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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노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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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한경험    
글쓴이 : 노재선    12-05-31 22:48    조회 : 3,551
   지독한경험.hwp (16.0K) [4] DATE : 2012-07-06 01:39:34
지독한 경험
노 재 선
아무에게나 특별한 경험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곳이 있다. 그닥 내키지 않는 과정이지만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환자들만 모일 수 있는 중환자실. 데체로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다. 그곳을 방문해 본적은 있었지만 실제체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살다보니 받아들여야할 그런 날이 내게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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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에서 깨어보니 살아 있었다.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의식은 분명했다. 하늘같은 의사의 성공적인 수술이라는 음성이 들렸고 남편과 두 아이들의 얼굴이 번갈아가며 보인다. 안도의 숨을 쉬는 가족들과 번개팅 면회가 끝난 곳은 중환자실이었다. 고개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통증이 점점 실감났다. 이런 것쯤이야... 애써 마법 속으로 빠지려고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몰핀이 이래서 필요한 것이리라. 군데군데에서는 간호사를 불러댄다. 차라리 그들은 나은 편이다. 소리라도 낼 수 있으니.
기관지를 절개하여 척추의 종양을 목안을 통하여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나는 넘어오는 피를 막기 위해 목구멍을 막은 것이다. 아뿔사, 본의 아니게 벙어리 신세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수화(手話) 라도 배워 둘 것을. 입안은 비상사태다. 사포(砂布)로 마사지라도 해 놓았는지 거칠거리고 어금니는 아래 위가 맞지를 않는다. 이리저리 돌아눕지도 못한 채 천정만을 바라보고 있어야한다. 내 몸을 감고 있는 허다한 호스들이 족쇄처럼 무겁고 거추장스러운데 살아남기 위해선 견뎌야 한다는 절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불안한 내일을 모른채 나는 손바닥 뒤엎기만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는 있지만 죽은 것 같은 사람에게 간호사는 이름을 부르며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준다. 꿈쩍도 않는 내 옆의 환자는 곧 요단강을 건널 것 같다. 혈압은 계속 떨어지고 무의식적으로 목숨 줄은 잡아당긴다. 이제는 뒤엎기 놀이를 끝내고 싶은거다. 그런 환자를 간호사들은 질기게도 체크를 한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그들도 어쩔 수 없나보다. 대신해 줄 수없는 절망.
의식 없는 중환자는 스스로의 몸을 물건처럼 맡긴다. 사람의 모습이라기엔 너무 처절하다. 너무 말라서 난민촌의 무리 같기도 하고 복수가 차올라 불어터진 환자는 10년 전 죽어버린 친구 모습같아 설움이 북바친다. 태어나는 일이 힘들듯 죽음 또한 그렇다면 ‘자는 듯 가게하소서’ 라는 기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의식 없음이 차라리 나을지 모른다. 의식이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안정을 할 수가 없었다. 부작용의 두려움에다 지독한 통증. 거기다 실내는 불경기의 장터같이 썰렁하고 춥다. 겨우 도움의 손짓을 해보지만 도무지 달라지는 게 없었다. 차라리 수면제로 잠이라도 재워줬으면. 잘 수도 깨어 있을 수도 없는 악몽 같던 날.
의료진들은 긴 근무시간의 피곤을 음악과 잡담으로 푸는 듯 했고 어디선가 크게 질러대는 소리, 절구통 찧는 것처럼 둔탁한 소리가 주기적으로 귀를 거슬리게 한다.
죽을 병에 걸리면 병원에서는 죽고 싶지 않다고 했다던 말이 생각났다. 집이나 공기 좋은 곳에서 조용히 정리 하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미쳐 버릴 것 같은 분위기.
나의 스트레스는 점점 증폭이 되었고 극도로 날카로워진 신경은 주체 할 수 없었다. 찔러대는 주사, 간간히 빼 가는 혈액, 허리는 끊어지게 아프고 어디 한군데를 편하게 해 주질 않는다. 전신이 떨리기 시작했다. 억울함과 무시당했다는 모욕감, 조금만 움직일 수 있었어도 휴지통을 던져 버렸을 것이다. 엉뚱한 부작용이 생길 것 같았다.
어찌되었던 시간은 보내야했고 남편의 면회시간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이는 내 손짓을 잘 알아 볼 것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30년을 같이 살아온 사람인데 눈빛만 봐도 어디가 불편한지 알아주는 사람이 아니던가. 중환자실에서 눈감고 하루를 꼬박 새우는 일은 눈뜨고 망망대해에서 혼자 헤엄쳐 육지를 찿아가는 절박하고도 참혹한 심정과 비교나 될까. 그때 내게 절실했던 것은 그곳을 빠져나와 아늑한 곳에서의 휴식과 따뜻한 담요. 나를 진정시켜 줄 수 있는 구노의 <아베마리아>의 선율이었다. 내가 살게 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면회시간까지는 참으로 길었다. 둘째아이가 돌이 되기 전 남편이 중동지방으로 출장 떠났을 때였다. 나라의 대통령이 서거를 했고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타국에 있던 남편소식을 기다렸던 그때만큼이나 애가 타서 입술은 말라 터졌다.
중환자실에서 28시간을 뜬눈으로 보낸 다음날 오전 10시. 하나 둘씩 보호자들이 나타나 물수건으로 얼굴 한번 닦아주고 메아리도 없는 멘트 “또 올께요.” 그리고는 글썽이는 눈으로 돌아간다. 나의 구세주도 서둘러 왔다. 몹시도 떨고 있는 나를 보고 같이 떨기 시작한다. 처절한 수화가 전해지고 남편의 도움으로 탈출을 했다.
오전 11시, 병실로 돌아온 나는 우선 귀를 찌르는 둔탁한 소음과 공사판 같은 그곳의 일들을 빨리 잊고 싶었다. 내 따뜻한 침상에서 커튼을 닫고 먼저 깊은 잠에 빠지고 싶었다. 치유의 빛을 주고 싶다던 지인이 손수 선곡해 주었던 곡들을 낮은 볼륨으로 고정 시키고서야나는 서서히 진정이 되어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수면제가 없어도 이렇게 편안한 잠 속으로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베마리아>의 선율이 귓가에서 속삭인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남편의 손을 꼬옥 잡았다. 지금 나는 빠르게 회복이 되어가고 있다. 의식이 있고서는 가고싶지 않은 곳. 하루를 넘긴 공포의 시간과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아직도 그곳에 있을 환우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지독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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