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한 편의 영화보다 뮤지컬이나 연극을 좋아했고, 대중가요보다 클래식이나 연주회를 좋아했다. 시각을 자극하는 액션영화보다는 가슴을 어루만지는 멜로를 좋아했고, 뜨거운 감성을 이끌어내는 영화를 좋아했다. 그녀는 과학적 서술이 되어 있는 논문보다는 소설을 좋아했고, 소설보다는 한 편의 시와 수필을 좋아했다. 그녀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내 글을 읽고 나에게 독려해 주었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좋아했고, 감정을 소모하기 보다는 시원한 액션과 추리를 다루길 원했다. 그녀가 좋아했던 것들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계였지만 그녀가 좋기에 나 역시 새로운 세계가 좋았다.
금요일 저녁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일주일에 단 하루, 금요일만은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 주길 바랐지만 실험을 하다 나온 내 모습은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지라 매일 보는 얼굴인데, 금요일이면 어떠하랴. 그녀의 말이 반복되다 시간이 흐르자 멈추었다. 우리의 다툼을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한 주간의 케케묵은 때를 벗어 버리고 세상의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금요일에 우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녀와의 술자리에서 나는 그녀에게 지금보다 더한 사랑을 요구했고, 그녀는 나에게 상처를 안겨주었다. 나는 화를 참지 못해 그녀에게 면박을 질렀다. 그 길로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보이지 않는 그녀를 생각하며 꺼지지 않는 휘황찬란한 도시를 거쳐 멈추지 않는 나무 몇 그루를 지나 그녀의 실험실에 도착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그치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더니, 나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졸려.”
달려가는 그녀를 쫓다 얼마 전에 다쳤던 허리가 아파왔다. 잠시 제자리에 서서 가방을 뒤져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6개월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필까 고민하느라 가방 깊숙이 모셔 놓았던 담배였다. 담배를 입에 물다 그 동안의 내 의지가 무너지는 것 같아 접어버린다. 내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나 보다. 한 참을 도망가는 그녀를 바라보다 놓아주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모습이 마침표가 되자 집어넣었던 담배 한 가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들고 있던 라이터의 부싯돌이 반짝 하는 순간 묘한 상실감과 함께 편안함이 다가온다. 깊게 한 모금 들이마시고 뱉는 순간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되며, 안하는 것이 하는 것이다.
그녀는 말했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거나 포기하는 거라고 했다. 자신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고 마음에 빚이 생기는 것이라 했다. 내가 말했다. 사람은 변할 수도 있다고 했다. 너를 만나면서 10년간 끊지 못했던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도 자신이 고치려고 노력만 하면 틀에 박힌 습관처럼 고정화되어 변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법륜 스님”의 “주례사” 책을 보면, 기대를 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아름다울 수 있고, 상대방에게 기대려는 마음만 버리면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너와 나의 관계는 이성관계가 아니라 단순한 인간관계일 뿐이라고 했다. 호의 동승과 같이 단순한 인간관계로, 사고가 나면 사실관계에 입각한 법률관계로 변질되는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둔 관계라고 했다. 우리는 그랬다. 같은 점도 많았을 텐데 다른 이야기를 했고, 다른 점도 좋았을 텐데 싫은 점만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별이라는 인생의 굴레를 맞아 각자의 세계에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게 사랑이라는데, 가슴이 잘 모르겠다고 하니 심장이 뛰는지 확인한 것과 같다. 그렇다면 멈추는 게 당연한 일이지.
그녀가 원했던 몇 가지가 있었다. 금요일에 최대한 차려입고 노는 것이 첫 번째라면, 토요일에는 집에만 있지 말자는 것이 두 번째였다. 세 번째는 무엇이든 강요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나는 금요일에 실험을 마치고 초췌한 모습으로 노는 것을 선호했고, 토요일에는 금요일의 후유증을 집에서 쉬면서 풀다 저녁 즈음이 되어 실험실로 출근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나는 그녀가 실험 스케줄로 밥을 먹지 못할 때면 도시락이나 빵을 배달해주었고, 그녀가 필요한 것이 있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해준 만큼 돌려받기를 원했다. 그녀가 포기했다고 하면 나는 변했던 것일까?
그녀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고, 나도 가던 방향대로 걸음을 재촉한다. 다시 피운 담배는 독하지만 위로가 되었고, 연기와 함께 그녀와의 추억도 한 장의 사진처럼 흘러가 분산되어 사라졌다. 나쁜 기억은 모두다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좋은 기억만이 내 가슴속에 남아 내 심장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남아 있는 그녀와의 발자취는 나와 함께해 마음속의 온전한 풍요를 가져다준다. 다른 길로 가는 것을 선택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착하고 아름답다. 혼자 걷는 길 역시 낭만적이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잔디밭 오솔길을 걷다보면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태양도, 내려갈지 올라갈지 고민하는 청설모 한 마리도 한 폭의 동양화가 되어 운치 있다. 학교 앞 잔디밭에 누워 잠식해가는 어둠을 바라보니 별 빛이 자태를 뽐내며 나를 지켜보고 있다. 엉덩이가 시려오는 고통은 내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하늘이 허락해 비라도 내려 준다면 우산 없이 훌쩍 거리를 걷다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 앉아 인적을 안주삼아 책 한권을 읽고 싶다. 오늘은 금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