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초 아프리카 짐바브웨 황게 국립공원으로부터 또 하나의 비극적 뉴스가 들려왔다. 두 해 전 미국인 치과 의사에 의해 희생된 사자 '세실', 그 수사자의 아들 ‘싼다’가 또 다른 전리품 사냥꾼의 총부리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사실 세실의 얘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상아를 얻기 위한 코끼리 사냥이나 식탁에 샥스핀을 올리기 위한 잔인한 상어 포획 등 야생동물에 대한 인간들의 잔학행위가 전 세계 각지에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살아있는 동물들을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국내에 자생하지 않는 희귀한 야생동물을 정상적인 절차 없이 불법적으로 국내로 밀반입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여행자들이 사막여우 타란툴라여우원숭이 앵무새 등을 외국으로부터 여행용 가방 등에 숨겨서 들여오려다 세관에 적발되었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타깃이 되는 동물들은 보기에 모습이 깜찍하고 예쁘고 또 타란툴라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털 무늬를 자랑하기도 한다. 같은 계통의 다른 종(種)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소위 비주얼과 어떤 특별함을 가졌다는 얘기다.
이들은 모두 아프리카 사막이나 남미 아마존의 밀림 등 먼 외국 다른 대륙에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이다. 특히 사막여우는 호랑이 고릴라 밍크고래 따오기 등과 함께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즉 CITES 협약에 해당하는 동물로 국제적 거래가 통제되는 보호대상 야생동물이다.
* CITES: 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a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auna and Flora라는 긴
이름의 이 협약은 ‘워싱턴 협약’으로도 불리며 1975년 발효되었다.
CITES 협약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 오천 여종과 식물 이만 팔천 여종이 보호 수위에 따라 부속서 I, II, III으로 분류되어 등재되어 있다. 특히 이 협약 부속서 I에 해당하는 것은 상업목적의 국제거래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있다. 학술연구 목적의 거래도 수출국과 수입국 정부의 수출입승인을 필요로 하는 등 불법거래 방지를 위한 통제시스템을 두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아프리카 북부 사막지대에서 주로 서식하는 사막여우 이십 여 마리를 수단으로부터 밀수하려다 세관에 적발된 사례가 있었다. 사막여우는 CITES 협약 해당 동물로 국내 생태계 교란 우려 등의 이유로 학술연구용으로만 일부 수입을 허용할 뿐 애완용으로는 원천적으로 수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애완동물 판매업자는 사막여우를 비교적 수입이 자유로운 품종인 ‘흰 꼬리 모래여우’로 위장하여 국내로 반입하려다 적발되었다고 한다. 그 업자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개설해 놓고 국내에는 서식하지 않는 각종 외국산 야생동물들을 들여와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려동물이나 애완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앵무새 거미 도마뱀 거북 원숭이 등 먼 이국땅에서나 서식하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의 수난도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살아 있는 동물이나 야생조류의 수정란 등을 여행용 가방 등에 숨겨서 몰래 국내로 반입하려다가 공항에서 적발되는 사례도 종종 일어나고 있다.
밀수되는 동물들은 세관의 적발을 피하기 위해 움직이거나 소리를 낼 수 없도록 결박당하여 포장되어 오거나 이동 거리와 시간이 멀기 때문에 반입도중에 폐사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일단 국내로 들여오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밀수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샥스핀 수프를 목으로 넘기고 있을 때 상어들은 지느러미가 잘려나간채 버둥거리며 바다로 내버려질 것이다. 장식장 한켠에 놓인 순백의 상아를 보며 누군가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아프리카 어딘가에서는 죽임을 당해 쓰러져 피투성이가 된 코끼리가 어금니를 뽑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실과 싼다의 죽음은 인간의 이기심에 더하여 헛된 과시욕과 만용이 불러온 비극이다. 쓸 만한 나무가 먼저 베이고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는 옛 속담은 비단 식물이나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도 피해갈 수 없는 명제인가 보다. 자연 속에서 야생의 삶을 누려야 할 예쁘고 깜직하고 귀엽고 위엄 있는 야생 동물들이 인간들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인해 좁은 우리 속에 갇혀 원시의 자유로운 삶을 박탈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