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 장미 나무 -
어릴 적 살던 광화문 집 뒷마당에는 제법 큰 장미나무가 있었다. 아주 연한 분홍빛의 장미꽃을 피우는 나무다. 이웃집 담장에서 오빠가 가시에 손을 찔려가며 꺾어온 장미 가지 하나를 고모가 뒷마당에 심어 용케도 뿌리를 내리게 한 것이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고모의 정성으로 한 개의 장미 가지는 마침내 커다란 장미나무로 자라났다.
거의 흰 색에 가까운 연하고 고운 분홍빛의 장미꽃을 그 때 이후로 어느 화원에서도 본 적이 없다. 여름이 되면 얼마나 많은 연분홍빛의 장미꽃을 피워냈는지 모른다. 뒷마당에 이런 저런 꽃들이 있었지만 뒷마당 한 가운데 피어있는 그 장미꽃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장미꽃이 피어있는 우리 집에 손님이 오면 고모는 꽃구경을 시켜주고 그 장미꽃을 탐내는 사람에게는 몇 개의 꽃가지를 꺾어 신문지에 싸서 보내곤 하셨다. 장미꽃을 꺾는 고모의 얼굴은 장미꽃과 어울리는 분홍빛이 도는 흰빛이었다. 얼굴이 장미꽃처럼 고운데다 조카들에게 예쁜 한복을 지어 입히기도 했던 고모였다.
광화문에서 가오리 집으로 이사 오면서 앞마당 한 가운데 옮겨 심은 장미나무는 살아서 잎이 싱싱했지만 이사 온 뒤론 몇 해가 지나도록 다시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고모는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도 더 이상 꽃을 피우지 않는 장미나무를 바라보며 몹시 안타까워하셨다. 우리 가족은 자식도 없이 홀로 외롭게 사시는 고모를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고모는 장미나무를, 가족들은 고모를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