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산 정상에서 기념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생수 한 통을 다 마시고 하산할 준비를 했다. 소주봉을 거쳐 소주고개 방향으로 갈려고 했으나 길이 엇갈리고 헷갈리는 바람에 임도를 따라 내려가게 됐다.
계속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혼자 걸어가는 발걸음은 여유로우면서 가벼웠다. 새로운 폭포를 만나면 잠시 폭포에 대한 안내문을 읽고 명상에 잠기었다. ‘폭포와 나’. 길이 꺾어질 때마다 말라버린 계곡과 교차하는 구멍 다리를 건너는 횟수는 6~7번이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돼서야 한 가구와 작은 연못이 보였다. 그리고 시끄럽게 짖는 개 한 마리가 목줄에 묶인 채 흥분하고 있었다. 그래 봤자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존재이다.
깎여진 산, 쓰러진 나무를 보면 아무래도 뭔가를 조성하지 않나 싶다.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삼륜 오토바이 4대 정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갈림길에서 내가 왔던 길과 정반대 쪽으로 갔다. 더 들어가면 서바이벌 게임장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계속 갈수록 집 몇 채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다. 서둘러 빠르게 걷다가 길과 냇물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멈췄다. 차량이 다녀도 별 이상이 없는데, 사람이 다니려면 뭔가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징검다리를 만들거나 아니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서 발을 물에 담그고 갈 수밖에 없다. 다행히 교차하는 부분에 안전한 바윗돌 몇 덩이가 있다. 어떻게든 밟고 아슬아슬하게 건넜다. 발을 약간 허튼 데는 바람에 양말 한 짝이 살짝 젖었다.
몇 분 더 걸어간 끝에 전형적인 농촌이 보인다. 배추밭도 보이는데, 배추가 시들면서 썩어버린 지 이미 오래됐다. 배추 농사를 어떻게 잘못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까운 배추를 어떻게 관리하고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딱한 느낌만 들었다.
‘가정3리 새마을회관’이라는 문패를 봤다. 여기서 거주하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당이다. 그런데 문 위에 유리창을 잠깐 살펴보니까 조용하면서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아무도 안 계신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보금자리에 머무를 시간이 따로 정해지는 것 같다.
여기서부터 2차선으로 포장된 도로와 횡단보도, 오른쪽 커브 표지판이 나온다. 갓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다가 5번 시내버스가 나를 반겼다. 이 버스는 후평동에서 방금 지나온 가정3리까지 다닌다.
버스를 지나친 후, 가정3리 정류장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노선과 시간표와 친절하게 제공하고 있다. 그 옆에는 유일하게 네모난 유리 거울까지 있다. 머리를 단장하고 얼굴에 잡티를 제거한 후, 잔뜩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깨끗이 닦아내었다. 여기서 기다릴까 망설이다가 나중에 어딘가에서 만날 거라는 생각에 걸었다.
한화제약 입구(방하리 입구) 정류장에서 일단 멈췄다. 스마트폰으로 5번 버스가 과연 어디 있을까 확인했다. 가정리 종점에 있는데, 초기화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거기서 출발하는 시각에 맞춰서 운행하는 듯싶다. 기사님께서 차를 세우시고 잠깐 단잠을 주무시거나 아니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끽연을 하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 동안 가벼운 몸을 풀고, 팔굽혀펴기 시늉까지 했다.
드디어 5번 버스가 들어오자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댔는데, 요금과 잔액이 나오는 동시에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탔는데 아무도 없었다. 내가 첫 번째 승객이었다.
창가에 기대면서 안내방송을 들었다. 정류장마다 기다리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의암 류인석 선생 유적지에도 없었다. 박암리, 관천리 방면으로 안 가고 그냥 직진했다. 가정리 보건진료소, 강원 학생 수련원을 지나면 홍천강이 보인다. 잔잔하게 흐르는 모습을 보면 서투른 낚시를 하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후동리가 아닌 추곡리, 수동리 방면으로 거쳤는데 역시 승차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넘고 한참 달리다가 창촌 삼거리부터 정차하여 승객 몇 명이 올라탔다. 쌩쌩 달리다가 강촌역에서 하차하고 요 근처 음식점에서 막국수로 요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