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흔향영欣欣向榮
이른 아침 고요한 시간에 한자 고사성어 펜습자를 쓴다. 만물이 초록으로 아우성치는 5월, 위대한 자연 앞에서 게으르고 미지근한 내 삶의 반성문을 고하듯 펜을 든 손이 엄숙해진다. 사각사각 만년필 소리에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손 글씨를 쓸 일이 별로 없는 시대지만 오래전부터 고해 성사하듯, 그림 그리듯 써보고 싶었던 야심이 있었다. 수시로 모아둔 한글과 한자 펜습자 교본들을 버리지 않은 보람이 있을 줄이야.
그런데 시작한 지 3일 만에(작심삼일이란 말은 과연 명언이다!) 변덕이 나서 맨 뒷장부터 거꾸로 써볼까 하고 넘겼는데 ‘흔흔향영欣欣向榮’이란 글자가 눈에 띈다. 도연명(陶淵眀, 365-427)의 「귀거래사」에서 유래한 이 말은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으로 사업이 날로 발전하고 번창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덜덜 떨면서 정성 들여 써도 글씨가 맘에 안 드는데 초목이 무성한 계절에 어울리는 말이라서 그런지 흥미롭다.
물오른 나무들은 싱그럽게 꽃 피우려 하고/ 샘물은 졸졸 끊임없이 솟아 흐르네/ 만물이 때를 얻음을 부러워하며, 내 삶이 그쳐감을 느끼노라/ (木欣欣以向榮, 泉涓涓而始流. 羨萬物之得時, 感吾生之行休)
이 시에서 ‘흔흔향영’은 제철을 만나 무성한 초목과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도연명 자신의 삶을 대비하여 쓴 말이다. 높은 이상을 품고 어려서부터 학업에 매진하였던 그는 29살에 첫 벼슬자리에 앉았으나 불행히도 진·송이 교체되는 혼란기였다. 나라를 뒤흔드는 반란과 잦은 농민 봉기, 부정부패를 일삼는 정치에 환멸을 느꼈으나 생활고를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13년 동안 관직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천성은 끝내 그 길을 더 가지 못하고 은둔을 선택하였다. 41세에 현령에 임명되었을 때, 다섯 말의 녹봉을 받기 위해 상관에게 머리 숙이는 게 싫어서 관직을 버리고 낙향을 한 것이다. 단순한 자존심보다는 부조리한 현실에 더 이상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도연명의 전원생활은 가난하여 굶주리는 날이 많았고 집이 모두 불에 타버리는 시련도 겪었다. 호미와 삽을 들고 농사를 지으며 평생 가난과 병에 시달렸지만 권세와 타협하지 않았고 인생 후반전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곤궁해도 절조를 지키는 것’이 평소의 뜻이었고 자신의 신념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행복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담백한 그의 삶처럼 기교를 부리지 않은 평범한 시풍은 그 당시에는 인정 받지 못했으나 당나라 이후 육조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많은 시인에게 영향을 미쳐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스스로 노동하면서 가난한 농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따스한 인간미를 작품에 진솔하게 녹여 문학적 경지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도덕이나 지혜로 인민을 지배하는 유가 사상에 반하여 무위자연, 무위무욕의 도가사상을 실천한 그가 살던 옛집을 찾은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읊은 시구 한 줄이 마음을 찡하게 울린다.
당신의 단지에 담긴 술이 그리운 것도 아니고/ 줄 떨어진 당신의 거문고가 그리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과 들에서 자유롭게 스쳐 간 당신이 그리울 뿐입니다.
백거이가 간파한 도연명의 자유는 위대해 보인다. 시대의 귀인이 초야에 묻혀 재능을 쓰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영혼의 자유로움을 선택한 한 인간의 정신 해방, 내면의 승리는 눈부시게 부러운 일이다. 남의 밥을 빌어먹을 정도로 가난하다면, 나는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권세와 타협하지 않을 배짱이 있을까? 아무리 성품이 고상하고 산수와 자연을 즐기며 시를 짓고 읊조리는 낙을 아는 선비였어도 흔흔향영, 날로 번창한 삶을 추구하고 싶은 욕망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으리라.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 도연명은 자신의 제문(自際文)을 썼다. 이승에서의 삶을 기우寄寓라 하여 남의 집에 잠시 의탁하여 사는 것으로 보고 이승을 떠나는 것을 역려지관逆旅之館이라 하여 잠시 머물던 여관으로 묘사했다. 술과 시와 거문고를 벗 삼아 안빈낙도하면서 인간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유롭게 살았지만, 이승의 삶이 너무나 고달팠기에 “사후에도 그러면 어쩌나?” 염려하는 제문의 끝 문장은 유난히 마음을 아프게 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그 소회를 담은 글 「귀거래사」가 천년이 지났어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장사상을 바탕으로 전원생활에서 느끼는 자유와 평안을 그리는 마음은 복잡한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상향으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리라. 만년필로 다시 한 귀절을 노트에 옮겨 본다. 삶의 본질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라는 진리는 영원한 것이니 거기에 무슨 의문이 있겠는가!
모든 것이 끝난다
우리 인간에게는
그렇게도 적은 시간이 허용되어 있을 뿐
그러니 마음 내키는 대로 살자
애를 써서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재물에 욕심이 없다
천국에 대한 기대도 없다
청명한 날 혼자서 산책을 하고
등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끌며
동산에 올라 오랫동안 휘파람을 불고
맑은 냇가에서 시를 짓고
이렇게 나는 마지막 귀향할 때까지
하늘의 명을 달게 받으며
타고난 복을 누리리라
거기에 무슨 의문이 있겠는가
-피천득 번역 「귀거래사」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