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팸 투어 후기
최선자
바다에 금빛 다리가 길게 놓였다. 종일 걸어와 지친 해를 한 무리 검은 야크 떼로 변한 고군산군도가 붙잡고 있다. 윤슬이 바람의 음계를 타고 다리 위에서 왈츠를 춘다. 현란한 율동에 넋을 잃은 야크 떼가 해의 옷자락을 스르르 놓는다. 단발머리 소녀가 까치발을 하고 주홍빛 동화 나라를 찾아서 다리를 건너다 까르르 웃는다. 웃음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다. 나를 단박에 오십 년 전으로 데려다 준 노을 풍경을 품은 새만금 방조제 끝이 아스라하다.
신은 인간에게 어디까지 허락한 것일까. 새만금 방조제 위에서 자연에 도전한 인간의 힘을 실감한다. 전라북도 군산과 고군산군도, 부안군을 연결하는 길이 33. 9km의 방조제는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세계 최장이다. 방조제의 완공으로 한국 국토의 0.4%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나 되는 바다가 육지로 변했다. 새만금이다. 예부터 김제 만경평야를 금만 평야로 불렸다. 금만을 만금으로 바꾸고 새롭다는 뜻의 새를 덧붙였다.
새로움은 희망이지만, 희생이 따른다. 나의 고향 바다는 영광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후로 예전처럼 생물들이 많이 살지 않는다. 그때의 노을도 만나지 못한다. 친정에 가면 잃어버린 추억을 찾아서 꼭 바다에 간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면 친구들과 바다에서 조개도 캐고, 게도 잡으며 시원한 물속에서 더위를 식혔다. 어느 날, 썰물을 따라가면서 조개를 캐다 보니 백사장에서 꽤 멀어졌다. 마침 맞닿은 하늘과 바다가 홍시 빛이었다. 커다란 불덩이가 천천히 수평선으로 빠져들었다. 작은 가슴이 물아일체가 되어 숨이 멎는 듯했다.
새만금 개발은 동진강, 만경강 하구의 갯벌 개발로 용지를 확보하고 농수산 시범단지 조성, 국제무역항의 건설기반을 구축하고자 시작되었다. 19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방조제가 완공되고 6년이 지났지만, 아직 광활한 땅은 엄마의 구멍 난 러닝처럼 해초들과 갈대 사이로 군데군데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새만금이 두툼한 옷을 입게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새만금과 포항을 연결할 동서 2축 고속도로가 이미 신시도 방조제에서 김제 신포까지 공사가 진행되었고, 부안군 하서면 새만금 관광단지와 군산시 새만금 산업단지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도로 개설공사도 내년 5월 시작된다. 2020년에 완공 예정인 두 도로는 내부를 십자형으로 연결해 새만금 도로의 중추 역할을 할 것이다.
무수한 생물들의 서식지였고, 육지에서 흘러든 오염물질을 정화하며 홍수와 태풍을 조절해주었다. 세계 7대 갯벌 중 하나였던 갯벌이 새만금 개발로 사라졌다.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어민들의 애환으로 얼룩진 땅이다. 그 많은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새만금이 경제와 산업, 관광을 아우르는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21세기 대한민국 발전의 상징, 새로운 문명을 여는 명품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새만금 방조제는 드라이브의 백미를 즐길 수 있다. 서해의 노을이 맞아주는 석양 무렵이 더 좋다. 차창 안을 기웃대는 바닷바람에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운전대는 어느새 악기가 되리라. 아직은 갈대숲에서 뛰어나와 반겨주는 고라니를 만날 수도 있다.
비응항에서 선유도행 유람선에 올랐다. 물 위에 줄지어 떠 있는 섬들이 새만금의 방파제를 연상시켰다. 고군산군도는 6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유도, 신시도, 장자도, 무녀도….등 16개의 섬만 사람들이 산다. 항구에서 멀어지자 바위섬들이 가까이 지나친다. 백령도의 두무진, 홍도처럼 파도에 침식된 기암괴석의 해안 절벽을 상상했는데, 미끈한 바위섬들은 또 다른 풍경이다.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무들을 보며 끈질긴 생명력을 느낀다. 섬과 섬을 잇는 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이미 신시도에서 무녀도 입구까지 공사가 진행되었다. 내년에는 자동차로 선유도에 갈 수 있다.
선유도에 도착하자 쪽빛 바다와 등대, 망주봉이 맞아주었다. 망주봉은 2개의 바위산으로 108m나 된다. 선유도에 유배되어 온 선비가 산봉우리에 올라가 한양 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여름철에 큰비가 내리면 망주봉에서 7-8개의 물줄기가 쏟아지는 망주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망주폭포, 명사십리, 평사낙안, 선유낙조 등은 선유 8경이다.
선착장에 자전거가 즐비하다. 무녀도를 이어주는 주홍빛 선유대교도 눈길을 붙잡는다. 외지인의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으니 자전거로 섬을 일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홀로 여행이었다면 차분히 섬 일주도로를 걸어보고 싶다. 혼자서 천천히 걸으며 사색에 빠지기도 하고 새로운 풍경을 즐기는 나는 단체여행은 무리였다.
다리를 건너 무녀도에 들어섰다. 조상들의 부지런함이 섬의 명칭에도 묻어있다. ‘무녀도는 무녀봉 앞에 장구 모양의 장구 섬과 그 옆에 술잔 모양의 섬이 있고 마치, 무당이 굿을 할 때 너울너울 춤을 추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무녀도(巫女島)라 하였다. 옛 이름은 서드이라고 하는데, 열심히 서둘러 일해야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천연기념물인 모감주나무 군락지와 초분공원도 있다. 어린 시절, 나의 고향에서도 초분을 본적이 있다. 정월에 땅을 파면 안 된다는 풍습 때문에 초상이 나면 초분을 만들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한 폭의 수채화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쪽빛 바다, 물에 잠긴 채 세상이 궁금하다는 듯 머리만 내민 바위들, 한가로이 떠 있는 배가 어우러진 풍경은 그림 같다. 바닷가 밭에서 일하는 부부의 모습은 밀레의 ‘만종’이 떠오게 한다. 신의 조각 작품 전시장 같았던 홍도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던 감흥과 달리, 흰 도포를 입은 신선처럼 쪽빛 바다로 몸을 감싸는 환상에 빠진다. 일상을 벗어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조금 더 들어가자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있다.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염주나무라고도 불린다. 천연기념물이라는 나무들이 신기해 카메라에 담으며 주춤거리는 사이 앞서가던 일행들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너무 늦으면 돌아오는 사람들과 합류하리라 여유를 부린다. 서해 같지 않은 쪽빛 바닷물에 떠 있는 섬들과 눈을 맞추며 해안도로를 걷다 보니 속세를 벗어난다.
무녀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에 들어서자 어촌답게 굴 껍데기가 여기저기 쌓여있다. 주민 한 사람 오가지 않은 한적한 골목. 가을 햇살이 모과나무에 앉아서 열매를 쓰다듬는다. 모과 향이 콧속을 파고든다. 어찌 외모로만 판단할 수 있겠는가. 한여름의 무더위와 세찬 비바람을 품고 발효시켜 내면을 향기로 가득 채운 모과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일요일이라 텅 빈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환영만 보인다. 일정 때문에 선유낙조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 선유도의 ‘선유 8경’과 무녀도를 다 둘러보지 못하고 뒤돌아서는 발걸음이 무척 아쉽다. 나중에 꼭 한 번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발길을 돌렸다.
*무녀도 안내판에서 인용.
2016,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