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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등의 영예 나누기(수정)    
글쓴이 : 이성열    14-02-06 03:04    조회 : 6,420
1등의 영예 나누기/이성열
 
  나는 흔히 말하는 1등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서 청년기를 한국에 살면서 단 한번도 1등을 해 본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 흔한 운동회에서 친구들은 하다못해 100m 뜀박질이라도 잘해서 일등으로 두툼한 공책도 타오곤 했어도 체력이 약한 나는 늘 꼴찌였다. 학업성적에서도 줄곳 2-3등은 해본 적이 있어도 1등을 해 본 기억은 없다.
  중학교 때도 일제히 치룬 영어고사에서 무슨 상을 타게 되었다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며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았지만, 그것도 1등이 아닌 2등에 머문 일제고사 결과였다. 아직도 그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아마도 시골구석에서 서울로 전학해 온 후 처음으로 등수에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번번히 1류 학교 진학은 실패했고 2차를 거쳐 2류 학교에 머물렀으며, 마음에 두었던 1류 직장들은 모두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물론 굳이 핑계를 대자면 전쟁으로 조실부모한 내 환경이 나를 받쳐주지 않아서였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도 설득력이 없는 것이 눈여겨보면 나처럼 나쁜 역경에서도 우뚝 솟은 인재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나는 실패한 청춘을 한탄만 할 수 없어 그 돌파구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렇게 열등감으로 평생을 살아갈 바에야 아주 남을 덜 의식해도 되는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미국엘 와서 처음부터 밑바닥 인생을 감수하며 살아갈 각오를 가지고 일거리를 찾아 나섰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 곳에서 목수 보조 인력을 뽑는다기에 찾아갔다. 그랬더니 인터뷰에 나온 중년의 목수가 내 이력서를 훑어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내 경력이라면 목수보다 S회사로 가보는게 났겠다며 친절하게 그곳 주소까지 알려 주었다. S회사라면 미국 굴지의 기간산업 회사로서 그 역사만도 100년이 넘는 회사가 아닌가?
  일자리가 필요한 나는 용기를 내어 서둘러 그곳을 찾아 갔다. 인사 담당인 흑인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도도한 얼굴을 하고 앉아서는, “지금은 아무데도 빈자리가 없으므로 다음에 다시 와보라”고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할 수없이 나는 다시 목수를 찾아가서, “당신이 가보라고 해서 갔더니 지금 자리가 없다고 하더라, 그러니 이곳에서라도 일하게 해 달라” 고 졸랐다. 그랬더니 그는, “그런 회사에 빈자리가 없을 리가 없다, 다시 몇 번이고 가보라” 는 것이었다.
  할 일도 없고, 밑져야 본전이다 는 생각에 나는 다시 그 회사 인사부로 향했다. 다시 면접신청을 했더니 이번에는 중년의 백인 여자가 나를 맞아 주었다. 이력서를 보여주고 일자리를 찾는다고 했더니, 그녀는 이력서를 대강 훑어 본 다음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에 당신은 회사 입사를 위한 시험 볼 자격이 있어요. 내가 날짜와 시간을 적어 줄테니 그 때 와서 시험을 치르세요.” 하는 것이었다. 뜻밖의 대답에 나는 흥분한 나머지 무슨 시험을 어떻게 치르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단숨에 집으로 달려왔다.
  목수의 말이 맞았다. 말하자면 지난번 나를 맞아준 흑인 여자는 사람을 차별하여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근무에 태만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회사는 규모가 커서 늘 빈자리가 있게 마련이고, 시험을 거쳐 채워 넣을 신입사원을 대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이 지나 약속한 시험장에 도착해보니 벌써 커다란 방에는 40여명의 응시자들이 웅크리고 앉아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나도 시험지를 받아 빈자리에 앉았다. 영어와 수학시험이었다. 시험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몰랐고, 어떻게, 몇 명을 뽑는지 조차도 몰랐다. 이민 간 후 혹여 필요할지 몰라 영어 공부는 틈틈이 들여다보았지만, 수학은 그야말로 손 뗀지 오래였다. 처음에는 앞이 캄캄했다.
  이리저리 궁리 끝에 다행이 시험은 객관식 선다형이었으므로 답을 일일이 문제에 대입해서 찾아낼 수가 있었다. 반면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국인들은 초등 수학교육이 시원찮아서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 개념조차 생각하기 싫어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3시간을 보내고 나와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응시생들이 하나 둘씩 불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불려 들어간 사람들은 합격자가 아니라 불합격자였다.
  일차시험에서 끝까지 불려 들어가지 않고 남았던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4명이었고, 우리는 다시 2차 시험을 위해서 또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적성시험을 치뤘는데 그 과정을 다 거쳐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명, 바로 나였다.
  흔히 동서양의 문화의 차이는 정반대의 것들이 많은데, (예를 들면 우리의 전통 바지폭은 넓은 반면, 카우보이들의 바지폭은 좁다) 이들의 시험선발과정도 그 예외가 아니었다. 합격자들만 먼저 불러 알려주고 불합격자는 몰라라 하는 우리 문화와는 달리, 불합격자들을 제일 먼저 불러,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불합격이다. 다음에 또 보자’는 식의 양해를 구한 다음, 합격자에게는 맨 나중에야 알린다.
  이렇게 이방인인 나는 미국주민 40 여명중에 기대하지도 않은 일등을 한 것이다. 원체 기대 밖이라 나도 믿지 못했고, 인사담당조차도 믿지 못한 결과였다. 말(영어)조차도 더듬거리며 잘 못하는 내가 합격이 되니 그중 누군가는 나에게 시험을 다시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고국에서도 해보지 못한 1등을 미국에까지 와서 하게 되고 굴지의 회사의 취직까지 하게 되었으니 그 당시로선 신의 가호가 있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니라 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직업문제는 이민 초창기에 어렵지 않게 해결을 보았고 평생 직업으로 그 직장을 지난 30여년간 다니며 어렵지 않은 이민생활을 하게 되었다.
  물론 한 회사의 채용과정을 꼭 1,2위의 순서로 책정한다는 건 적합지 않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회사에선 자신들의 임용기준에 적합한 사람을 뽑았지 꼭 실력의 우열만을 가지고 기준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경쟁을 통하여 단 한 명만 채용되는 자리에 뽑히는 행운의 소유자가 된 건 바로 1등의 영예를 안은 어떠한 경쟁에서 이긴 것보다 더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영어로 시를 써서 이곳 지방문단에 응모하여 1등 했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한 때는 한국에서의 1등의 등단제도를 넘보던 나였기에, 그것이 하늘의 별따기였다는 것도 알았기에 나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허구 많은 미국인들 중에 내가 1등을 했다니!
  하지만 막상 시상식엘 가보니 1등을 한 사람이 나를 포함해서 15명이나 더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1등 수상자가 16명, 2등 수상자가 12명,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상금도 공평하게 조금씩 나눠주는 그런 시상식이었다.
  처음에는 혼자 1등을 하지 못한 게 섭섭하더니 자꾸 생각을 해보니까 이들의 방식이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은가? 기본 실력이 갖추어져 있다면 서로 방법이 다양하고 의견이 다를 뿐이지 우열의 차이는 그리 큰 게 아니지 않는가?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이들의 사고방식이었다. 그야말로 민주주의가 몸에 밴 사고일까? 아니면 합리주의가 몸에 밴 사고일까?
  경쟁의 치열함을 놓고 볼 때 한국의 신문사들이 해마다 펼치는 신춘문예를 따라갈 것이 없을 것이고, 글쓰기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치고 신문지상에 발표되는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나도 그 중에 하나였고 그 때마다 나를 의아하게 한 건, 어떻게 1만여 편이 넘는 응모작들 가운데 오직 한 편만을 당선작으로 뽑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시 중에서 좋은 시가 단 한편 뿐이겠는가? 한 편만이 다른 9천 9백여 편의 다른 시들보다 탁월하게 잘 쓰여질 수 있는가?
  이런 의구심은 아직도 내 심중에 남아 있다. 어떻게 1만여 편의 시들 중에서 잘 된 시가 2편 또는 3편도 아니고 단 1편뿐인가? 그래서 나는 1등에 꼭 한 사람만이 영예를 차지해야하는 고국의 경쟁 시스템보다 1등의 영예도 여럿이 나누어 갖는 미국의 방식이 더 합리적으로 생각되어 지게 되었다.

