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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실아, 엄마를 부탁해    
글쓴이 : 신문주    17-03-23 12:49    조회 : 6,202

몽실아, 엄마를 부탁해

신문주

 

   감정이 풍부하고 다정다감한 몽실이는 성격이 다소 엄하신 어머니와 환상의 단짝이다. 서로를 보완해 가며 사이좋게 의지하고 산다. “맛있는 것 줄게, 그릇 가져 와” 하시면 금새 말귀를 알아듣고 쏜살같이 자그마한 플라스틱 용기를 입에 물고 달려온다. 몽실이는 삶은 밤과 고구마, 귤과 사과를 특히 좋아한다. 이가 좋지 않아서 사과와 귤은 씹어 줘야 먹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만족스러우면 등을 방바닥에 대고 네 발을 공중에 올리고서 트위스트를 춘다. 어머니는 그런 모습을 보고 “예쁜 짓 하네” 하신다. 어머니가 “예쁜 짓”하고 말만 하시면, 몽실이는 곧 예쁜 짓을 한다. “엄마와 뽀뽀하자” 하시면 쫓아 달려 와 어머니 입에 자기 입을 맞춘다. 어머니가 취침하실 때가 되면, 몽실이도 잠잘 차비를 한다. 어머니가 덮고 계신 이불을 들치고 들어 와 어머니 팔을 베고 잠이 든다. 그러다 더우면 이불 밖으로 빠져 나와 이불 위에 올라와서 웅크린 채 잠을 청한다.

   강아지 심리학자들은 강아지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몽실이는 사람의 감정 상태를 예민하게 감지한다. 어머니가 아프시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몽실이는 끙끙 소리를 내면서 근심어린 눈빛으로 어머니를 빤히 쳐다본다. 어머니는 몽실이가 맛있는 것을 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기가 죽어 있어서 측은하다고 하신다. “내가 죽으면 얘를 누가 돌보지? 이런 애를 어디다 보내겠니?” 하신다.

   오년 전 어머니가 기르시던 몰티즈종 메리가 병으로 죽었다. 슬픔으로 마음 둘 곳 몰라 하시던 어머니를 위해 남동생과 내가 시츄 아기 강아지를 구해 드렸다. 이 강아지를 보시자마자 어머니는 대뜸 “몽실”이라고 명명하셨다. 그런데 우리 몽실이는 텔레비전 드라마 “몽실 언니”에 나오는 억센 몽실 언니와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다. 애교 만점인 귀여운 막내로 온갖 재롱을 다 떨며 가족들을 기쁘게 해 주고 있다. 아버지께서 지난 2015년 어버이날에 갑자기 돌아가신 후 몽실이는 어머니의 둘도 없는 말벗이자 도반(道伴)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작고 순한 몽실이가 동물의 제왕인 사자와 인연이 있다. 작은 씨앗 한 알 속에 큰 나무가 들어 있고, 우리 각자 안에 우주가 들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시츄라는 이름은 “사자견(獅子犬)”의 웨이드식 로마자 표기인 “시츄코우 (shih-tzu-kou)”에서 나왔다고 한다. 시츄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두산백과』에 보면 시츄는 17세기 중엽 티베트의 라사압소종과 중국의 페키니즈종을 교배시켜 만들었다는 주장이 대세이다. 티베트에서 라사압소종은 득도하지 못한 라마승이 환생하였다고 믿었기에 신성시되었다. 달라이 라마들이 라사압소종을 중국 황제에게 진상하였는데 이들과 함께 변종인 시츄종도 궁중에서 사랑을 받았다. 털을 깍지 않은 시츄의 원래 모습은 등뼈 양쪽으로 털이 길게 자라 땅바닥에 치렁치렁 끌리고 얼굴의 털은 사자의 갈기털처럼 보인다. 반려동물로 사랑을 받는 요즘은 털을 깍고 미용을 해서 우리가 보는 귀엽고 앙증맞은 시츄의 이미지가 탄생하였다. 그렇긴 해도 숲속의 사자와 우리 집 예쁜이 몽실이를 비교하는 일은 자다가도 웃을 일이다.

   몽실이는 어느 모로 보나 전형적인 시츄종이다. 우선, 크기가 자그맣다. 아기였을 때보다 커졌지만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소형견 나이로 5년이면 사람 나이로는 서른여섯 살이라고 한다. 평균 수명이 10~16년이라고 하니 벌써 삼분의 일을 산 셈이다. 몸무게는 4 킬로그램이고 키는 25 센티미터 정도이다. 몸에 옅은 밤색 반점이 있고, 머리 정수리와 꼬리 끝에 흰색 부분이 많아 고귀한 품종임을 드러낸다. 두 눈이 동그랗고 사람의 눈길과 마주칠 때 다정한 표정으로 오랫동안 응시한다. 동물학자들은 애완견이 사람과 눈을 오래 마주칠 수 있기 때문에 감정 교류가 가능해지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한다. 온화하고 붙임성이 좋아서 누가 와도 잘 따르며 꼬리를 흔들고 반기고 사람의 다리 위로 기어오른다. 하지만 겁이 많고 외로움을 많이 타서 혼자 집에 있다가 가족들이 돌아오면 기다림과 외로움의 강도만큼 열렬하게 가족들을 반긴다.

