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옅은 황사가 불어 왔지만 절기상 더 미룰 수가 없어 막내딸과 함께 동네 뒷산에 있는 텃밭으로 갔습니다.
둘 다 허름한 옷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마스크까지 하고 나가니 동네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산 입구 가게에서 퇴비 세포를 사서 집사람이 시장 볼 때 쓰는 조그만 손수레를 이용하여 밭으로 옮겼습니다
옮기는 도중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퇴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손수레가 주저앉기도 하였지만 한 참을 씨름한 끝에 겨우 손수레를 고쳐 다시 밭 입구까지 옮겼습니다
입구에서 밭 한가운데로 어깨에 퇴비 한 포씩을 둘러메고 옮기는데 막내딸도 한 포를 잡아 끌면서 낑낑대며 옮겨 놓습니다
둘이서 잡초를 뽑고 땅을 뒤집고 거름을 뿌립니다. 지렁이가 많이 나옵니다. 삽으로 땅을 파니 지렁이 허리가 짤려져 흙 위에서 바둥거립니다. 그때마다 막내딸은 깜짝깜짝 놀라 소리를 지릅니다
땅 속에서 지렁이가 하는 일과 흙의 변화에 관해서 얘기를 해 줍니다. 그리고 유기농에 관해서도 얘기를 해 줍니다. 좋은 일을 하는 지렁이이니 흙으로 다시 잘 덮어 줍니다
딸도 열심히 풀을 뽑고 , 거름을 뿌리고 삽으로 흙을 뒤집었습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다 된 밭을 보고 있더니 밭 가장자리 한 부분을 자기가 쓰겠다고 달라고 합니다
자기는 채소 대신 꽃과 방울토마토를 심겠다고요
어차피 채소 키워서 다 먹지도 못하고, 남는 채소는 이웃집에 나눠 주는 게 또 일이라 그러라고 합니다
여기는 막내 밭, 여기는 고추, 여기는 열무, 치커리.....조그맣게 몇 구역으로 나눈 다음, 이랑을 만들고 고르게 손질을 하고 나니 드디어 씨 뿌릴 준비가 끝났습니다
막내는 봉숭아랑 맨드라미를 심겠다고 합니다. 또 치커리랑 방울토마토도 심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맘이 언제 또 변할지 모릅니다. 둘이 같이 인근에 있는 구멍가게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씨앗도 삽니다
이 구멍가게에는 꼬부랑 할머니가 해마다 봄이 되면 각종 채소 모종과 씨앗들을 팔고 있습니다
상추, 열무, 내가 좋아하는 샐러리, 막내가 키워 보고 싶다는 치커리 두 종류, 청경채, 그리고 약속대로 막내의 구역에 뿌릴 봉선화와 채송화 씨를 샀습니다.
오늘 고추랑 방울토마토 모종은 없습니다
막내 구역에는 막내가 씨를 뿌리고 흙을 덮었습니다
‘여기는 봉숭아 다섯 포기, 또 여기는 맨드라미 세 포기’ 하면서 정성 들여 심더군요
저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지요
나중엔 재미있다면서 내가 다른 채소 씨 뿌릴 때도 한 참을 도와주었습니다
아니 아예 분담이었으니까요.
내가 씨 뿌릴 자리를 길게 막대기로 파 놓으면 막내가 씨를 뿌리고 흙을 덮고 이랑 안쪽 좀 먼 곳은 내가 씨를 뿌리고 덮곤 하였습니다
엄지와 검지 끝으로 씨를 살살 비비면서 한 군데에 너무 많이 치우치지 않게 뿌린 다음 손으로 흙을 살짝 살짝 덮어 줍니다.
특히 상추와 치커리, 샐러리 등은 씨앗이 너무 작아 한쪽으로 몰리지 않게 잘 비비면서 뿌려야 합니다
앙징맞은 고사리 손으로 씨를 뿌리는 모습이 농부의 딸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온 마음을 다하여 정성 들여 심는 막내의 심정을 안다면 씨앗들도 잘 자라 줄 것이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물을 흠뻑 뿌려주고 새들이 주워 먹지 못하도록 검은 망사 비닐을 덮어 준 다음, 제발 잘 자라 주기를 바라면서 둘이서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막내딸은 싹이 나올 때, 어떤 모습으로 나올 것인지 자꾸 물어보지만 봉숭아나 맨드라미 싹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다음 주에는 고추 열 포기랑 방울토마토 두 포기를 심을 작정입니다
막내딸의 입은 쉴 틈이 없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이창원 씀
몇 년 전 봄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