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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맛이 안 난다
장구치고 늦게 들어 와 저녁으로 포도주랑 과자, 먹다 남은 오리훈제를 먹었다. 마침 티비에서 가요무대를 방영하기에 한 잔하면서 시청을 했지만 가요무대 노래 맛이 안 나 짜증스럽다. 주제는 봄나들이지만 여가수들의 옷차림에만 봄 냄새가 나고 노래는 다른 동네다. 박자를 못 맞추는 가수도 있다. 떨려서, 당황해서 그러겠지.
지난주에도 ‘애수의 소야곡’을 꽤 유명한 가수가 불렀는데 노래 맛이 안 나 유튜브를 뒤져 겨우 옛날 맛을 봤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참 좋아 하시던 노래였고 나 또한 아버지에게 배웠던 터라 노래방 가면 아버지 생각이 나 가끔 부르곤 하는데 가급적이면 그 노래를 불렀던 남인수 선생의 흉내를 내려고 노력하면서 부른다. ‘휘~파람~소~~리~~’에서 ‘휘’ 할 때는 정말 휘파람소리가 난다며 아버진 그 흉내를 많이 내시곤 했었다.
어릴 때 아버진 술은 한 방울도 못 드셨지만 노래는 좋아 하셔서 집에 유성기를 사다 놓으시곤 밤늦게 들어 오셔도 유성기를 돌리는 일이 많으셨다. 가끔 자는 애들을 깨워 같이 노래를 부르곤 하셨는데 나는 그 때 아버지가 좋아 하시던 노래들을 모두 배웠었다. 또 유성기 시대가 가고 전축 시대가 왔을 때 아버진 거금을 들여 전축을 사다 놓으셨는데 처음 본 것이 sp(shot play)판이었다. 한 면에 한 곡씩 양 면에 녹음되어 있어 양판이라고도 불렀는데 한 면에 여러 곡이 실린 LP(Long play)판이 나올 때까지 아버지의 사랑을 엄청 받았었다. 먼지가 묻기라도 하면 우린 SP판 가운데에 나 있는 구멍에 가운데 손가락을 대고 엄지로 끝을 잡아 먼지를 닦아 내던 일이 생각난다. 혹시 흠집이라도 나서 플레이 중에 잡음이 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아버진 애들에게 노래 가르치시길 좋아하셨다. 기분 나시면 엄마를 붙잡고 부르스도 한 곡 땡기셨는데 우린 자다 일어나 눈 비비며 박수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었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이발관에도 전축을 사다 놓으시곤 하루 종일 노래를 틀어 놓아 손님들과 길 가던 사람들을 즐겁게 했었다. 나는 이발관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당연히 노래를 배우게 된 것이고.
지난 번 문인 모임에 갔을 때 저녁 식사 후 노래방에 갔었는데, 대부분 70대 이상 선배들이라 트로트 위주의 흘러간 옛 노래가 주를 이루었다. 나 혼자 다른 노래를 부를 수가 없어 ‘애수의 소야곡’, ‘전선야곡’, ‘울고넘는 박달재’, ‘신라의 달밤’ 등을 불렀었는데 노래방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백 점 나오면 만 원씩 내는 룰에 따라 두어번 내고 나니 더 이상 내지 말라고 해서 안 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부르고 싶었는데.
오늘 ‘배호’의 ‘안개낀 장충단 공원’을 부른 가수가 있었는데 배호 흉내를 잘 내는 꽤 유명한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불후의 명곡’에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마음대로 편집을 하여 배호 노래 맛을 다 버려 버렸다.
자기들 장단에 억지 노래 부르며 자기들 잘 놀고 돈은 자기들이 다 번다. 출연료 받아 여 가수들 옷이나 한 벌 사 입을 수 있을까?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노래 솜씨 들어 보니 괜히 걱정되어 하는 부질없는 소리다.
감정없는 앵무새 소릴 듣는 것 보다 차라리 백댄스 구경하는 것이 훨씬 더 즐겁다. 꽉 끼는 하얀 백바지입고 춤추는 것보다 짧은 치마입고 흔드는 것이 훨씬 술맛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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