   맛있는 것만 있으면 만사태평인 몽실이에게도 어두운 역사가 있다. 2년 전의 일이다. 어머니가 문을 열어 놓고 이웃과 대화하시는 동안 몽실이는 문틈으로 슬그머니 빠져 나갔다. 무심코 문을 닫으신 어머니는 나중에야 몽실이가 없어진 것을 알아채셨다. 집 나간 작은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성경 속 아버지처럼, 어머니는 식사도 못 하시고 자나깨나 몽실이 생각뿐이셨다. 그래서 내가 몽실이를 찾는 방을 붙이기로 했다. 동네 일대에 붙이려고 전단을 50장이나 만들었다. 그런데 전단을 붙이려고 집 근처 전봇대를 올려다 본 순간, 깜짝 놀랐다. 몽실이 사진이 눈에 확 들어 왔기 때문이다. 어느 선량한 이웃이 “개 주인을 찾습니다” 라며 사진 속의 강아지를 보관하고 있으니 연락을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단 한 장도 붙이지 않았는데, 가출 일주일 만에 몽실이는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왔다. 몽실이를 찾아 준 천사 아주머니는 새벽에 강아지 산책을 시키러 나갔다가 몽실이가 동네 뒷산 밑 주차장 풀숲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아주머니께 고맙다며 소액의 사례를 하셨다.

   그런데, 얼마 후 어머니가 몽실이를 목욕 시킬 때 털 속에 감춰 있던 상처들을 찾아내셨다. 깊이 파인 상처에는 피가 맺혀 있었다. 어디서 물렸을까? 큰 개가 물었을까? 천사 아주머니 집에 강아지가 세 마리나 있다고 했는데, 혹시 그들에게 물렸나? 아직도 수수께끼다. 하지만, 가출 이후 몽실이의 무서움이 더 심해진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자기보다 몸체가 작은 강아지나 길고양이를 봐도 도망가기 바쁘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대로 몽실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가 보다.

   두려움이 많은 몽실이 만큼이나 나도 유난히 두려움이 많다. 심리학에서 개인이 기억하는 처음 감정이 그 사람의 성격 형성에 중요하다고 한다. 내가 여섯 살 쯤에 아버지와 어떤 낯선 동네에 갔다. 아버지는 나더러 기다리라고 하면서 가셨고 나는 낯선 골목에 혼자 서 있었다. 그 동네 아이들이 신기한 듯 나를 빙 둘러쌌는데, 나는 무척 두렵고 무서웠다. 이 두려움의 기억이 훌쩍 커버린 지금의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평소 상상력이 부족하지만, 근심 걱정 두려움에 있어서는 상상력의 대가이다. “혹시 어머니가 밤새 돌아가셨으면 어떻게 하나?” “혼자 나가셨다가 넘어지시면 어떻게 하나?”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 하시면 어떻게 하나?” “나쁜 사람들에게 납치를 당하시면 어떻게 하나?” 등등,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써서 내 안의 불안과 두려움을 선제공격하려는 내 나름대로의 방어기제가 아닐까 싶다.

   나는 대학의 시간 강사이다. 2007년 5월에 미국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신촌에 있는 모교 영문과에서 올해로 십 년째 가르치고 있다. 학교 앞의 작은 원룸도 십년 째 내 보금자리이다. 시간 강사는 비정규직이라 고용이 불안정하고 월수입도 적지만, 내 전공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고 늘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어서 좋다. 방학이면 수입은 없어도 자유 시간이 생긴다. 하지만 학기 중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에 주말 마다 어머니를 찾아뵙는 일이 쉽지 않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등 학생들 과제와 시험지가 몰리는 때가 되면 주말에도 짬을 낼 수 없다. 내가 어머니를 뵈러 갈 수 없을 때, 곁에서 어머니를 지켜주는 존재가 바로 몽실이다. 그런 몽실이가 늘 고맙다.

   그런데 지난 해 가을 내가 어머니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작년 9월 중순에 갑자기 심장 수술을 받게 되었고 퇴원 후 혼자 생활할 수가 없었다. 지난 가을 학기 개강을 사흘 앞두고 일어난 일이다. 나는 처음에 사태의 심각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일단 학기를 시작한 후 중간고사나 겨울 방학 때 수술을 받을까 했다. 하지만 수술이 시급하다는 의사 선생님들의 성화에 내 평생 처음으로 입원과 수술을 했다. 이번 수술 덕분에 심장 판막이 사람 몸에 네 개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 선생님은 내 심장에서 판막 두 개를 기계 판막으로 교체했고 판막 한 개는 성형을 했다. 병원에서 보름 넘게 지내다가 퇴원 후 어머니 집으로 왔다. 초기에는 통증으로 기동이 불편했지만, 이제 다섯 달째가 되니 몰라볼 만큼 상태가 좋아졌다.

   이제 곧 신촌에 있는 내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반 년 가까이 비워 뒀던 내 작은 방으로 돌아간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나는 것에 마음이 아프지만,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에 희망이 푸르다. 3월이면 풋풋한 새내기들과 방학을 마친 재학생들이 학교 교정을 활보할 것이고, 나는 그들을 강의실에서 만날 것이다. 생사를 넘나든 경험 덕분에 봄 학기에 만날 후배 학생들이 더 소중하다. 어머니 병세가 더 악화되면 어머니 곁에서 다시 살 것이다. 그 때까지 어머니와 나는 주말마다 견우직녀가 될 것이고 몽실이는 우리의 오작교가 될 것이다. 몽실아, 엄마를 부탁해!

 

 



이영옥   17-03-24 19:01
    
신문주 선생님 반갑습니다~^^
따뜻한 내용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선생님 몸은 건강해지셨는지요?

선생님도 어머님도
곁을 지켜드리는 몽실이도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다음 작품을 기대합니다~~^^
신문주   17-08-19 12:15
    
이영옥 선생님,

따뜻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글을 올리니 좋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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