임정화   14-02-14 10:40
    
안녕하세요, 이성열 선생님.
새로 올라온 작품들이 많아 수정작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렸네요.^^;;
미스코리아 이야기를 빼고 선생님이 지방문단에서 시로 1등하신 이야기를 넣어서 자연스러운 구성으로 바꾸셨는데 주장이 한결 매끄러워졌습니다.
그런데 이건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인사담당인 여자를 만났는데', 그리고 '이번에는 지난번 여자가 아닌'으로만 쓰셔도 무리가 없는 부분에 굳이 흑인여자, 백인여자를 구분하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한국에서만 살아와서 그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오래 이민생활을 해오신 분들에겐 어떤 타당한 근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이렇듯 작은 이야기들 속에서 인종들간의 편협한 시각이 조금씩 쌓여가는 게 아닐까 라는 우려가 생겨 여쭈어 봅니다.
지난 작품보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가서 딱히 걸리는 곳이 없긴 합니다만, 굳이 단점을 찾아낸다면 문장이 약간 고어체로 딱딱한 면이 있습니다. 문어체를 주로 구사하셔서 그런 것 같은데 옆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구어체를 잘 섞어쓰시면 지금보다도 훨씬 부드럽고 친근한 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느낌이니 크게 마음에 담아두시지 않아도 되겠지만요.^^
다시 읽어도 1등에 대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한 영예와 더불어 비인간적으로 서열을 매기고 능력으로 각자의 자리를 정하는 이 사회의 관념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성열   14-02-15 04:25
    
임선생님은 대단히 성실하신가봐요. 이렇게 친절하게 작품들을 읽으시고 품평을 하시다니요.  인종적 차별엔 타당안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으론 선입관을 각자 지니고 있다고 하겠지요. 저의 경험으론 오히려 백인들보다 소수인종 간의 역차별도 꽤 존재한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쓴건 순전히 제 경험에 바탕을 둔 거 이상 아무 뜻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 문장이 딱딱한 건 알고 있는데 잘 고쳐지지가 않네요. 거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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