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자리에서 졸고 있는 소녀와 먼 곳을 바라보는 아이 아빠.
목적지에서 기다리는 중학생한명
가족의 전부랍니다.
이들을 만난 지 채 5시간도 되지 않지만 나는 이 가족의 아픔에 동화되어 있습니다.
곧게 뻗은 도로의 끝은 지평선에서 공허로 가득 찬 잿빛 하늘과 닿아 있습니다.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겠지요.?“
병든 남편과 어린 자녀를 두고 차마 갈 길을 가지 못하는 가련한 여인의 슬픔이 화물차의 주위를 감쌉니다.
커다랗고 슬픈 눈입니다.
"부산을 다녀와야 겠어."
일은 항상 전화로 시작됩니다.
급한 부름을 받고 달려간 곳은 그저 평범한 단독주택의 소시민의 살림살이입니다.
"혼자 가야돼"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허리에 손을 얹으며 최대한 험악한 인상을 써 봅니다.
"이렇게 많은데 혼자 가라고요?"
"거기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대"
안 된다는 거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숙련된 인부가 아닌 주인의 도움은 반갑지가 않습니다.
다시 한걸음 물러서며 한 번 더 험악한 인상을 그립니다.
"알았어, 일단 포장하고 재석이를 보내든지."
소장님께서 평소에 하지 않던 포장까지 손수 하면서 독촉합니다.
이때 동료들이 도착하고 혼잡 속에 나의 감정은 묻혀버립니다.
주인 여자와 딸까지 달려들어 작업에 속도가 붙어 가는데 주인 남자는 그냥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그야 말로 망중한이지만 이삿날 대부분의 남자들은 허수아비 놀이를 즐기기 때문에 이상한 일은 아니죠.
모든 사람이 바삐 움직이는 데 뻣뻣이 서있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삿짐 인부의 시각이 중요할 것은 없지만 방해만 안 된다면 다행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인 남자의 몇 가지 특징이 차츰 눈에 들어옵니다.
우선 발음이 분명치 않아서 누가 질문을 하면 어느새 딸이 다가와 통역을 합니다.
뭔가 하려고 하지만 관절의 굴절이 부자연스러워서 서있는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아빠는 파킨슨병이예요"
딸은 거리낌 없이 내게 알려줍니다.
"아프시군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가장하여 말하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할 수 있는 포장을 끝내고 주인여자를 도와 주방을 정리합니다.
보통은 주방이 먼저 끝납니다.
이사일을 해보지 않은 주인 여자는 늦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방 도우미 아줌마를 쓰지 않는 것은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빨리 가야 되는데..."
미안함과 조급함이 반쯤은 섞여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 들으니까 누가 온다고 하던데요?"
싱크대 앞에 나란히 서서 뽁뽁이로 유리컵을 싸면서 나누는 대화입니다.
"빚쟁이가 올까봐서요"
부끄러운 이야기 인데 간단히 말해버립니다.
"애들 엄마가 일주일 전에 자살을 했어요."
갑작스런 말에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사모님은 누구세요?
"저는 집 주인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챙기는 가재도구의 주인은 세입자이고 자기는 세입자를 도와주는 건물주인 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돈 때문이죠."
한숨을 한번 쉬고 난 집주인 여자가 말합니다.
“남편이 갑자기 병들고 사회생활이라고는 해보지 않던 여자가 가족을 부양해야 했으니 힘들었겠지요.”
또 침묵이 흐르는 사이 손길은 빨라집니다.
“몇 일전 공과금 이야기를 하니까 알았다고 하더니 다음날 그렇게 됐어요. 그냥 둘 걸 괜히 말을 해가지고선.”
주인 여자는 미안하고 안스러운 얼굴이 됩니다.
“네...”
그제서야 이 많은 짐을 가지고 혼자 가야 되는 이유가 비용을 절약하기 위함이고 그 적임자가 모질지 못한 나임을 알았습니다.
“빚쟁이가 정말 옵니까?”
"아까 누군가 보고 갔어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소장님을 찾지만 벌써 사라진 뒤입니다.
"서두릅시다."
이제 가재도구의 안전한 운송은 나의 소관입니다.
빚쟁이는 오지 않고 덕분에 일은 빨리 끝납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어설픈 위로의 말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로 돌아옵니다.
지쳐버렸을 몸과 마음이 내 차의 작은 공간에서 잠시나마 편안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도착할 때까지 편안하게 주무시도록 하세요."
남자는 대답을 했지만 나는 말이 아닌 마음으로 듣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 듣고 또 자기도 말을 하고 싶어 합니다.
"아저씨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남자의 말과 딸의 통역에는 유사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딸은 거침없이 통역을 합니다.
나는 화물운송자격증을 건네줍니다.
들여다보던 화주는 무슨 말인가 합니다.
"아빠와 나이 같데요"
딸은 그렇게 동역을 합니다.
"그래? 아빠하고 나하고는 친구구만"
남자는 환하게 웃습니다.
우연히 만난 화물기사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갑자기 편안해진 남자의 마음은 차 안을 가득 채웁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지켜 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들에게서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죽어가는 여자를 떠올리고 말았습니다.
공과금 때문에 짜증을 내던 내 아내의 모습도 보입니다.
"고향으로 가시는군요?"
남자는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또 무슨 말인가 하고 싶지만 딸은 어느새 잠든 딸을 보고는 침묵합니다.
화물차는 또다시 적막을 뚧고 달려갑니다.
정말 작은 할머니입니다.
처음 본 할머니 이지만 평범하다 못해 눈뜨면 만나는 옆집 할머니 같습니다.
이 가족은 작은 할머니를 찾아 천리를 온 것입니다.
삼촌이라고 부르는 건강하고 활기에 찬 젊은이는 미리와 있던 소년과 부지런히 가재도구를 옮깁니다.
소년의 명랑함과 젊은이의 부지런함은 지금까지의 침울함을 걷습니다.
넓은 방 하나가 깨끗이 정리되어 있지만 방3개에 있던 가재도구를 방 한간에 옮기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가구류가 자리를 잡습니다.
넓어 보이던 방은 어느새 가득 찹니다.
가구를 배치하기 위해 이리 저리 옮겨 보지만 더 이상 넣을 곳이 없습니다.
젊은이와 나는 고민을 합니다.
젊은이가 갑자기 얼굴을 찌프립니다.
"이건 답이 없다"
더 이상 가구를 들여 놓은 자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그건 마치 이집 가족과 닮아 보여서입니다.
‘답이 없다니 그 무슨 주제넘은 말인가? 그들에게도 할머니와 젊은이가 있고 보이지 않는 친지들이 있다,’
그렇게 자책을 합니다.
고맙다는 말을 못하고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쥐어 주는 화주 마음이 있습니다.
한사코 거절하는 나에게 마지막 까지 따라와 차에 던져 주는 따뜻한 마음이 있는 한 그들은 문제가 없습니다.
휴대폰에 메시지가 뜹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졸지 말고 쉬면서 가세요."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메시지는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기도 합니다.
"신이 있다면 이 사람을 도우 소서"