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상 할머니
한 노인이 다가왔다.
그는 화가 나 있는 듯 보였다. 푹 꺼진 볼에 쭈욱 처진 입매가 유연함, 인자, 유머, 포용 등의 단어와는 먼 인상을 주었다. 미래에서 왔다고 했다. “내가 미래의 너”라며 영화 스타워즈의 ‘아임 유어 파더’급 충격 발언을 하더니, 한껏 내려간 눈꺼풀에 힘을 팍 주면서 이렇게 말을 하고는 사라졌다.
“오십 대가 네 인생의 황금기야. 제발 걱정은 집어치우고 지금을 즐겨.”
나의 공상이다. 불필요한 생각이 넘쳐흘러 허우적거릴 때, 이렇게 나는 미래의 나를 소환해 흔들리는 시야를 꽉 부여잡고 ‘지금’에 집중하라고 다그쳐왔다.
이번에 미래의 나와 대면한 이유는 ‘버킷 리스트’ 때문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나의 손을 떠났다. 나는 스스로 자기 길을 가는 아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역할만 하면 된다. 정말 홀가분했다. 드디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 자, 이제 무엇을 할까? 어떻게 내 삶을 잘 즐길 수 있을까? 오십 대의 나를 위한 버킷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를 위해’, ‘인생을 즐기기 위해’ 이런 단어는 고약하게도 사회적, 도덕적 책임감을 질질 달고 와서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 할 의무’를 펼쳐 보이며 머리를 묵직이 눌렀다. 거기에 ‘걱정병’은 이때다 싶게 당당히 등장해 노년기를 앞둔 시점에서 당연히 해야 할 고민을 쏟아냈다. 점점 기력을 잃어가는 양가 부모님, 노화를 증명하듯 계속 등장하는 나와 남편의 질병들, 노후 생활의 경제적 문제 등등. 버킷 리스트 작성이 거대한 구덩이 앞에서 위험을 모르고 춤을 추는 어린아이의 몸짓 같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다 이건 아니다 싶어 미래의 나를 다시 떠올렸던 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느라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버려 왔을까? 더는 ‘지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미래에 닥칠 일이 거대한 구덩이일지 작은 웅덩이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을 제대로 환기하기 위해서, 홍 할머니를 또 모셔 와야만 했다.
여기서 잠깐. 홍 할머니 장면에서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다. 할머니가 된 내 모습을 공상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얼굴을 그려보게 되었는데, 이렇게 쭉 고민 속에서 심각한 표정만 짓고 살다가는 얼굴에 인상 주름만 가득할 것 같았다. 이러다가는 결국 ‘울상(우는 상) 할머니’가 될지도 모른다.
내 꿈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에 미소가 가득한 할머니로 늙는 거다. ‘웃상(웃는 상) 할머니’.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근심으로 좁아진 미간의 주름을 펴고 미소를 지어야 한다. 광대와 입꼬리를 중력에 거슬러 위로 올려야 한다. 결국, 나의 버킷 리스트는 웃상 할머니가 되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시 공부하기, 과학 교사 친구들과 독서토론 모임 만들기, 오로라 보기, 유럽 미술관 여행 가기 등 목록을 만들어 나름대로 수행 중이다. 사실…, 이런 누구나의 버킷 리스트에도 있을 법한 목록 말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웃상 할머니가 되기 위한 알짜 실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바로 ‘친구들과 왁자지껄 놀기’이다. 중년의 연륜, 삶의 경험에서 오는 무게감, 오랜 직장 생활로 배어 나오는 노련한 태도, 이런 거 다 버리고 그냥 순수하게 놀고 싶었다. 사실 이 말은 철없는 이기주의 같기도 하고 무책임한 쾌락주의 같기도 하여 입 밖으로 내뱉기가 망설여졌지만, 이런 망설임 역시 걱정병의 증상 아닐까? 걱정은 백해무익, 고로 당당히 말하겠다. 재미있게 놀고 싶다고.
‘왁자지껄’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나는 많은 친구가 모여 떠들썩거리며 노는 장면이 그리웠다. 나이가 들수록 여러 모임이 많아졌지만, 마음 편하게 여럿이 웃고 떠들 수 있는 만남은 쉽지 않았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때마침 기적처럼 끊겼던 대학 동아리 친구들 모임이 다시 결성되었다. 스무 명 정도 다시 모였을 때, 우리는 빌린 장소가 울릴 정도로 시끌시끌하게 떠들었다. 30년 세월을 건너뛰어 만났기에 과거 기억을 서로 맞추어 보기에 바빴다. 서로 엇갈린 기억을 주장하며 내가 언제 그랬냐고 우기고, 네가 그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며 따지는 동안 여기저기 웃음이 터져 나왔고,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우리는 합창 동아리였고 그에 걸맞게 목청이 여전히 우렁찼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불협화음이었다.
‘잘 놀기’는 그냥 모여서는 의미가 없다. 제대로 놀거리가 필요했다. 다행히 동아리 모임은 체계적으로 여러 놀이 문화를 실천해 나갔다. 맛집 투어, 모교 투어, 롤링 페이퍼 쓰기, 모임 이름 공모, 사행시 대회 등.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고개를 저을 수도 있으련만, 우리는 모두 순수하게 그것들을 즐겼다. 그러다 유치함의 정점을 찍는 이벤트가 있었다. 내가 계획한 일이었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보다 보면 젊은이들이 다양한 ‘포즈’로 단체 사진을 찍은 걸 쉽게 볼 수 있다. 늘 같은 자세로만 찍는 ‘중년 사람’의 사진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그게 부러웠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사진 찍기 놀이에 집중해 즐기는 모습. 그런 건 젊은이의 특권이라는 생각을 깨고 싶었다. 나는 동아리 단체 카톡방에 살포시 그 사진들을 올리고 나도 해보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그리하여, 우리 오십 대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종로 일대에서 재미있는(괴상한?) 사진을 찍게 되었다. 모두 점프하는 사진, 하늘의 한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진, 그리고 진짜 내가 해보고 싶었던, 지구 용사 포즈! 광화문 거리에서 우리는 자랑스러운 지구 용사가 되어, 지구는 우리가 지키고 말겠다는 진지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지는 듯 불끈 쥔 주먹을 가슴에 대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십 년 후. 서울 모 식당 룸에 몇몇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모임 중이다. 그들은 2024년 시내 한복판에서 내적 부끄러움을 억누르며 이상야릇한 사진을 찍었던 그때를 이야기한다. “너 때문에 찍었잖니?” “그 사진을 네 직장에 투척하지 않은 걸 고맙게 생각해라. 그랬다면 분명 넌 왕따가 되었을 거다.” “네 포즈가 제일 이상했다고.” 왁자지껄 떠들며 웃고 있다. 그 안에 웃상 할머니인 내가 있다.
『한국산문』 2025년 1월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