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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4번 시내버스    
글쓴이 : 최재선    14-06-27 12:11    조회 : 5,858

834번 버스

 

 

  사람이 그립거나 시상이 말라 언어의 항아리가 텅 비어 허전할 때 가끔 차를 세워 두고 시내버스를 탄다. 우리 집 앞을 오가는 시내버스는 바로 옆 마을 약암에서 구 통계청을 오가는 834번 버스이다. 오전에 두 대 오후에 세 대가 두세 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어제 학생들 기말고사 시험을 치르고 종강하여 마음에 여유가 생긴 탓인지 오늘 아침엔 뒤척거리다 모처럼 늦게 일어났다. 늦은 아침을 먹고 920분 시내버스를 타려고 마을 앞 정류장에 이르렀다. 건너 마을 유상에 사는 할머니가 제법 덩치 큰 보따리 두 개를 힘겹게 이고 오셨다. 금상방앗간에 참기름과 들기름 짜러 가신다 하셨다.

  요즘 농번기라서 그런지 약암에서 우리 마을까지 정류장 두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아무도 타지 않아 차 안은 기사를 포함하여 단 세 사람뿐이다. 화심장어집을 돌아 화심순두부 근처 정류장에서 노란 원피스를 입은 젊은 아가씨가 나비처럼 차에 올랐다. 아가씨한테서 은은한 향수가 장미 꽃 옆에 서 있는 것처럼 풍겼고 가녀린 어깨엔 뽀얀 아침 햇살이 조심스럽게 붙어 있었다. 버스 기사는 무임승차한 햇살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서둘러 문을 닫고 출발하였다. 평상시 직접 운전할 때는 앞만 보며 운전하느라 미처 살피지 못한 풍경이 산수화처럼 아름답게 다가왔다.

  해월리 정류장에선 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버스는 그냥 갈밭을 스치는 바람처럼 스윽 지나갔다. 신왕리 육교 밑 정류장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타셨다. 할아버지는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고, 주여!"하시면서 한숨을 길고 깊게 내뱉으셨다. 한숨만큼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고단한 할아버지 삶을 시각적 심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 운전하면서 쫓기듯 휙 지나쳤던 신왕리에서 마수에 이르는 벚꽃 가로수가 그렇게 아늑하고 포근하게 다가올 줄 몰랐다.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자연도 더러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아름답게 느낄 수 있다는 식상한 말이 이렇게 가슴에 지문처럼 새겨질 줄이야.

  면사무소 앞 정류장에서 여자 애 셋 쪼르르 탔고 사내 애 둘 퉁퉁 탔다. 그 아이들 엄마인 듯한 여자가 요금 통에 지폐와 동전을 넣자 수족관 활어처럼 돈이 일순간 파닥거렸다. 샘물처럼 솟는 궁금증 묶어 두지 못하고 가장 큰 여자 아이에게 "모두 한 식구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순간 멈칫하더니 개미취 같이 웃으며 "동생 생일이라 고기 뷔페 집 가는 길이다."고 하였다. 삼거리에 있는 금상방앗간에서 유상 할머니 내리시고 떡 김이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떡 짐을 인 아줌마 차에 올랐다. 따끈하게 이식된 떡 냄새 침샘을 자극하더니 빈자리 하나씩 잡고 앉았다.

  고려병원 앞에 이르자 아이들 다섯 쪼르르 퉁퉁 내리고 아이들 엄마 발끝에 힘 빼고 내렸다. 환자복을 입은 할아버지께서 기사에게 "전주역 가냐?"고 묻자 "안 가유. 위험허니께 물러서요."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았다. 유일 여고 앞에서 나비 같은 아가씨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 잠자던 시어가 눈비비고 일어나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 때로는/ 바람처럼 휙 오지 않고/ 달팽이 걸음으로 오길/ 바라는 게 있지/ 사랑 같은 것 말이야/ 너무나 빨리 다가오면/ 그 사랑 넣을 곳간 좁고/ 안아줄 품이 비좁아/ 내게 머물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휙 갈테니까/ 때로는/ 소나기처럼 휙 오지 않고/ 가랑비처럼 엉금엉금 오길/ 바라는 게 있지/ 그리움 같은 것 말이야/ 그리움 단 번에 쏟아져서/ 마음의 제방 넘쳐버리면/ 하늘 끝까지 떠밀리어/ 훤한 대낮이나 밤이나/ 길 잃고 엉엉 울테니까."

 

  안골사거리에서 아가씨와 떡 짐 인 아줌마 마치 모녀처럼 함께 내렸다. 차 안엔 나와 떡 냄새, 아가씨와 함께 탔던 뽀얀 아침 햇살로 초만원이다. 아가씨가 두고 간 햇살 꼬드겨 모래내 시장에서 손잡고 함께 내려 시장구경이나 한 바퀴 해야겠다. 맨 먼저 떡집에 들러 부모님 좋아하시는 기정떡 한 팩 사고, 어물전에 가서 고등어 두어 마리 사고 야채 파는 단골집에 가서 오이하고 양배추 좀 사야겠다. 오이는 미역을 잘 풀어서 시원하게 오이냉채로 만들고, 고등어는 묵은 김치 잘 씻어 묵은지 고등어찌개 만들고, 양배추는 살짝 데쳐서 쌈으로 싸 먹어야겠다.

  그리고 시장을 다 보고 나면 시장 뒤 쪽에 있는 튀밥 집으로 가야겠다. 튀밥 기계 펑펑 터지는 소리에 고소한 강냉이 조팝꽃처럼 피어나고 하얀 쌀 이팝나무 꽃 같이 피어나는 모습 보면서 막힌 시상 확 틔워 길 내야겠다. 집에서 집사람 눈치 보고 부모님 생각하면서 큰 소리 한 번 제대로 못 쳤는데 튀밥 기계처럼 마음껏 펑펑 소리 질러 봐야겠다.

 

 


임도순   14-06-30 14:44
    
반갑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글을 올려주시어 선생님이 투자한 시간과 노력만큼 깊이 읽지 못한 점 우선 양해주시고, 몇 번 분석적으로 읽고난 소감을 올리니 혹, "돌직구"일지라도 저를 탓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글의 주제로 "시골버스안의 정경"으로 미리 세워보고 읽습니다. 앞 선 글들이 그만한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거든요, 그런데,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마치 "달리기 퀴즈"와 같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뭣이죠?하는. ^^그렇다하더라도 마지막에서 두번째, "차 안엔 나와 떡 냄새, 아가씨와 함께 탔던 뽀얀 아침 햇살로 초만원이다."라고 묘사했습니다. 이제, 제가 미리 세워본 주제가 흔들리고, 뭘까?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시장에가서 이러저러한 것을 사겠다는 희망사항을 전제의 1/4분량으로 넣으셨어요. 그 위의 글을 읽습니다. 낯 선 아가씨가 흔들리면서 정류장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시적영감이 충만하였다 합니다. ~~혹시 선생님은 수필을 시처럼 쓰시려 하신건가요? 시에서도 수필처럼 쓸 수 있는 '서사시'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글은 아직 수필로서 충분히 익지않은 작품인 것같습니다. 혹여 위에서처럼 이런 글을 원하신다면, 선생님께서 그냥 "시인"으로서 "서사시"쪽으로 발전하셨으면 합니다. 건강하십시요~
최재선   14-06-30 15:32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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