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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의 카프리스    
글쓴이 : 오정주    25-01-06 14:11    조회 : 1,025

악마의 카프리스

딸아이는 바이올린을 선택한 자신의 미래를 후회하는 한탄스러운 말을 처음으로 쏟아냈다. 대학 입시 곡으로 나온 파가니니(1782~1840)24, 카프리스중 난이도가 높은 4번이 화근이었다. 기대했던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의 길을 가야 하는 암울한 현실은 예술의 길이 얼마나 외롭고 험난한가를 배가시키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넉 달 넘게 절통한 비애가 느껴지는 난해한 그 곡을 들으며 추운 겨울을 힘겹게 보냈다. 바이올린의 경전으로 불리는 24, 카프리스는 풍부한 악상과 아르페지오, 스타카토, 더블 트릴, 왼손 피치카토 등 손가락의 근육이 견뎌내지 못할 정도의 고난도 기교가 가득하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학생이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필수곡으로 각종 경연 대회와 입시의 단골손님이다. 당시 바이올리니스트들조차 이건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는데 전설의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Heifetz 무대에서 완곡 연주를 거부했다고 한다.

마에스토소의 장중한 멜로디와 휘파람 소리 같은 하모닉스 화음이 얼마나 멋진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고 예찬하면 딸은 다채로운 화음을 내는 그 기교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비틀어지는 운지법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손에 쥐가 날 정도로 계속되는 트릴과 중음 주법, 활 털에 불이 날 정도로 튀겨야 하는 기법 등은 너무나 난해하여 혼이 쏙 빠져나가는 느낌이란다. 또한 음정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손가락이 이쑤시개처럼 얇았으면 좋겠고 손가락 다섯 개도 모자라며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펴질 수 있는 마술이라도 걸렸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한 대로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모방하고 갖가지 동물의 울음소리를 재현하고, 활도 나뭇가지로 쓰고, 현을 한두 개만 사용하거나 악보를 거꾸로 올려놓고 연주했다. 그 기행들은 모두 다 그의 놀라운 실력을 증언하는 에피소드 아니겠냐고 아는 척을 하면 딸아이는 파가니니는 남들보다 팔과 손가락도 길었고 손가락 뼈마디가 부드러웠기에 난해한 연주도 가능했다고 항변했다. 그렇게 어려운 무반주곡을 24개나 만든 것은 20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배려가 없는 이기적인 작곡이라는 것이다.

그의 연주가 얼마나 예사롭지 않았으면 연주회장에 악마와 마녀가 춤을 춘다는 입소문이 퍼졌겠는가. 파가니니의 연주를 한 두 곡만 들으면 누구나 팬이 되어 열광했고 놀라운 연주에 감동한 나머지 집단 히스테리까지 일으켰다고 한다. 파가니니의 연주를 본 시인 하이네는 공연 중 발치에는 사슬이 감겨있고 악마가 나타나 연주를 도왔다라고 표현했다.

나폴레옹의 여동생 엘리자 보나파르트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까무러쳤다고 한다. 1832년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은 스물한 살의 리스트는 너무도 감격하여 그 자리서 엉엉 울었으며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미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았던 리스트는 그 후 새로운 연주 기법을 개발하여 당대 최고의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나는 우리 집 어린 두 남매가 학교 예능 발표회에서 1/81/4 사이즈의 바이올린으로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함께 연주했을 때 까무러치지는 않았고 짜릿한 행복을 느꼈다. 그런 순간을 평생 느껴보겠다는 욕심은 손톱만큼도 없었는데 예술학교를 선택한 딸이 유명 콩쿠르 트로피를 하나, , 거머쥐고 오자 나도 모르게 욕심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파가니니는 아홉 살에 자작곡으로 이미 연주회를 열어 세상을 놀라게 했고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연주 여행을 다니며 초인적인 기교를 위한 난곡難曲을 작곡한 천재였다. 우리 딸은 아홉 살 때 우연히 나간 소년 한국일보 음악콩쿠르에서 입상하여 나를 놀라게 했으나 그저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하는 보통 아이일 뿐이었다. 선천적 절대음감을 가진 게 신기하여 대회에 나간 본 것이지만 그때 입상만 안 했어도 가정 경제가 서서히 망해간다는 예술을 시키지 않았으리라. 상을 받자마자 아빠의 해외 발령지로 온 가족이 떠나야 했기에 자연스레 중단되었는데 6학년 초에 귀국하여 왜 예중 입학시험에 도전하여 그 길을 가게 했는지. 그것이 바로 운명인가 싶었다.

 

파가니니의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간파하고 베토벤 아버지처럼 혹독한 연습을 시켰다. 나는 그저 별 욕심 없이 평생 즐길만한 취미 한 가지를 계발해 주려고 6살에 맨 처음 시켜 본 것이 바이올린이었다. 그 천재도 골방에 가두고 아침부터 밤까지 정확하지 않으면 매를 때리고 끼니를 굶겼다고 하는데 나는 천재도 아닌 딸아이가 즐겨서 하기에 담금질 한 적도 없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예술을 쉽게 생각했다. 다행히 딸아이는 음악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스스로 알아서 즐겁게 연습하고 무난히 잘 헤쳐 나갔다. 어차피 갈 길이라면 어릴 적부터 엄격하고 철저하게 훈련 시킬 걸 그랬나? 돌에 한 번 걸려 넘어지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의 경이적인 음색의 연주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얻은 대가라고 당시 사람들이 수군거렸으면 어떠랴. 파가니니의 새끼손가락이 조금만 짧았더라면 난 그를 덜 원망했을 것이다. 그가 한두 개의 바이올린 현을 끊어버리고 작품을 계속 연주하는 재주가 진지한 음악이 아니라 경박한 잔재주를 피워 이목을 집중시킨다는 비난이 있거나 말거나 우리 딸을 그렇게 고생만 시키지 않았더라면 존경했을 텐데. 손가락이 긴 것도 모자라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병은 파가니니에게 얼마나 유리했을까. 아버지를 닮아 늘씬한 딸아이가 하필 새끼손가락만은 나를 닮았으니 원망스러울 뿐이다.

파가니니는 자기의 연주법을 비밀에 부치고 제자도 단 한 사람만 키웠다. 여러 명이 사사받았더라면 주법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후세 연주자들이 공부하기 편했을 텐데.

 ‘일정한 형식에 구속되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요소가 강한 기악곡이란 뜻의 카프리스capriccio는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말 같다. 그는 바이올린 하나로 많은 재산을 모았으나 관습과 권위를 무시하는 특유의 괴팍함과 자유분방함으로 젊은 시절에 걸린 매독이 평생 완치되지 않았고 말년에 투자 실패와 도박 등으로 바이올린도 처분하는 등 많은 재산을 날리는 불운을 겪었다. 나 홀로 재능을 끌어안고 자유롭게 과시하다가 불행을 겪은 것은 어쩌면 신이 선택한 파가니니를 악마가 질투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 평짜리 동굴 같은 연습실에 박혀서 해가 뜨는지 달이 지는지 모르고 연주에 몰입하는 딸에게 뮤즈의 천사가 나타나 도와주길 빌어본다. 이왕이면 파가니니처럼 기교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매력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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