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아파트에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공중도덕심이 있다면 이웃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행위를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주택이라면 모를까 마당도 없는 아파트에서 사람이 동물과 함께 숙식을 하는 것도 비위생적으로 보였다.
그러던 내가 졸지에 반려동물과 동거하게 되었다. 딸이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때 치와와 한 마리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생활공간이 좁아지는 것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소변 냄새, 날리는 개털, 날카로운 소음 등은 참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디 보낼 데가 없을까?’ 하고 고민했지만 어느새 정이 들어 버렸다. 제법 영리하여 가족들의 심기를 헤아릴 줄 알았다.
어느 주말 아침, 치와와를 데리고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산책을 나갔다. 마침 학생들의 승마 체험을 위해 준비한 말 몇 마리가 운동장을 거닐고 있었다. 말을 처음 본 치와와는 혼비백산했다. 느슨하게 매었던 목 끈에서 빠져나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개가 도망쳐 숨을 만한 곳을 모조리 뒤지고 다녔지만 자취도 없었다.
‘요즘 치와와의 재롱에 푹 빠져 있는 아내의 원망을 어찌 감당할까?’
‘딸에게는 어떤 식으로 변명을 하여야 하나?’
‘유기견은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킨다고 하던데…’
온갖 걱정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사실을 알렸다. 순식간에 집에는 비상이 걸렸다. 아내는 깜짝 놀라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뛰쳐나왔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온 아파트 단지를 돌며 치와와의 이름인 ‘복덩이’를 외치고 다녔다. 딸은 늦잠을 자다 일어나 세수도 안 한 얼굴로 학교 주변을 헤맸다. 나는 자동차를 천천히 몰면서 아파트 주변 거리를 살폈다.
개를 잃어버린 지 한 나절이 되었다. 아파트 경비원이 “개를 잃어버린 지 하루가 지나면 찾기 어려우니 광고전단을 붙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다. 딸이 즉시 컴퓨터 작업을 하여 전단을 만들었다. 딸과 함께 구역을 나누어 주민들의 눈에 띄기 쉬운 곳부터 전단을 붙였다.
나는 내심 가족들이 보인 반응에 엄청 놀랐다. 마치 가족 한 사람을 잃어버린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지 않은가? 아내에게 지나가는 말로 “까짓 치와와 한 마리 더 사오면 되잖아.”라고 말했다가 “개가 모두 똑같은 줄 알아요?” 하고 쏘아붙이는 바람에 본전도 건지지 못했다. 내가 가출해도 가족들이 치와와만큼 정성 들여 찾을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경비초소 창문에 전단을 붙이고 있을 때 웬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혹시 개를 잃어버리셨나요? 우리 동 옥상 입구에 치와와 한 마리가 떨고 있어서 경비원에게 신고하러 왔어요.”
구원의 목소리였다. 아주머니와 함께 부리나케 그 아파트 옥상으로 달려갔다. 아주머니의 딸이 치와와를 지키고 있었다. ‘복덩이’였다. 잔뜩 경계하느라 움츠렸다가 나를 보더니 꼬리를 흔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복덩이’를 덥석 안아 들었다. 돌아오는 마음은 마치 개선장군 같았다.
‘복덩이’를 안고 집에 들어서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는 집 나갔던 자식이 돌아온 것 같은 심정인지 눈물까지 글썽였다. 딸은 ‘복덩이’에게 줄 특별 사료를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나는 미처 느끼지 못했었지만 ‘복덩이’는 어느새 어엿한 가족의 일원이 된 것이었다.
그 사건을 겪은 이후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그들은 대체 가능한 동물이 아니었다.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가족의 일원이었다. 사라지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찾아내어야 하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들 없이는 어느 누구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생텍쥐페리가 쓴《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왕자에게 말한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서로 친하게 돼. 그러면 나는 너에게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고 너는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반려동물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하나밖에 없는 한 식구, 한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