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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와의 약속    
글쓴이 : 이창원    14-01-10 13:03    조회 : 9,160
 손자와의 약속
 
 
 지난 주말, 초등 1학년인 손자랑 또 목욕탕엘 갔다. 사위는 더위를 싫어해서 대중목욕탕은 딱 질색인지라 큰딸도 아예 부탁할 생각을 안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릴 때야 제 엄마 따라다니면 되었지만, 점점 자라 여탕에도 갈 수가 없는 형편이라 몇 년 전부터 큰딸의 주문(?)을 받아 할 수 없이 내가 데리고 다닌다.
지지난 주에는 올겨울 채비로 목욕탕 표를 아예 30장 구매해 두기까지 하였다
 
 목욕탕에 가면 우선 딸이 챙겨주는 목욕 소쿠리를 들고 가야 한다. 남탕은 이런 게 필요 없다고 해도 굳이 들고 가라는 데는 이길 수가 없다. 머리 샴푸, 몸 샴푸, 때 수건 두 종류, 마실 것, 귤 등을 담은 소쿠리를 들고 가야 한다. 목욕 끝나고 나면 손자가 먹을 간식도 추가된다.
 
나란히 샤워기에 몸을 씻고 따뜻한 탕에 들어간다. 손자도 뜨거운 물을 싫어해서 한 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게 하려면 온갖 말로 다 꼬드겨야 한다.
 
 유치원 때는 목욕탕 바가지를 거꾸로 엎어 물속 깊이 담근 뒤 홱 뒤집으면서 물방귀 뀌는 장난을 하면 재미있다고 깔깔 웃으며 같이 장난치고 놀았는데 이제는 그것도 시시해서 잘 하지 않는다.
뜨겁지 않다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를 않다가 발목부터 천천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품으로 들어와 안겨 있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금방 장난질이다
 
 그러나 따뜻한 물에는 잠시고 곧장 냉탕으로 가서 온갖 물장구를 다 치는데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도록 놀까 봐 따라가서 지키며 같이 놀아 줘야 한다.
 우린 주로 여러 종류의 수영을 하면서 노는데 그 중에서 개구리헤엄 흉내를 제일 잘 내며 놀곤 한다.
 지난주에는 누가 물속에서 오래 있나 시합도 했다. 귀와 코를 막고 동시에 잠수했는데 가만 낌새를 느껴보니 아직 내가 물속에 있을 때 숨을 못 참고 물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얼른 물속으로 잠수하곤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나오니 녀석이 이겼다고 자랑하며 떠들기에 옆 사람에게 심판을 부탁하며 다시 하자고 했다.
옆 사람은 우리가 노는 모습을 보고 싱긋이 웃더니 ‘할아버지를 속이면 어떡해?’ 한마디에 그만 꼬리를 내려 버린다.
 
 그러다 우람한 체격의 어른들이 냉탕으로 들어와 눈총을 주면 얼른 내 무릎 위에 올라앉아 옆 사람들이 나갈 때까지 꼼짝을 않고 손만 꼼지락거린다. 차가운 물속에서 따뜻한 몸을 꼭 안고 있으면 나도 따뜻해진다.
 
 어느 정도 놀다가 내가 먼저 씻고 손자를 불러 전신에 비누칠을 하여 몸 구석구석을 닦아 주고 머리도 감겨 주었다. 그리고 내가 씻지 못한 내 등을 때수건으로 밀어 달라고 하니 녀석도 까불어 가며 등을 밀어주는데 벌써 손에 힘이 들어가 있어 제법 시원하고 좋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면 병중이라 기운 없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몇 번 목욕탕에 간 적이 있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불리신 후 내가 때밀이처럼 온몸을 차분하게 밀어드리면 흐뭇하게 받아들이곤 하셨고 나도 아버지의 마른 몸을 보면서 부디 오래 사시라고 기도하곤 했었다
 
손자에게 물었다.
“너 좀 더 크면 할아버지 등 자주 밀어줄래?”
“어! 할아버지가 밀면 되잖아?”
“아니, 할아버지가 늙어 기운 없을 때 말이야. 그땐 너는 대학생이나 아빠처럼 어른이 되어 있을 테고 할아버진 늙어서 기운이 없을 테니 지금은 내가 널 밀어주지만, 나중엔 네가 할아버지 밀어줘야 해. 알았지? 자! 약속~.”
“어!! 알았어. 약속~”
 
목욕을 끝내고 체중을 제어 보니 벌써 초등 1학년 몸무게는 훨씬 넘은 것 같다. 내년 봄에는 꼭 자전거 운동을 열심히 시켜 살을 좀 빼줘야겠다.

정혜선   14-01-10 20:24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잉어 이야기에서 막내 따님이 초등3학년이라고 하셨는데  그만한 손자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어쨌거나 대중탕을 싫어하는 사위 덕에 즐거운 시간 누리시는 듯합니다.
손자가 크면 아빠보다 할아버지 생각을 더많이 생각할 것 같아요.
제목에 손자의 이름 끝자를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민이와의 약속,  준이와의 약속...
독자의 호기심도 생기고 정감도 있고요.^^
     
이창원   14-01-11 23:16
    
손자는 지금 초등 1학년,  늦둥이 막내딸은 중2입니다^^

옛날에 쓴 글과 시차가 좀 있네요^^

손자이름이 은성이거든요....은성이와의 약속......^^

호기심과 긍금증이 동시에 생기는군요^^

감사합니다^^
임정화   14-01-13 10:18
    
안녕하세요, 이창원 선생님.
소쿠리라는 단어를 보고는 어머? 했습니다. 요새는 거의 다 플라스틱 바구니를 쓰고 있어서 대나 싸리 등으로 엮은 그 옛날 소쿠리를 잊고 있었던가 봐요. 아주 정겨웠습니다.
위에 정혜선 선생님과의 댓글 중,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는 글들이 다른 시간대를 배경으로 할 때 독자들이 혼란을 겪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글 아래에 창작일자를 명시해주거나 혹은 기억할 만한 사건을 다룰 경우에는 아예 글 속에 일시를 숫자로 확실히 써넣기도 한답니다. 참고하시고요.
정겨운 할아버지와 손자의 일상이 그려지는 글인데 후반부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을 떠올리시며 자칫 쓸쓸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손자와 약속하는 대화로 다뤄 훈훈하게 잘 마무리하셨습니다.
소소한 일상사를 자주 글감으로 쓰시네요. 잔잔한 웃음을 제조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이창원   14-01-13 22:53
    
감사합니다^^
다음엔 혼동되지 않도록 날짜를 넣어 보겠습니다
문경자   14-01-15 22:59
    
손자와 약속은 새끼손가락 걸고 하셨는지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안에서 손자와의 재미있는 시간
선생님 행복한 모습이 상상됩니다.
손주녀석이 잊지않고 기억을 잘 해야 할텐데~~
그대가서 몰라요! 하면 어떡해요.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창원   14-01-31 20:01
    
예^^ 선생님^^
새끼손가락 걸고....도장찍고 복사까지 했었답니다.
앞으로 계속 데리고 다니면서 세뇌교육 시켜야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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