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난 1학년 여름방학 때 고향을 찾았다. 시골은 극심한 가뭄으로 논은 거북의 등처럼 쩍쩍 갈라지고 벼는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관정을 파는 등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그 효과는 별무신통이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아버님은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비싼 양수기를 구입했다.
논 아래 개울의 웅덩이에서 물을 퍼 올리고자 논에 양수기를 설치하는데 아버지는 논두렁에 양수기를 놓았다. 난 그 양수기가 물을 퍼 올리는 과정에서 텅텅거리다가 웅덩이에 풍덩 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논바닥에 양수기를 설치하자고 말씀을 드렸지만 나의 말은 무시되었다.
양수기에 시동을 걸고 물을 퍼 올리기 시작한 후 5분쯤 됐을까? 양수기가 기우뚱 하더니 웅덩이로 빠지려고 하였다. 양수기만 예의주시하던 난 순간적으로 양수기를 잡았다. 양수기의 벨트에 새끼손가락이 걸리고 결국 양수기는 웅덩이로 빠지고 말았다. 나의 손보다는 비싼 양수기를 건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양수기를 건저 놓고 너덜너덜해진 손가락을 수건으로 싸매고 읍내에 있는 의원에 가서 응급치료를 하였다. 방학 중에는 통원치료를 하다가 2학기가 시작되어 부산으로 돌아갔다. 부산의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 날이 갈수록 치료비는 늘어나는데 차도가 없다. 의사선생님께 손가락을 자르라고 했다. 의사선생님은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후회 없겠느냐고 물었다. 순간적으로 들에서 땀을 흘리며 농사일을 하는 아버지의 얼굴과 새끼손가락이 없는 나의 모습이 겹쳐지나갔다.
들에서 힘겨운 투쟁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나 자신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다. 들일을 하다가 참을 먹는 시간에 아버지에게 묻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 왜 아버지 형제들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해요?’하는 나의 물음에 4남2녀의 장남인 아버지는 허공을 응시하며 회상에 잠기는 듯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을 주셨다. ‘우리 형제들도 결혼하기 전에는 동네에서 가장 의가 좋은 형제들이었다. 결혼하고 새살림을 하면서부터 사이가 점점 나빠졌다. 세상이 그렇게 만든 거란다.’ 하는 아버지의 말씀이 아련히 들려온다.
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지는 지금 아버지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오른 것은 나의 삶도 아버지 세대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의 살점을 떼 주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형제남매들이었다. 그러한 감정은 죽을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여겼다. 아니, 그리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었지만 항상 삶의 맨 앞자리에는 아내와 자식들을 두게 된다. 그러다보니 세월이 흐를수록 형제들과의 정이 옅어짐을 느낀다.
아버진 나의 친구 같기도 하고 인생의 이방인이기도 하였다. 시골의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4남 3녀의 셋째인 내가 고등학교를 대처로 진학한다고 했을 때 아무런 반대도 없이 허락을 해 주셨다. 아버지는 전쟁의 트라우마를 술로써 달랬다. 봄과 가을 농번기에는 술을 한 잔도 하지 않았지만 농번기가 끝나면 남은 일은 엄마 몫이었다. 나에게 아버지는 사랑과 미움이 얽혀있는 아픔이었다.
아버지는 잃어버린 조국의 땅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내고 육이오 전쟁 전 후 7년 동안 20대의 대부분을 군인으로 살았다. 종전 후, 제대를 하고 농부로 살다가 60대 초반에 돌아가셨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환경에 맞닥뜨려졌어도 아버진 봄이 오지 않는 겨울나라에 태어나 나에게 봄을 찾아 주었고, 이 땅을 공산주의자로부터 지켜냈고, 가난을 막아주셨다. 나는 아버지가 다듬어 놓은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면서 무엇을 했나? 하는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아버지의 힘으로 주인의 나라에서 태어날 수 있는 행복과 나만의 꿈을 꿀 수 있는 자유를 선물로 받았다. 난 나의 자녀들에게 무슨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는 등골이 얼어붙는 것 같다. 홍수로 떠내려 보낸 강물을 되돌릴 수 없듯이 덧없이 보낸 시간들을 다시 맞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에게 얼마간의 시간들이 남았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희망의 시간보다는 절망의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사랑보다는 한이 많은 세월을 보냈지만 흙탕물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고난의 세계를 꿈의 세계로 바꿔냈다. 감내하기 힘든 역경을 담대하게 견딜 수 있도록 한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DNA 어느 구석에 자신의 꿈을 새겨 넣어 두었을까?
그리운 그 이름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