1876,12 전폭적인 지원자 폰 메크 부인의 등장 : 연금 6천 루블 지급 시작으로 <백조의 호수>초연1877(37세), 안토니나 이바노브나 밀류코바와 결혼하나 즉시 파경. 그녀와 차이코프스키는 형식상 부부.
1878(38),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러시아적인 잉여 인간상그려., 교향곡 제 4번 완성.
1879(39), <오를레앙의 처녀>,<관현악 조곡>제 1번 완성.
1880(40), <이탈리아 기상곡>,<현악기 연주자를 위한 세레나데 작곡. <1812년>완성, 환상서곡 <로미오와 줄리엣>결정판 완성. 1812년은 나폴레옹이 러시아 침략한 해 _ 이때 인류가 낳은 최대의 문학작품 톨스토이의 대표적 소설 <전쟁과 평화>창작.
1882(42), 루빈슈타인에게 헌정한 <피아노 3중주,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완성. <1812년>초연.
1883(43), 오페라 <마제파>완성. 3막 6장 -우크라이나의 전설적 영웅이야기.
<마제파>는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창작. 푸시킨은 <폴타바>로 , 바이런은 사랑에 초점을 두고 시로 작성,
1884(44), 오페라 <마제파> 초연. 공연과정의 고통으로 오페라를 더 이상 작곡 않겠다 함.
1885(45), 옛 제자인 피아니스트 타네예프를 모스크바 음악원 교장으로 선출시켰다.
1887(47), 오페라 <마녀> 완성하였으나 초연 실패.
1889(49),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완성. 베를린, 쾰른, 드레스덴, 제네바등지로 순회공연.
1890(50),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완성, 이 때 폰 메크 부인의 원조 중단 통보.
폰 메크 부인의 원조 중단이유는 애매하나 추측으로는,
- 작곡가의 동성애가 폰 메크부인의 둘째 딸을 통해 전달되었을 것이라는 설
- 폰 메크의 막내 딸이 남편의 비서실 연하남과의 불륜아라는 설
- 당시 폰 메크의 건강 악화설
- 자녀들의 결혼으로 인척들이 지원 반대, 사위가 연하남과의 불륜설 들어서 아내와 장모 협박으로 중단설
- 동성애 소문으로 폰 메크 안만나주었다는 설 등..- 가장 유력하지 않았을까?
1892(52), 발레 <호두까끼 인형> 마린스키 공연장서 공연.
1893(53), 교향곡 6번<비창>작성하여 생의 마지막 측근인 조카 보비에게 헌정, 레퀴엠에 가까운 분위기
같은 해 10. 28 <교향곡 제6번 비칭> 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 지휘
원래는 비창 제목 없었는데 죽은 뒤에 너무 슬퍼 <비창>으로 제목 정해. <운명><비창> 제목 좋다.
1893. 11.2 (53세로 죽음) 콜레라에 걸려 11월 6일 동생 모데스트의 집에서 운명. 11월 10일 8천명의 조객 행렬로
알렉산더 네프스키 수도원 묘지에 안장.
* 콜레라로 죽었다 했지만, 동성애 발각 돼 자살 (동생 집서 비소 탄 음료 마셔)했을 것이라는 자료.
영국 BBC가 사인에 대한 심층 보도해 자살설 뒷받침. 당시 러시아 상황은 동성애 금지령, 처벌가혹했다.
시베리아로 유형가거나 시가지에서 태형당해.
과연 이 최고의 작곡가는 병사일까? 자살일까? - 남자를 사랑한 비운의 이 예술가는 명예롭게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을까?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를 빨리 잃었다는 사실이다.
나도 좋아하는 <비창> 다시 천천히 음미하면서 위대한 예술가의 영혼의 소리를 들어야겠다...
- 작품 합평 : 국화 리 (존칭생략)
- <한국산문 11월호> 합평 -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 선생님들 수고 많으셨어요.
다음 주 수업에서는 위대한 문학가 톨스토이 강의를 하신답니다. 결석하지 마시고 참여해 주셔요.
코로나가 심상치 않다는 보도가 가슴을 철렁이게 하네요. 늘 건강 조심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